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마지막 여름을 보내며
나의 결혼생활에 관해 마음속에서 반란이 시작된 건 이미 오래전이다. 그동안은 어찌어찌해서 그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이번엔 “결혼 이란 게 다 그런 거지” 하며 다시 주저앉는 다면 결국 ‘나‘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끌고 가는 것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이냐. 더 이상 성장 없이 말라가는 화초를 뽑아내지 못하고 마른 화초를 그대로 화분에 담아 두는 것은 화초에 대한 모욕이다. 부부로 산다는 것 또한 그럴 것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의 결혼서약에 얽매여 이래도 눌러앉고 저래도 눌러앉는다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오묘히 갈팡질팡 움직이는 마음의 고삐를 잡을 수 없는 날 이였다. 일찍 잠을 청해 보겠다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직도 낮의 열기가 가시지 않는 뉴욕 시내의 조그만 아파트 안은 시끄러운 내 마음 만큼이나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밤을 향해 아파트를 나섰다. 몇 블록 걷다 발길이 멈춘 곳은 가끔 친구 테드와 같이 진 앤 토닉을 마시던 그 바였다. 자연스레 진 앤 토닉 한잔을 시키며 카운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 전 ‘나를 브루클린이라 불러다오’라는 소설을 읽었었다. 그 책의 등장인물들은 주로 ‘오클랜드’라는 바(Bar)로 저녁이 되면 유령처럼 모여드는데 그것은 그곳이 그들의 크고 작은 상처를 핥아주고 안아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그들의 상처를 안아주고 핥아주는 대신 그들이 끝내 더 이상 빛을 볼 수 없게 어둠 속에 꽉꽉 묶어 두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 나의 심정이 그렇다. 한쪽의 나는 “더 이상 이 어두운 빛을 견딜 수가 없어” 하고 또 다른 한쪽은 “적당히 어두운 게 편안하잖아” 한다. 그래 지금 나는 ‘오클랜드’에 앉아 적당히 어둠침침한 불빛 아래서 보드카를 마시는 그들과 같다.
나는 이 도시에 미련이 있는가? 남겨 두었기에 미안한 것이 또 남겨 두기에 내게 아픔이 되는 것이 이곳 뉴욕에 남아있는가? 열정으로 뉴욕을 사랑하였다. 그랬기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 그 사랑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나는 뉴욕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에쿠아도르로 돌아가 탁 트인 자연에서 시원히 지나는 바람을 맞으면 내 길의 방향을 잡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