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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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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20. 2020

부모와 스튜디오 시간의 쌍곡선 따위

100일 촬영, 20191216

 부모의 시간과 스튜디오의 시간의 쌍곡선?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아기의 100일 촬영은 정확히 100일에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시간과 스튜디오 예약 가능 날짜, 두 쌍곡선의 초점이 만나는 때가 촬영할 날짜다. 

물론 범위는 아가의 100일 언저리다.



오늘은 찰떡이의 스튜디오 백일 촬영 날이었다. 출산한 병원과 연계된 스튜디오에서 공짜로 만삭 사진을 찍어줬는데 그 사진이 꽤 마음에 들어 아기의 성장 사진을 덜컥 계약한 것이다. 공짜 만삭 사진은 미끼였다. 몇 장의 미끼를 덥석 문 우린 오십일, 백일, 돌사진이 묶인 상품을 결제해 버렸다. 일본어를 처음 배울 때 옮겨 쓰던 문장이 떠오른다. 세상에 공짜만큼 비싼 건 없다(ただより高いものはない). 



4월 어느 날, 연하늘의 구름이 그림 같던 제주도의 비자림 숲 앞에서도 그랬다. 공짜로 먹어보라는 귤을 날름 까먹다가 상큼 시원함에 덜컥 커다란 한 봉지를 샀더랬다. 이런 미끼상품은 으레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법이라 '이거 은근 괜찮네.'하고 지-익, 카드를 긁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스드메라 불리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비롯해 결혼과 아기 관련의 사업엔 어느 정도 바가지를 포함한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생각하기에 '일생에 한 번뿐인(아기의 경우 대개 첫 아이)' 이벤트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 자본주의가 손을 뻗은 결과다. 스물네다섯 무렵, 웨딩플래너로 일했던 찹쌀떡 군의 경험은 스드메 바가지는 피할 수 있었으나 출산에선 그러지 못했다. 하긴 내 아이의 찰나 같은 순간을 잘 꾸민 사진과 앨범으로 채우고 싶은 욕심을 피하기가 쉬운 일인가. 

하지만 솔직한 말로 찰떡이의 오십일 촬영 때 헐레벌떡 15분도 채 찍지 않던 사진사를 보며 괜히 계약했나 싶던 것도 사실이다. 결과물로 나온 사진을 보고 나름 흡족하긴 했지만 미끼 사진 때와는 다르게(사진사도 달랐다) 심히 어설프고 무성의해 보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론 예상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어 다행이지만 아마 우리는 아가의 어떤 모습이든 아꼈을 테다. 그리고 어차피 결제한 거 만족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꽃 중의 꽃, 합리화를 활짝 피워보자)



오늘은 아가가 태어난 지 100+8일이었지만 쌍곡선의 만남으로 오후 2시 촬영을 잡았다.

어제저녁 깨끗이 아가도 목욕시키고 오늘은 가기 전 잠도 푹 재웠다. 두 가지 촬영 콘셉트로 찍으니 옷을 골라달라는 요청에 스위스 요정을 연상시키는 연분홍색 니트 고깔모자와 옷 한 벌, 자잘한 꽃무늬가 들어간 하늘색 치마 세트를 선택했다. 아마 그때부터일 거다. 아기의 코가 발랑 발랑한 것은. 그리고 연분홍 니트를 입고 촬영을 시작하기 위해 침대에 앉히는 순간, 결국 찰떡이는 작고 까만 콧구멍에 힘을 주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예의 '응애응애'가 아니다. 

'으아아아악아가가가아가가가악!!'이다.



있는 힘을 다해 우는 찰떡이의 얼굴엔 나에게서 물려받았을 세로 미간 주름과 제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가로 미간 주름이 선명히 그어졌다. 옷 색깔보다 점점 붉어지는 찰떡이를 바로 안아 방으로 들어가 젖을 물렸다. 아가의 미간 주름, 아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든 순간 애미 애비는 꾀를 써 하늘색 치마로 아가의 옷을 갈아입혔다. 아무래도 이대로 돌아갈 순 없는 것이다. '자! 다시 한번 도전!'

우리의 바톤을 이어받은 사진사는 아기를 촬영 장소에 적응시킨다며 찰떡이를 안고 천천히 실내를 돌았다. 그 사이 찹쌀떡 군과 난 차를 마시며 잠시 한 숨 돌리고 있는데 또다시 어디선가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에 귀를 쫑긋.


"찰떡이일까?"

"글쎄.. (여기저기서 아기들이 촬영과 사투를 벌였기에 우는 아가가 많았다)"


다시 한번 들리는 울음소리.


"찰떡이다!"


마시던 음료를 던지듯 놓곤 찰싹찰싹 서둘러 실내화를 끌고 찰떡이를 찾았다.

사진 도우미에게 안겨 숨넘어갈 듯 우는 찰떡이를 안고 다시 달랜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가 괜찮아.'

사진작가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다른 날 다시 예약 잡아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어요."

"어머, 그래도 될까요? 죄송해서."

"괜찮습니다. 사실 그러는 분들 많아요. 아마 50 대 50일 겁니다."


그렇구나. 1/2 확률의 촬영.

촬영하러 갔다가 '꽝, 다음 기회에'를 뽑아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건만 그들에겐 반쯤 익숙한 하루다. 2주 뒤 날짜를 다시 잡고 진정된 아가를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이 녀석 스튜디오를 나오면서부터 찰떡이는 다시 방싯방싯 웃는다.

이 녀석, 이 귀여운 쪼꼬맹이 녀석.

웃는 데는 장사 없다. 게다가 그 상대가 제 자식이라면 더할 노릇이지. 그래 너 참 힘들었겠다고 다독여준다. 



아기의 100일 촬영은 정확히 100일에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시간과 스튜디오의 시간의 쌍곡선?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아기의 100일 촬영은 그저 아기의 마음이 내킬 때다.

그러니 그저 2주 뒤 촬영장에서의 찰떡이 마음이 뽀송뽀송하길 온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그날엔 부디 마음을 편안히 하소서, 우리 아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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