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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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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06. 2020

엄마가 말했지, 셋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곤 했지, 20200102




감기 기운이 목을 타고 스민다.

사람마다 감기의 시작은 다르다. 내 경우엔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듯 목구멍이 따끔하고 온몸이 물에 젖은 휴지처럼 축 처진다. 감기가 '나왔어.'하고 인사하는 신호다. 딱 지금의 목 상태다.

며칠 꼬박 빠지지 않고 겨울바람을 맞았더니 이렇게 금세 티가 난다. 노는 것도 체력이다.  

오랜만에 수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언젠가의 내일로 미루고 남은 하루를 책상 앞에 펼친다.



온종일 찰떡이와 씨름하느라 진을 뺐다. 5일 만에 둘만의 하루를 보냈는데 어찌나 울고 보채는지(나를 안고 일어서라, 애미야. 아니다 다시 앉아라, 애미야) 잠시 아가를 내려놓고 멍-해졌다. 아기를 돌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 다시금 실감한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기라도 예외는 아니다. 핏줄, 가족이라는 사실은 미미한 진통제 역할을 할 뿐이다.



대구에 내려간 첫날, 몇 달 만에 본 엄마에게 하소연했다.


"손가락이고 뭐고 온몸이 다 아프다. 애 낳고 손 안 저린 날이 하루도 없다."

"고마해라. 니만 애 키우나. 다 그래 애 키우거든? 다, 똑같다."


같잖다는 듯 흘긋 눈을 흘긴다. 억울하다. 딱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투덜거림의 싹을 서걱서걱 단번에 잘라버린다. 등을 토닥이거나 '아이고, 그래. 너무 힘들제.'따위의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역시 그녀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출산한 딸을 만나 건넨 첫마디가 '고마해라' 라니. 물론 그 출산한 딸이 먼저 곰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좀 야박하지 않나. 속으론 별 마음을 다 쓸 거면서 입으론 한겨울 서리를 내린다. 

내 머릿속 경상도 사람의 표본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엄마다.

그것도 경상도 남자의 표본.(다시 말하지만 내 머릿속 이야깁니다)



어쨌든 그런 엄마가 평소 내게 했던 말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세 문장이 있어 짧게 적어보려 한다.

이른바 엄마가 말했지, 셋


그 첫 번째.

내가 속 썩이던 날이면 매번 하던 엄마의 말이 있다. 난 그다지 얌전하거나 고분고분한 딸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주 이 말을 들은 셈이다.


"하이고, 딱 니 같은 딸 낳아봐라."


그러면 그 딸은 눈과 입을 삐죽이고 답했다.


"흥. 내 같은 딸 좋지. 얼마나 착하고 이쁘노. 이 정도면 됐지."


흔히들 하는 엄마의 전형적인 문장이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무서운 말이다. 심지어 우리 엄만 진심을 가득 담아 얘기했다. 그 정도면 작은 저주다.(하하. 진심입니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 찰떡이를 본 친구들이 말한다.


"니랑 윽시 닮았네. 이러다가 니랑 똑같아지는 거 아이가."


하아, 좋은 딸일걸 그랬다. 내 질풍노도의 시기를 떠올리고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이만큼 저 문장이 무서워질 줄이야. 저 말, 설마 나만 무서운가요.



두 번째.

아마 이건 성인이 되고 나서 들었던 말이다. 무엇 때문에 엄마가 이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 문장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야, 니만 엄마 있나. 나도 있거든? 니 우리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아라."


세상에서 물이 제일 맛있다던, 가끔 소쿠리에 숨겨놓은 튀긴 건빵을 담아주시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곤 이제 더 이상 그 말은 들을 수 없다. 그 생각을 하면 조금 많이 쓸쓸해진다.



마지막 세 번째.

찰떡이를 낳고 일이 주가 지나고서야 엄마와 제대로 된 통화를 했다. 지친 체력과 얼떨떨한 정신이 생각보다 오래 내 몸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붙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기를 낳은 나에게 그녀는 고생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니 아(아기) 윽시 이쁘제?

낳아보니 알겠나? 처음 낳은 자식이 얼마나 이쁘고 소중한지. 니도 내한테 그런 첫 딸이다."


스무 살, 아니 이십 대 후반까지 난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 거란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엔 울며 집을 뛰쳐나간 적도 많다. 남동생과 차별받는다는 이유에서다. 시간이 지나며 우리 가족은 '원래 그런 관계'라 규정짓고 익숙해져 갈 뿐, 내 생각을 바꾸진 않았다. 그저 '엄마도 사람이니까'하며 이해했다. 그런 딸의 마음을 엄마가 모를 리 없다. 마음에 밟히던 생각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이렇게 뱉어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딸을, 아기를 낳지 않았다면 그녀는 평생 이 말을 하지 않았을 거다. 그게 내 엄마다.


소중하다. 그녀의 말대로 나의 아가는 너무나 소중하다. 그녀도 그랬겠지. 

분명 다른 방식이긴 했을 거다. 닮은 얼굴과 달리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우리다. 스무 살 어린 엄마의 서툴지만 선선한 손길이 눈에 그려진다.

찰떡이가 크면 나도 엄마가 한 문장들을 그대로 말해볼까.


"우리 엄마한테 다 일러준데이. 니만 엄마 있는 줄 아나."


아기는 뭐라 답할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다가도 우리 외할머니가 떠난 곳에 엄마가 떠난다면 난 어쩌지. 정말 난 어쩌지. 갑자기 눈물이 그렁한 채 별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한 김 식은 노란 유자차를 한 모금 꿀꺽, 삼켜본다.

목이 참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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