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오늘 나의 영감이었다오.
안녕,
당신에게 보내 준 풍류도 링크가 잠시나마 당신의 영혼을 호사스럽게 해 줬다니 좋아.
아직 풍류도를 잘 모르지만 풍류도의 몸사위는 타이치(태극권)와 비슷해 보여.
예전에는 그렇게 따분해 보였던 느릿한 타이치 몸짓이었는데.
산에 살면서 그것이 자연의 몸짓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어.
친구 삼아 이곳 산에서 같이 사는 바람과 안개도 자주 그런 춤을 추거든.
그들의 춤사위는 언제나 내 몸의 모든 세포를 팅글 거리게 하거든.
그 팅글거림이 타이치 몸사위에서 느껴진다고 할까.
어쨌든 지금은 그것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야.
나를 숨 막히게 하는 한국이 싫어서 떠났음에도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먹으면서 떠나왔던 곳을 다시 찾고 싶다는 것은 이상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 인간에게 당연한 흐름이라고 생각 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을 떠나 살다 보니 사실 나의 조상들은 참 멋진 사람들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그분들은 정말 풍류가 뭔지를 아는 분들이었어. 그래서 늦었지만 그래도 그 멋진 풍류를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거지.
4월에 한국에 풍류도를 만나러 갈 수 없었음에 안타까웠지만 그대의 말 데로, 그래서 그대와의 인연이 닿았으니깐 그리 안타까워할 일도 아니지. 인연이란 미묘한 것이라서 그것이 우리 각자의 인생에 어떤 역할로 연기를 할지는 지나고 나야 알 수 있는 것 같아. 다만 지금 나는 그대와 나의 인연의 끈이 그대의 인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할 뿐이지.
와, 대단한 그대여! 그대의 그릇이 아주 크다.
그릇이 크면 큰 만큼 담을 것도 많고 버려야 할 것도 많다고 하더군. 누구나 큰 그릇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닐 테니깐 지금 그대가 맡은 역할이 다할 때까지 좋은 일 많이 한다 생각하고 비우고 담으며 충실할 수밖에 없는 거 같네.
인생이란 여려 단편영화가 이어지는 것과 같다고 말하잖아. 물론 영화를 찍는 사람은 ‘나’이지.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상황에 따라 흐름대로 놔두고 보는 이도 ‘나’이고 또 '컷'하고 외쳐야 할 이도 '나', 그리고 대본을 수정하여 다른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이도 '나'이지.
모든 것에 끝이 있듯 지금 현재 그대가 찍는 그 단편 또한 끝이 올 거야.
그러나 그 끝은 그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출발점이 되는 것 아니겠어? 그대도 알잖아.
출발점에 서서 어떤 영화를 어떻게 찍을 것인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그것을 정하는 것은 영화를 찍는 '나' 이어야 하지.
나의 페북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다니 좋네.
때로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나른하고 단순함 속에서 잔잔히 흐르는 일상 속에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기록해 놓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잠시나마 긴장, 조바심 뭐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 '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페북을 사용하지.
그래, 지난 4년 산 위에서 혼자 지내며 참 많은 것을 깨달았지만 모든 깨달음은 '단순함'과 ‘고독’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시작되었지. 한국의 어떤 교수님은 고독이란 독립이고 독립이란 ‘무언가’로부터 벗어나 ‘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더군. 또,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도 저마다 홀로 서 있듯 인간 또한 무한 고독의 존재이다”라고 법정스님도 말씀하셨지.
그대와의 대화는 짧았지만 그대는 참으로 멋진 여성이라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지.
멋진 그대여, 뻐근한 일상이지만 부드럽고 강한 내공의 빛으로 주변을 밝히는 멋진 존재로 빛나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