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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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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07. 2020

김 씨와 윤 씨 사이의 아름다운 아이

이름에 대하여, 20200104




이것은 이름에 대한 이야기다.

아기의 이름 '아윤', 두 글자를 짓기까지 우린 여러 단어나 한자의 조합을 내놓았다. 특별한 기준은 없었으나 발음이 부드럽고 어감이 따뜻하길 원했다. 한자든 한글이든 단어의 의미가 바르고 단단하길 원했다. 이름에도 무게가 있고 나름의 길이 있다고 생각한 이유다. 정해지지 않은, 저만이 갈 수 있는 길을 걸으면 좋을 텐데. 물론 그래 봤자 이름이 인생 전부를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시대를 타는 이름들이니 모두 비슷비슷하겠지만은.



아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름이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같은 세대라 해서 모두 비슷하진 않다. 오래전 TV 토크쇼인「나는 남자다」를 짧은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매회마다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는데 이날은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름이 이름이지 뭐 싶던 마음에 연발 폭죽이 팡팡 터졌다. 아닌데?! 아니거든?! 번쩍하고 치지직하며 생각에 불꽃을 그린다. 가장 놀라웠던 이는 성이 '나', 이름이 '폴레온' 이란 사람이었다. 나폴레옹처럼 큰 포부를 갖고 살라는 아버지의 뜻이었으나 아기의 이름에 ‘옹(翁, 한자가 달라도 노인이란 뜻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을 쓰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폴레온’이 된 것이다. 그 외에도 김둘리, 조까치, 탁트인, 시냇물…. 놀라 아무 말도 못 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이름들이 살아가는구나. 그리고 맨 먼저 든 생각은 '그들은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을까'. 역시 겪어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아기는 가족을 선택할 수 없듯 제 이름도 직접 선택할 수 없다. 후에 개명을 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은 누군가 정해준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기 이름 짓는 데 마음이 더 복잡하다. 이름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사람이 책이라면 이름은 그 책의 제목이다. 어떤 곳은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라는 슬로건으로 작명을 하고 김춘수의 저 유명한 시 '꽃'에선 이름을 불리기 전에는 그저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하다못해'이름 따라간다'라는 말까지 있다.



8월 31일, 양수가 새는 바람에 여전히 아기의 이름을 정하지 못한 채 입원하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 여러 이름을 후보군에 올리긴 했다. 김나무, 김태리, 김아영, 김솔, 김은찬, 김소윤.

하지만 딱 이거다! 하는 이름 없이 아가는 태어났다. 뭐든 그렇다. 세상 모든 것은 이름을 갖기 전에 이미 존재한다. 그리고 돌아갈 땐 이름을 남기고 먼저 떠난다.

 


어느 날, 한 번은 내가 배우 문소리 이름의 연유(문 씨와 이 씨 사이의 작은小 아이라는 뜻)를 찹쌀떡 군에게 말했는데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던지 그는 얼마 후 하나의 이름을 지어 물었다.


"김아윤, 김 씨와 윤 씨 사이의 아름다운 아이 어때?"


발음도 좋고 말맛도 좋다. 난 씨익 웃는 것으로 마음을 답했다. '그런데 한자는 내 성 씨가 아닌 다른 한자를 쓰고 싶은데.' 무슨 한자를 조합해야 할지 고민하던 사이 찹쌀떡 군은 한자로 이름 만드는 어플을 찾아냈다. 참 능력 쟁이 아빠다. 그렇게 조리원에 둘이 앉아 '아윤'에 맞는 한자를 이리저리 맞춰봤다.



"아름다울 아娥에 아름다울 윤贇은 어때?"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까. 아기 얼굴도 알면서 우리 이러지 말자.(웃음)" 



한자의 뜻을 하나씩 알아보며 몇 가지 괜찮은 한자를 고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았다.

아름다울 아娥에 햇빛 윤昀.

세상을 환하고 따뜻하게, 두루두루 비춰주는 햇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뭐,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저 제 삶을 제가 잘 감당하고 주위 사람들과 행복하게 산다면 그걸로 좋다. 하지만 아가가 우리에게 환히 퍼트리는 웃음을 보면 정말 이름을 따라가는 건가 싶기도 하다. 맑고 밝은 선분홍 잇몸 웃음으로 제 주위 어른들을 활짝 활짝 잘도 웃게 만드는 걸 보면.



김 씨와 윤 씨 사이의 아름다운 아이, 김아윤.

사실 아이는 여전히 '찰떡이'라 불린다. 제 이름은 불러도 돌아보지 않지만 '찰떡아!' 하면 통통한 볼이 조금씩 이쪽으로 향한다. 나 또 불렀어? 하고. 



찰떡아, 아윤아.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늘 사랑한단다.

나의 햇빛처럼 환한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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