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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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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04. 2020

1월 1일 처음 뒤집다

첫 뒤집기, 20200101




2020의 첫 하루가 밝았다.

며칠 길고양이의 밤낮 없는 울음소리에 선잠을 잔 탓에 머리카락도 정신도 부스스하다. 한 해가 정말 바뀌긴 한 건지 의문스러운 얼굴로 핸드폰을 본다. 내 방엔 시계가 없다.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 꺼지게 되면 내방의 시간은 그대로 멈출지도 모른다.


 

January 1.

의심할 여지없이 1월의 첫날이다. 가만히 누워 오른쪽을 바라본다.

킁캉거리며 진작에 날 깨웠어야 할 작은 사람이 없다.

'아, 찰떡이 안산 집에 있지.'

주섬주섬 짐을 싼다. 오늘은 대구 집에서 안산 집, 그리고 인천 집으로 가는 날이다.



엄마는 인천에도 다 파는 무와 김, 상추, 깻잎, 삼겹살, 고등어를 까만 비닐봉지에 꽁꽁 싸서 내 캐리어 앞에 무심히 두며 수도권엔 뭐든 다 비싸다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인천 집 주위에 시장은 없지만 큰 마트는 서너 개 있어 어쩌면 대구와 별반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식재료로 둔갑한 엄마의 애정을 캐리어에 차곡 쌓아 기차에 실었다.



기차 안에서 서두르느라 제대로 보지 못한 핸드폰 문자를 확인한다. 아침 9시가 조금 지난 시각

「1월 1일!!! 울 찰떡이 뒤집기 성공!!!」이란 문자가 하얗게 빛난다.

함께 첨부된 동영상을 클릭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모의 응원 한가운데 찰떡이가 가로누운 몸을 뒤뚱이다 마지막에 둥실, 뒤집기를 성공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동안 낑낑대며 애쓰더니 결국 새해 첫날 뒤집기에 성공한 것이다. 엄마, 아빠는 그 첫 경험의 곁에 없었지만 감동을 함께 느낀다.(아빠는 방안에 있던 걸로 추정합니다) 

거의 몇 주를 팔딱이며 애쓰더니 결국 이뤄낸 우리 아가. 기특하고 장하다.



내가 안산 집에 도착하기 전 네 번, 도착한 후 두 번. 아가는 그렇게 오늘 총 여섯 번 뒤집기에 성공했다. 아직 오른쪽으로만 뒤집는 반쪽짜리지만 아가에겐 온전한 한 걸음이다. 또 다른 성장의 시작이다.

게다가 이젠 엎드려서 두 팔을 짚고 제법 상체를 지탱할 수도 있다. 11월 중순에만 해도 터미 타임을 가질 때마다 괴롭히는 것 같아 미안했는데 이렇게 가슴까지 들 수 있게 되다니 신기하다. 하루가 다르게 눈에 보이는 성장이 경이로운, 아기들은 작은 마술사다. 수없는 연습 끝에 관중을 감동시킨다.



예전엔 상상도 못 한 2020의 첫날이다.

어린 시절,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순간 이동마저 할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던 2020.

기억도 나지 않는 원더 키디의 제목을 자연스럽게 생활의 곳곳(핸드폰, 달력, 티비 등)에서 발견한다.

그렇다. 발견이다.

수없이 흐르는 숫자 중의 조각 이건만 20은 아직 너무나 낯선 이유다. 오히려 같은 숫자의 조합 중에 2002가 훨씬 익숙하지만 그 해는 이미 오래된 과거다. 하지만 분명 언젠가는 2020년도 애틋한 과거가 되겠지.



아마 그 기억의 되새김질의 첫날엔 찰떡이의 뒤집기가 새겨져 있을 테다. 더 이상 태명으로 부르지 않는 성숙한 딸의 아가시절을 생각하는 것만큼 마음이 일렁이는 일이 있을까. 문득 오늘을 떠올린 어느 훗날, 성숙한 내 딸을 '찰떡아'라고 불러볼까.

넌 내 품에 쏙 들어오는 사랑스러운 아기였다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방싯방싯 잘 웃고 애교 부리는 이쁜 손녀였다고.

아직 상상도 안되지만 분명 그날은 오겠지. 2020이 먼 과거가 되는 날이.

하지만 현재의 오늘은 그 해의 시작인 데다 아직 찰떡이라 불리는 찰떡이가 첫 뒤집기를 한 날이다.  



아가, 우리 찰떡아.

첫 뒤집기 너무 축하해.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단다.

오늘의 처음을 위해서 네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말야.

아이, 장해.

아이, 멋지다.

사랑하는 우리 아가.



기록 : 첫 뒤집기 +124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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