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감사히 살겠습니다.

산꼭대기 섬 안개에 덮이다

by Maya

산꼭대기 섬 안개에 덮이다

can not be seen, can not be shown

보이지 않는 이에게 혼자 하는 말



오늘 아침 나의 세상은 또다시 하얀 안개 속에 묻혔네요. 해가 보이지 않으니 '태양열 전기 시스템'이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날이죠. 그래도 배터리는 절반 이상 채워져 있으니 비상시를 대비해 절약해야겠어요.


IMG_20131203_132118.jpg 작은 태양렬전기 시스템

지금은 오전 11시 30분이에요. 여전히 저의 세상은 안개에 덮여 있네요. 간혹 소들의 '음매'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정말 조용해요. 마치 나 혼자만이 세상에 있는 듯한 기분이에요. 물론 이 '혼자만이 있는 세상'의 느낌은 외로움이나 쓸쓸함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 아닌 '행복한 고요'예요. 슬레이트 지붕 위에 반복적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목탁 소리처럼 부산해지려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공간을 평화로움으로 채워 놓고 있어요.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면에서 느껴지는 이 평화의 느낌은 무한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제게 허락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산 위에서 잠시 머물다 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단순한 생활 속에서 진리를 찾고 행복한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많은 길을 걸었고 때로 잘못된 길로 들어서 되돌아서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길에 감사합니다. 길 위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좌절하며 남모를 눈물도 흘렸지만 지금은 어려운 시험에 통과한 것처럼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저런 일들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조용히 그리고 겸손히 받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통해 더 성숙해질 것이고, 진정한 자유에 한 발 더 가깝게 다가가 있을 테니까요.

아, 슬레이트 천장을 보니 몇 군데에 물기에 젖어 오네요. 물기가 더해 물방울이 되기 전에 비가 그치면 좋겠네요. 해가 나오면 지붕 위로 올라가 실리콘을 발라줘야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새 식구가 된 고양이 카이와 하나랑 침대 위를 뒹굴며 게으름을 피울 거예요.


잡초를 뽑아내며
반나절 동안 앞마당 화단을 정리했어요. 그동안의 많은 비로 땅이 물러 있었음에도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지속하고자 하는 것들은 쉽사리 뽑혀 나오질 않았어요. 그래서 힘을 써야 했고 그 힘을 써서 폭력(?)을 행사한 내 손아귀는 기진맥진하고 아파요.

비, 비, 비! 지난 4년 동안 빌카밤바의 우기를 보았지만 올해처럼 비가 많았던 적도 없었던 거 같아요. 덕분에 잡초는 잡초대로 화초는 화초대로 화단은 숲이 되고 주변 산들은 초록 산이 되었어요.

뿌리를 뽑아내야 할 것들은 뽑아내고 가지치기를 할 것들은 가지치기를 해주었어요. 뿌리를 뽑아내야 할 화초들 앞에서는 여러 번 멈칫하기도 했지요. "아직도 꽃송이가 남아 있는데……." "그래도 꽃인데……." 하며 화초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러웠죠. 하지만 그 주변에서 새로 싹을 틔우며 자라는 작은 것들에게 해가 비치는 것을 그들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뽑아내야 했어요. 그러면서 저는 저 자신을 위해서도 '뽑아내기'를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 마음 안에도 부질없는 생각들이 '나'에게 비치는 해를 가로막고 장막을 치고 있음이 보이거든요.


옥수수
점심으로 먹을 옥수수를 몇 개 따 왔어요. 지난해 11월 말에 돈 빅터(Don Victor)와 내가 산등성이에 작은 구멍들을 파고 씨앗을 묻어 두었지요. 우기가 끝나가는 지금 쑤욱 자란 옥수숫대에 옥수수들이 매달려 있는 거예요. 몇 녀석을 따서 까 보니 하얀 알이 들고, 날고, 모자라고……. 슈퍼마켓 진열대에 앉아 있을 미모는 아니지만 내 얼굴에 웃음을 맺게 하고 행복한 마음을 자아내는 데는 모자람이 없지요.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땅에 작은 구멍을 파고 씨앗을 묻었을 뿐인데 이 씨앗은 스스로 싹을 틔우고 건기 동안 목마름을 견디어내며 우기를 기다렸지요. 그리고 우기의 비는 옥수수를 키우고 결실을 맺게 해주었지요.

아, 자연, 당신을 사랑합니다.



프로판 가스
프로판 가스통이 빈 지 벌써 3일째예요. 사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집 지을 때 거의 세 달 동안은 가스 없이도 살았지요. 그래서 이젠 식은 죽 먹기랍니다. 하하하.

이곳의 프로판 가스 값은 아주 싸요. 하지만 집까지 오는 택시 값이 15달러이니 다른 일들을 몰아 한꺼번에 택시를 이용할 속셈으로 그냥 불을 지펴 밥을 해 먹고 있는 거지요. 사실 커피 내릴 물을 끓이고 혼자 먹을 냄비 밥을 하는 데 그리 많은 땔감이 필요하지는 않답니다. 잔가지 한두 움큼이면 물을 끓이고 밥을 할 수 있거든요. 문제는 주전자나 냄비가 새까맣게 그을린다는 거고 또 물이 끓고 밥이 될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나무를 넣어주고 불의 정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거지요.

가스레인지 위에 주전자나 냄비를 올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까맣게 잊고 있다가 주전자나 냄비를 태운 경험은 우리 대부분 한두 번 이상 갖고 있을 거예요. 우리의 삶도 그런 거 같아요. 마음을 쏟고 집중하고 지켜보지 않으면 모두 타 버려요. 온전히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비록 작은 것에도 마음을 쏟아 살펴봐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의식의 세계가 넓어져 내가 아닌 남도 생각하고 우리의 주변 환경도 생각하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삶을 윤택하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 참고로 이곳에서는 가스 한 통에 2.75달러예요. 하지만 2016년부터 16달러로 오른다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Self sustainable life에 관심이 있는 이곳 사람들 몇몇은 인간 배설물을 이용해 가스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이용할 준비를 한다고 하네요. 친구 하나도 지금 그 방식을 시험하고 있는데 결과가 나오면 비용도 별로 들지 않는다고 해요. 나중에 저도 그 친구의 도움을 받아 그 방식을 이용하려고 해요.



만당고와 과랑가
부슬비가 잠시 잠깐 내리더니 하늘과 산은 순간 한지에 그려진 수묵화가 되어버렸어요. 질리지 않는, 질릴 수 없는 경관을 언제나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이것 또한 내게 주어진 커다란 복이구나!” 하지요.
빌카밤바에는 이곳 사람들이 성스럽게 생각하는 두 개의 산봉우리가 있어요. 그중 하나는 만당고(Mandango)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과랑가(Guaranga)라 부르지요. 만당고는 음양으로 얘기한다면 양, 남성적인 에너지를 상징해요. 과랑가는 음, 여성적인 에너지를 상징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산을 보면 만당고는 울퉁불퉁 근육질이고 과랑가 가는 부드러운 곡선이 이리저리 연결된 아름다움이 있지요. 내가 사는 산꼭대기(저는 이곳을 인챈팅 윈드<Enchanting Wind>라 불러요)는 과랑가를 마주하지만 과랑가와 같은 방향으로 산줄기가 흐르고 있어 과랑가와 만당고를 모두 볼 수 있지요.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산봉우리의 높이와 이 두 산봉우리의 높이가 비슷하여 서로를 연결하면 삼각형이 형성된다고 해서 예전에는(잉카) 신성한 제사를 지내는 산으로 쓰였다고 전해지지만 사실 여부는 현대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요.



혼자 놀다
지금 막 방바닥에 락카 칠을 마쳤어. 와인이 있었다면 축배라도 들겠어. 반짝반짝한 게 좋아. 비록 시멘트 방바닥이지만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니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흙바닥에서 살다 고양이들이 긁어대서 얼마 전 시멘트 얇게 깔고 오늘 마무리를 한 거지. 유칼립투스 통목을 샌딩 해서 앉은뱅이 티 테이블도 만들었어. 방석을 깔고 테이블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차도 마시고, 블로그에 포스팅도 몇 개 했어. 혼자 놀고 있는 것이지.
카이가 오늘 저녁엔 많이 행복해 보여. 혼자서 ‘던지고 물어뜯고’ 하는 장난을 오래간만에 하고 있거든. 나처럼 말이야. 녀석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나는 막 웃었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야 할 삶의 이유와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작은 것을 바라보며 의미를 찾아. 내게 오늘의 의미는 친구를 위해 김치를 담그고 몇 줄의 글을 읽고 고양이들의 장난스러운 몸짓에 크게 웃었던 것에 있었어.



침묵이 길어지면서
수잔의 쿠리가 짖어대네. 누군가가 그 집 앞을 지나고 있는 거겠지. 걸어서 15분의 거리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가 오늘 아침엔 상당한 위안이야. 어제부터 감기 기운이 있는지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축축하여 마음 또한 살픗하지 못해. 고독을 정복하겠다고 자발적인 고독의 길을 선택했다. 과연 고독을 정복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무엇을 얻고자 했던가, 자유를 얻고자 했지.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한 자유이지. 잊지 말자. 갈수록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있는 말도 줄어든다.



그냥 걸을 뿐이야. 사실 이 길을 내가 꼭 걸어야 하는 길인지 그것 또한 확신할 수 없어. 특히 바람 휭휭한 곳을 지날 때면 더욱더 그렇지. 그래도 나는 그냥 걸을 뿐이야. 부는 바람에 신경을 많이 쓸 필요는 없어. 바람이란 것은 불어오고 불어 가고 하는 거잖아. 바람이 세다고 움츠릴 필요도 없어. 곧 지나갈 거란 걸 알잖아.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걷는 게 중요해. 무섭다고, 두렵다고, 쏜살같이 달려가 버리면 듣고 봐야 할 작은 것들을 놓치게 돼. 작은 벌레의 소리도 들어야 하고 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그래도 피어나는 작은 꽃들도 봐야 해. 그곳에 ‘존재’라는 그 아름다운 것이 있잖아.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아름다운 그것들 말이야.



갤러리를 접다
나무의 가지치기를 해야 할 때가 왔음을 느낀다. 울컥하다. 쳐낸다는 것은 떠나보내는 것이고 떠나보냄 속에는 미련이 있고 미안함이 있다.


그동안 나는 갤러리를 운영하며 크고 작은 이벤트를 열고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지냈다. 개처럼 말이다. 좋으면 좋아서 헐떡헐떡, 좌절하면 좌절해서 헐떡헐떡……. 그럼에도 개와 나의 헐떡거림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개는 헐떡거리는 어떤 순간에도 언제나 현재 그 순간에 머문다. 하지만 나는 현재에 존재하지 못하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감정에 휘둘려 개보다 더 헐떡거렸다.


어떤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할 때 그 생각 속에는 많은 환상이 있다. 겉모습이 멋져보여 해보고 싶기도 하고 돈을 많이 번다니 해보고 싶기도 하고, 뭐 이런저런 환상과 이유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 것이다. 나 또한 예술인으로 갤러리를 하면 사람들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하고 그곳에선 항상 즐거울 것 같고 또 커뮤니티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그것은 결국 내가 남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에고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돈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미있게 하면 자연발생적으로 월세도 낼 수 있고 생활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지금 생각하면 뜬구름 잡는 생각을 했다. 이치적으로는 ‘뭔가를 재밌게 하면 돈은 자연적으로 따라온다’ 하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예술에 관해서는 진리라 할 수 없는 듯하다. 한동안은 겨우 월세는 낼 수 있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월세를 대는 데도 어려움이 컸다. 그러니 남을 즐겁게 하는 일도 좋고 ‘예술이란 이렇고 저렇고’ 하는 것도 좋지만 월세가 나무에서 과일처럼 자라는 것도 아니고 더 이상 유지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트 워크숍을 통해 사람들이 그들 내면의 모습을 그림과 색으로 표현해 내고 또 그것을 같이 분석하며 우리 무의식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름대로 보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게 돈이 열리는 나무가 있었다면 나는 갤러리를 계속 운영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나는 돈을 벌어보겠다고 이것저것 해봤지만 언제나 허덕였다. 돈을 벌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돈과는 상관없는 곳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돈을 목적에 두고 뭔가를 한다는 것은 더더욱 허황된 것이다. 아, 나의 딜레마이다…….

어쨌든 갤러리는 닫힌다. 나는 대중 속의 나를 거둬들이고 내 안의 나로 들어가련다.
이제 나는 산에 박혀 외로움이란 것과 한판 승부를 낼 것이다. 그것이 죽든 내가 죽든, 이판사판이다. 일을 안 하고 놀며 먹을 생각이니 지금부터 불필요한 생활비는 모두 잘라내야 할 것이다.


과제/경제적 독립
2015년 첫날부터 거칠게 불어 대는 바람은 근 10 여일이 지나감에도 그 기세를 누그러트리지 않는다. 그 와중 나의 2015년의 시작 또한 순탄하게 지나는 것 같지는 않다. 뭐 이래도 저래도 지구는 돌고 아침과 저녁은 오고 가는 것이니 그리 좌절하지 말기로 하자. 하지만 좌절의 원인이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만큼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것이니 문제 해결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다. 올해 나의 과제는 어찌 되었건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데 있다. 최소한 남에게 구걸을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수선스런 아침
커피 병이 빈 지 2주째 되어간다.
아침엔 커피를 마실 수 있기를 내 마음은 원하지만 이젠 그 마음도 ‘상황 파악’을 해가며 ‘내세우자’ 같은 걸 하는 모양인지 참을성이 있다.

얼그레이를 마실 요량이었다. 주전자는 ‘삐이, 삐이’하며 물 끓는 소리를 내고 난 얼그레이를 찾아 캐비닛을 뒤지고 있었지. 아, 근데 장수 할아버지 사진이 붙은 빌카밤바 커피봉지가 얼그레이 밑에 떡 하고 있는 거야. “빙고, 아싸라비아!”라고 외치는 마음의 말을 들으며 난 빙그레 웃었지. “구름이 잔뜩인데 분쇄기를 사용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보고 안 되면 돌로 커피콩을 빻아볼 수도 있겠지.” 하며 나는 어딘가에 있을 분쇄기를 찾기 시작했어. 이른 아침 산꼭대기 조용한 집에 작은 수선이 일어난 것이지. “찾았다!” 흥분한 마음은 거의 루나 수준으로 짖어댔지. “하하, 그래, 알았어. 자! 그럼 분쇄기를 사용해 볼까?!”

이 분쇄기는 10년도 훨씬 전 뉴욕에서 사용했던 것이었는데 어찌하다 날 따라 이곳까지 왔고 전자제품을 쉽게 부서뜨리는 Y의 손에서조차 살아남아 이 산꼭대기까지 온 거야. 아주 장한 녀석이지.

결국 부족한 전력 탓에 커피콩을 곱게 빻을 수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릴 수 있을 만큼은 갈아졌어. 오늘처럼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엔 뜨거운 커피가 제격이지. 아, 근데 지금 6월 맞아? 어찌 6월의 날씨가 초가을 날씨 같은 거야? 이렇게 계속적인 날씨 변화를 거듭하다 보면 어떤 이들의 말처럼 겨울이 길어지고 길어지다가 결국 지구에 긴 어둠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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