그럼, 얼마 만에… 자니?

자유연애와 로맨스

by 곽미성

파리에 산다고 해서 다들 영화 속 파리지앵들처럼 쉼 없이 연애하며 살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언어문제에서자유롭지도 못하고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은 유학생들의 경우엔 특히 그렇다.현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영향을 받기엔 이미 눈앞에 주어진 다른 과제들만으로도 너무 버거워,결국 학위를 받고 떠날 때까지 연애는커녕 제대로 영향을 주고받은 프랑스 현지인 몇 명도 없는경우가 태반이다. 그럼에도 항간에는 ‘파리에서 유학한 여자에게는 선도 안 들어온다’는 말이 있나 보다. 20대 중반 처음 유학을 왔을 때부터 쭉 모태솔로였던 한 친구는 종종 그 억울함을 호소했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면 그땐 그 동안 못했던 연애를 몰아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꿈만 꾸고 있었는데, 선도 안 들어온다니, 게다가 본인의 의지와는 하등 상관도 없는 ‘파리에서 유학한 여자’의 부당한 이미지 때문에 말이다. 다행히 학위를 모두 마치고 몇 해 전 귀국한 이 친구는 매주 주말이면 선보러 다니느라 정신 없다고 하지만...

어쩌다 항간에 저런 말까지 떠돌게 된 걸까. 물론 파리가 그만큼 여자들에게 자유로운 도시라는 인식, 특히 연애가 자유로워 사생활이 문란할 거라는 인식 때문일거다. 이 ‘파리 여자들’ 이 ‘문란’이라는 단어로 날아가 앉기까지, 그 핵심은 당연히 쉬운 섹스다. 여자들의 섹스는 어려운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 바탕이고, 헤픈 여자, 섹스가 쉬운 여자는 배우자로서 결격사유라는 시선이 있다.

그러면, 이런 사연을 파리의 여자친구들에게 얘기해보면 어떨까? 안 그래도 큰 눈을 바짝 치켜 뜨고 "어머, 방금 헤픈 여자라 했니?" 하며 화들짝 놀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질문을 던져보니, 정작 그녀들은 놀라기는커녕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사실 우리도 얼마 전까지 그런 인식이 있었다고, 그게 기껏해야 3-40년 전, 섹스가 결혼에서 자유로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변화의 시기


파리 여성들은 왠지 몇 세기 전에도 자유연애의 선봉에서 '몸과 마음이 늘 함께하는 삶' 을 살았을 것만 같았는데, 알고보니 그녀들에게도 그런 자유는 매우 최근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계기는 아주 의외의 곳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을 시작으로 반전운동과 히피문화가세계를 뒤덮던 60년대, 알제리 전쟁(1954-1962)을 끝낸 프랑스에는 평화와 경제안정의 시기가 찾아왔다. 구매력과생활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도 새로운 가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 유례없던 베이비 붐의 첫 세대가 대학생이 되어 청년층 인구밀도가 높기도 했던 상황, 파리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자유와 변화를 갈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던 1967년의 어느 봄날, 파리 근교의 낭테르 대학에서 이 모든 변화의 시발점이되는 사건 중 하나가 일어난다. 약 60 여명의 남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에 들어갔다가 경찰에 포위당하고 여학생들의 보호 속에 한 주를 버티다가 추방된 것이다. 당시 남학생이 여학생 기숙사에 출입하는 것은 금지된 일이긴 했지만, 중세시절부터 성역으로 여겨져 보호받았던 대학에 경찰이 침입하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언제라도 폭발할 준비가 되어있던 일촉즉발의 사회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경찰이 이들을 과잉 진압해 문제가 커졌다. 대학생들은 여학생 기숙사의 자유로운 출입과 자연스러운 성생활의 권리를 요구하고, 새로운 세대에 발 맞추지 못하는 대학의 낙후성에 항의하며 시위를 시작했다. 그 이듬해 3월, 이 기숙사 사건의 주인공들을 비롯한 약 300여 명의 대학생들이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항의하며 파리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무실을 점거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체포된 여섯 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학생들은 점점 조직화되어 거리로 나선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드골의 권위주의적 정치에 대한 반감으로 « 금지하는것을 금지한다 » 는 슬로건을 앞세워 거리 시위가 시작되었고, 전국의 노동조합연합들이 이에 연대하여 총파업을 선언하는 등 시위는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68년 5월 혁명이다.


중요한 것은, 그 5월 한달 동안, 사람들은 일상에서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뜨겁게 토론을 벌였고, 그 과정이 엄청난 사회적 인식전환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달라진 가장 큰 인식의 변화 중 하나는 성의 평등과 해방이었다. 사회적으로 혼전 성관계를 금지하는 분위기여서 혼전 임신이라도 하면 가족과 직장에서 버림받았고, 피임약의 유통도 없었고 남녀합반인 학교도 없었던 시대가 이 5월을 지나며 급속도로 자유연애와 여성해방의 상징인 70년대로 이어진 것이다.


앞서 소개했던 우리의 주인공 클라라의경우를 보자. 클라라보다 더 쿨하다는 그 어머니가 바로 이 세대가 아니었던가. 내 딸이 자라서 '백마 탄 왕자'를기다리는 아가씨가 될거라 그녀는 상상이나 했었을까? 본인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구세대적 성 역할에서의 해방을 꿈꿨으니, 딸이 사는 세상엔 '왕자 판타지' 같은 것은 없을 거라 예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클라라가 그렇게 '백마 탄 왕자'다 싶으면 알몸으로 침대까지 돌진하는 적극성을 보일 정도로 본인의 욕망에 솔직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 어머니 세대의 노력 덕분이겠다. 그 이전에는 프랑스도 혼전순결이 당연시 되는 사회였다니, 욕망을 드러내기는 커녕,'백마 탄 왕자' 옆자리에 가 앉기 위해 자유롭게 연애 할 기회도 시간도 많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누구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어머니가 딸에게 선물한 셈이다.

실제 모녀관계인 배우 까트린 드뇌브와 키아라 마스트로야니



여자들의 연애가 자유로워지자 여자들을 대하는 남자들의 태도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지금 연애하는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감을여자들이 더 이상 갖지 않게 되니 남자들은 긴장감을 느껴야 했을 것이고, 스스로의 매력증진을 위해 전에 없던 노력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녀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점점 유혹의 기술에 관심 갖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보다 빨리, 경쟁적으로, 더 강하게 상대를 유혹해야 했고, 사회는 점점외모로 치중되는 즉각적인 매력에 탐닉하기 시작했으며, 불공정한 그 경쟁에서 밀려나 사랑할 기회도 제대로 갖지 못하게 된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것이 우리에게는‘소립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대표 현대문학작가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이 비판하는 68혁명 이후 가속화된 성의 상품화 측면이기도 하다.


파리는 로맨스를 꿈꾼다


그럼,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그래서, 연애가 자유로운, 섹스가 결혼에서 완전히 독립된 사회에서 사는 파리의 여자들은, 정말 그렇게 « 문란 »한가? 침대로 향하기까지 최소 3번은 만나야지, 혹은 세 달은 만나야지 같은 각각의 룰들이 그녀들에게도 있을까? 대체적으로그녀들은 얼마 만에 잘까? 파리의 그녀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얻은 답은, 예상대로 '사람마다, 그때그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녀들이라 해서 한 번의 저녁식사 데이트로 곧장 침대로 가는 것이 당연하지도 않고, 그 기간은 각자 본인이 좋을 대로라는 거다. 섹스로 가는 길에 금기도 없고, 연애를 많이 하는 여자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는 이 사회에서는 얼마 만에 자는지,결국 자는 사이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본인이 주체가 되어 함께 주도하는 연애에서,가장 중요한 것은 ‘내마음’ 일 테니 질문 자체에 편견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반전은 있었다. 섹스가 쉬운 사회가 되니, 마음을 얻는 일은 더 어려워졌고,그렇게 순수의 상징, 사랑이라는감정이 보다 중요한 의미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합의만 된다면 부담 없이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지만, 정말 나를 사랑해주는 상대, 마음 저린 연애를 하는 관계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나도 프랑스인들과의 연애에서 그 부분을 이해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던 것 같다. 커플이라 부를 수 있는 연애관계는 최소한 서로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후 시작되지 않나?적어도 나의 상식은 그랬다. 하지만 이들은 그 순서가 있지도 않았고, 되려 그 사랑한다는 고백은 연인 사이의 가장 마지막 수순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일반적으로 상대에게 호감이 있을 땐 저녁식사를 제안한다. 이에 승낙을 하면 당연히 나도 호감이 있다는 표현이다.그 자리에서 서로 동했을 경우 바로 섹스로 이어질 수도 있고, 아니더라도 몇 번 더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서로를 '요즘 만나는 연인' 으로규정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데이트를 하고, 지인들에게 연인으로 소개하고, 함께 주말 밤을 보내는 사이라고 해서 다 진지하게 사랑하는 사이는 아닌 거다.그렇게 지내다가 둘 중 한 명이 « 쥬뗌 Jet’aime» 하며 고백을 했는데 상대는 그런 마음이 아닐 경우, 부담을 느끼고 떠나기도 한다. 이 때, 한국에서라면,그리고 내가 그렇게 버림받은 사람의 친구라면, 그 상대는 절대적으로 ‘나쁜년’이 되거나 ‘나쁜놈’이 된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내가 누구의 친구든, 상대가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지는않는 것 같다. 물론, 남겨진 이의 아픈 마음은 인지상정 이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 사랑할때만, 그냥 왠지 좋아하는 것 같거나 사귀고 싶거나 같이 자고 싶어서가 아닌, 정말 사랑할 때 그만큼 신중하게 한다는 의미니 사람들이 진중하게 느껴져 뜻밖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 비록 몸은 너와 함께 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아직 아니거든, 이라는 의미로 느껴져서 너희들 참 냉정하다 싶기도 하다. 마음의 표현보다 몸의 표현이 더 어려운 것이 한국사회 연애 풍속도라고 본다면 프랑스 사회는 문화적으로 그만큼 먼 거리에 위치한 것이고, 그 거리만큼 나도 이들의 연애가 참 막연하고 실체 없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마음의 문제에 있어 남녀노소 상관없이 더 진지하고 그래서 더 로맨틱하기도 하다. 프랑스 남자들이 로맨틱하다고, 지구촌에 여전히 진부하게 떠도는 소문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예술분야에서는 남초에 속하는 영화학교에 다닌 덕분(?)에 남자사람인 친구들이 많은 편인데, 나중엔 이름 외우기도 귀찮아지게 될정도로 여자친구가 수시로 바뀌던 남자 아이들도 늘 그토록 이번엔 사랑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고 진지했다. 그 중엔 서른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 여자친구를 만나면서도, 나는 언제면 “내사람”을 만날까 하며 십 년 전이나 다름없는 방황을계속하는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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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모두는 그렇게, 로맨스를 꿈꾸며 살게 되었다. 우리나라 TV 드라마에서는흔한 일이지만, 정작 그런 팬시한 로맨스는 인위적이라 비웃는 사회에서 사랑을 더 많이 꿈꾸고 산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실제의 로맨스가 가능한 도시에서 가상의 동화는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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