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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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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08. 2020

아빠의 취미

아기띠 매고 게임하는 남자, 20200104




요 며칠 찹쌀떡 군은 위쳐 The witcher라는 게임에 빠져들었다. 넷플릭스에서 동명의 드라마를 보고 예전에 하던 게임이라며 눈을 반짝일 때부터 낌새가 이상하더니 이젠 틈만 나면 별로 귀담아듣지도 않는 내게 주입식 게임 교육을 한다.



"이 게임을 폴란드 총리가 미국 대통령한테 선물했대. 원작이 폴란드 소설인 데다 폴란드 게임사에서 만들었거든."

"플스로 게임하는 건 좀 그래도 닌텐도는 괜찮을 거 같아. 이동할 때 할 수도 있고 잠깐씩 하기에도 좋고."

"여기에 나오는 위쳐라는 캐릭터는 괴물들이랑 싸우기 위해 인체를 개조한 사냥꾼 같은 사람이야. 마법사도 나오고 노래 만드는 사람도 나오고 캐릭터가 다 독특해."

"주인공은 세명이야. 위쳐랑 마법사랑 …."



장대한 아라비안 나이트를 얘기하듯 그는 이야기를 했지만 난 밥이나 반찬 따위 아니면 공상을 했다. 그 탓에 줄거리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왜 그가 게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냐, 니까. 뭐, 알다시피 답은 한 가지다. 사탕을 먹고 싶은 아이는 사탕을 이야기하는 것. 

며칠 대구에 머물다 올라온 내게 그는 말한다. 


"영철이 형이 플스 4를 이제 안 쓴다고 그냥 가져가라네."

"설마. 그걸 그냥 줬다고?"

"아니, 10만 원에 그냥 준다고 했는데 아직 돈은 안 줬어."

"…."


갸웃. 

용서는 허락보다 쉽다더니. 

그렇게 그는 그날 이후로 플레이스테이션 4를 TV 아래 선반에 고이 두고 매일 짬을 내어 '위쳐'를 한다.(당연히 돈은 입금했다) 주인공 중 한 명이라는 마법사가 TV 밖으로 나와 그에게도 없는 시간 쪼개기 마법을 건 모양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찹쌀떡 군이 쉬는 날이라 우리 가족 셋 모두 제 나름의 취미를 즐겼다. 난 자수와 음악 듣기, 찰떡이는 요즘 푹 빠진 뒤집기, 찹쌀떡 군은 조이스틱으로 칼을 휘두르는 위쳐. 아기 띠를 매고 살랑이는 몸짓으로 아가를 재우곤 게임을 하는 모습이 귀여워 찰칵, 사진을 찍었다. 그는 사진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딱 자르곤 금방 위쳐에 집중했다. '에이, 안 보여줘. 누굴 보여줘.' 하곤 찰칵, 찰칵, 찰칵. 

분명히 이 글을 보고도 뭐라고 하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내겐 그저 사진 속 부녀가 너무나도 귀여울 뿐이다. 지금도 그는 백발의 긴 장발을 가진 게롤트(주인공)가 되어 모험을 떠나는 중이다. 현실의 일과 육아와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멋진 사냥꾼이 되어 자연을 거닌다. 



육아는 전쟁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일상이다. 생활이다. 제 숨통 트이는 취미나 잠깐씩의 할 거리를 찾지 못하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엔 답답한 참담이 먼지 쌓이듯 쌓인다. 자주 청소하고 환기시켜야 먼지가 가슴속에 찌든 때처럼 배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자수나 글,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난 그가 행복한 순간을 만들 수 있는 무언가 something를 하길 원한다. 그게 이번엔 위쳐인 셈이다. 



그는 찰떡이의 아빠이면서도 여전히 눈이 또랑또랑한 한 젊은 모험가다. 

난 항상 그의 모험과 즐거움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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