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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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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03. 2020

핑크 공주 예지 언니

20191231, 친구 딸 이야기 




예지(친구네 딸)는 핑크색이 좋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아가였던 두 살 즈음엔 노랑과 빨강이 최고로 좋았는데 인생 4년 차가 되니 대세인 핑크만 눈에 들어와요. 그래서 오늘도 예지는 반짝이 핑크 부츠, 하얀 줄이 들어간 핑크 바지, 연한 핑크 패딩을 입었습니다. 언니들도 친구들도 다 '역시 색은 핑크색이지!' 하며 꽃분홍치마를 자랑하고 부러워하며 제 엄마를 조르는걸요. 

바람이 차가워진 탓에 분홍색 마스크를 끼고 가장 아끼는 인형인 분홍 펭귄 두 친구를 모자에 넣고는 씩씩한 걸음으로 겨울 속을 걷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렇게 좋아하는 핑크색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각, 어린이집 가는 길바닥 사이사이 눈에 띄어요. 아가의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의 핑크색종이 카드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키티까지 그려져 있지요. 하늘에서 내려주거나 헨젤과 그레텔처럼 누군가 떨어트려 놓은 선물인가 봐요. 

예쁜 낙엽을 줍듯, 보물찾기 하듯 몇 걸음마다 멈춰 서서 좋아하는 핑크색 카드를 줍습니다. 그리곤 한 장씩 한 장씩 차곡차곡 모아 두꺼운 묶음을 만들어 손으로 꼬옥 쥐고는 어린이집에 가요. 



이쁜 걸 나누고 싶은 마음에 친구들에게 핑크색종이카드를 나눠줍니다. 친구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카드를 받았을까요. '어머, 예쁘다!' 같이 감탄을 했으려나요. 그렇게 매일, 같은 선물을 친구들에게 합니다. 

이젠 어린이집 선생님도 예지의 핑크 카드를 잘 압니다. 손에 꼭 쥔 묶음에 고무줄을 돌돌 묶어 챙겨주시기도 하거든요. 가장 예쁜 핑크색종이가 가득 있으니 예지는 누구보다 행복합니다. 

어느 날, 예지의 엄마는 묻습니다. 


"예지야, 이거 주면 친구들 반응이 어때?"


미간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걸 보니 생각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음… 확실히 남자애들은 파란색을 좋아해."


하지만 오늘도 핑크공주 예지는 바닥에 흩뿌려진 핑크 카드들을 모아 친구들에게 나눠줍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은 사랑스런 마음이겠지요. 난 그런 예지가 핑크색보다도 훨씬 예쁘고 훨씬 사랑스럽습니다. 


언젠가 나의 딸, 아윤이가 예지 언니와 사이좋게 지낼 날을 그려봅니다. 


그들의 처음은 쑥스러울까요, 스스럼없을까요. 

어쩌면 둘이서 저 분홍 종이를 꼭 쥐고 꺄르르 행복해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그 사이에 은근슬쩍 끼어서 함께 웃어야겠어요. 

같이 저 핑크 종이를 소중히 손가락에 낀 채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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