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은 어떻게 희롱이 되는가?
청바지에 운동화, 털모자에 크로스백을 메고 씩씩하게 걷고 있는 내게, 거리의 남자들은 그토록 말을 걸어왔다. « 어디에서 왔어요? », « 어디가세요? » 같은 질문을 시작으로, 내가 대답도 없이 그냥 지나치면 어떨 땐 한참을 같이 걸으며, 내가 결국 뭐라도 대답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말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늘 내게 «너무 아름답다 » 고 말했다. 어느 날은 공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지나가던 남자가 옆에 앉더니 한참을 눈이 마주치길 기다리다가 « 당신 참 예쁘네요 » 하기도 했고, 세느 강변에 앉아 있던 어느 저녁에는 옆에서 놀고 있던 무리의 젊은이 중 한 명이 다가와 본인과 저녁을 함께 보내지 않겠냐고도 했다. 문제는, 안타깝게도 우리 집에도 거울은 있어서 나의 외모가 요즘 세상이 정해놓은 « 아름다움 »과는 별 인연이 없음을 내가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를 언제 봤다고, 잘 찾아야 보이는 나만의 숨겨진 매력까지 느끼지는 못했을 테니, 그들이 « 아름답다 »고하는 말에서 도무지 0.1%의 영혼도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서양에서는동양적인 얼굴을 아름답게 본다는데 정말 그런 게 아닐까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 잠시 들긴 했다.하지만 그러기엔 파리에 동양인이 이미 너무 많아 이젠 그들도 배두나와 장쯔이 같은 외모가 아시아의 미녀라는 정도는 알 것 같았고, 스쳐가는 몇 초에 남자들의 혼을 쏙빼놓을 신비로움이 내게 있다고는, 도저히 스스로도 설득이 안됐다. 하지만, 그게 다 거짓인들 어떠랴! 결국엔 다 « 한번 자자 » 는 얘기 임을 확신했을 때부턴 조금 무서워지기도 했으나, 잠시 얘기를 주고받다가 차 한잔, 술 한잔하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나면, 그들은 접근이 쉬웠던 만큼 포기도 풍선에 바람 빠지듯 눈깜짝할 사이였다. 뭐, 눈만 마주치면 그렇게 예쁘다 예쁘다 해주니, 주눅들고 피로에 절어있는 여행자로서 싫을 이유가 있겠는가!
거리의 이런 남자들에 대한 진지하게 의문이 생긴 것은 유학생활을 하면서였다. 조금씩 불어가 들리기 시작하고, 그들의 눈빛과 뒤돌아 서서 하는 말들이얼마나 노골적인지, 그들이 얼마나 기계적으로 수작을 거는지를느끼면서부터는 나 또한 기계적으로 그들을 외면하게 되는 한편 짜증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혹시, 순진해 보이고 말이 잘 안 통할 것 같은 동양 여자들만을 그 타깃으로 삼는 것은 아닐까 하는의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른 여자들은 어떨까 궁금하던 차에 이런 일이 있었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등교 길의 지하철 안이었다. 더운 날씨, 서로의 온기를 힘겨워하며 침묵이 감도는 상황, 내 옆에 서있던 남자가 마주보고 서게 된 여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하는 것이었다. « 당신, 눈이너무 아름답군요 » 라고 말이다. ‘이건 또 왠 아닌 밤 중에 로맨틱한 상황이지?’ 하는 생각에 그때까지 깊이 수면 중이던 뇌가 단숨에 깨어났고, 부러운 마음을 담아 아름다운 눈의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름다운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처음 이에요 » 와 같은 그의 찬사는 계속되었고, 대답 없는 메아리에 모르는 척 듣고있던 주변인들이, 어쩌면 과한 호기심으로 빤히 구경하던 나만 그랬는지 몰라도, 서서히 민망해지는 분위기가 됐다. 그제서야 그녀는 그를 응시하며 조용히 말했다. « 닥쳐». 영화 « 친절한금자씨 »에서 투명한 눈빛과 단아한 표정으로 « 너나 잘하세요! »를 뱉어내던 이영애 언니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공개적인 망신에 남자는 잠시 당황했나 싶더니 곧 다음 행동을 결정했다, 더욱 최선을 다해서 자기 길만 쭉 가기로 말이다. 그는 « 정말 당신의 눈이 너무 예뻐서 하는 말이에요, 오늘 당신을 만나서 나는 정말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 같은 혼자서만 애절한 대사들을 계속해서 주절주절 쏟아냈고, 그렇게 그녀의 조용한 « 닥치세요 »를 몇 번 더 주워 들었다. 아름다운 그녀는 결국 남자를 향해 경멸의 눈빛을 쏘아주고 다음 정거장에 내렸다.
어쩌면 남자가 순수와 열정의 눈빛을 가진 20대 청년이 아닌, 최소한 마흔 다섯은 족히 넘어 보이고,한눈에도 삶이 좀 어수선해 보이는 아저씨여서 그녀는 미련없이 그런 한방을 날린 게 아닐까……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얘기를 파리지엔 친구들에게 들려주자 그녀들은 이구동성으로, « 아 그런 놈들 정말 지겨워! »라며 소리쳤고, 앞다투어 비슷한 경험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친구는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데 모르는 남자가 다가와서 비슷한 수작을 걸자, « 이러는 게 정말 먹혀요? 지금까지 이렇게 해서 성공한적이 대체 있긴 해요? »라고 까지 진심으로 궁금해 물어보았다고 했다. 아름다운 그녀도 마찬가지 마음 이었을 것 같다.그리고 이 장면은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내가 궁금해 했던 그 거리의 달콤한 수작들은 사실 불쾌하고 수치감이 드는 희롱으로 받아들이는것이 맞는다는, 그리고 그런 불쾌감을 느낄 땐 이렇게 짧고 강한 한방으로 처신해도 좋다는 깨달음을 남겼기 때문이다.
남자인 친구 중에 곁에서 보기에 타고났다고할 만큼, 사람들을 잘 잡아 끄는 친구가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 이유를 그저 그의 외모가 뛰어난 때문으로 오랫동안 정리해 왔다.브래드 피트의 외모를 부인할 수 없듯이,그도 그랬고, 브래드 피트의 인기를 그의 연기력이나 화술에서 찾지 않듯이 이 친구에게도 우리는 그랬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다시 생각한 계기가 있다.이 마성의 친구를 브래드라 칭하자. 지방에 발령을 받아 떠났던 브래드가 오랜만에 파리에 올라와 몇 명의 친구들이 함께 식사를 한 저녁이었다. 집에 가는 방향이 비슷해 같이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브래드만 티켓이 없었다.내일이면 떠나는데 티켓을 사는 게 귀찮았던 친구는 불법으로 개찰구를 넘었다. 하지만 운도 없지, 평소엔 찾아도 없던 검표원이 저 너머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거다.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인데 어쩌겠는가, 벌금을 내는 수 밖에. 우리는 손짓하는 검표원에게 낭패감을 감추지 못하며 다가갔다. 60은 다 되어 보이는 검표원은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았다. 숱 없는 머리위로 눌러쓴 모자를 연신 들추며 땀을 닦아내면서, 그는 아주 사무적인 표정으로 단호하게 볼펜과 벌금 영수증을 꺼냈다. ‘에고,벌금이 얼마나 되려나?’하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던 그 때, 브래드는 그에게 아주 명랑하게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 날이 너무 덥죠? 역안에 공기도 안 좋은데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 때 아닌 명랑함에 ‘얘가 왜 이러나’하고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브래드는 검표원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 어, 손가락을 다치셨네요. 손톱에 이렇게 상처가 나면 약을 오랫동안 잘 발라야 돼요. 나도 몇 달 전에 이렇게 다친 적이 있어서 아는데… 정말 아프지 않아요? 관리는 잘 하고 계세요? »
검표원은 브래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몇 초가 지났을까?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 그냥 가시오. 다들 즐거운 저녁 보내요! »
그 때 알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든 자기편으로 만드는 브래드의 마력은 비단 그 외모에 있지 않았다는 걸. 외모는 그냥 조금 거둘 뿐 이었다는 걸. 진짜 마음이 움직이는 유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그 어딘가를 발견해주고 배려해주는 관심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