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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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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02. 2020

아빠가 보내온 사진들

20191231




"찰떡이 얼굴 보여주지 말아야지."


의미 모를 엄포를 놓더니 친정에 도착해 아가가 보고 싶단 말을 하자 그는 아가의 발 사진만을 달랑 보냈다. 새된 불평으로 받아낸 사진들도 한결같이 얼굴을 제외한 신체 부위다. 

자그마한 발바닥, 볼의 포동한 옆모습, 둥근 이마, 토실하게 겹친 허벅지, 잘생긴 귀, 알밤 같은 주먹.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말엔 그 어떤 비유도 포함되지 않았다. 순도 100% 그 말 자체였다. 어디든 보여줄게. 다만 얼굴은 안돼. 귀여운 협박 사진을 보면서 사진만으로도 뽀얗고 말랑말랑, 통통한 아기의 몸이 느껴져 싱긋 웃었다. 콤콤한 목덜미 냄새가 전해오고 촉촉한 아가의 발바닥 감촉은 보드랍다.


"멀리 있을 때, 아기 사진을 보면 더 귀엽게 느껴지지 않아? 더 보고 싶고. "


금방 전송받은 아기(의 부분) 사진을 보며 친구가 묻는다. 

잠시 생각해본다. 


"글쎄."


귀엽거나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사진을 보는 내 얼굴만 봐도 그건 알 수 있을 일이다. 그저 난 바로 곁에 있을 때도 이 이상 사랑스러울 순 없을 거란 마음으로 아가를 본다. 주먹을 꼭 쥐어가며 울 때조차 귀여움이 눈물로 똑똑 떨어진다고 여긴다. 멀고 가까운 거리감이 마음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말에 가깝다. 곁에 있어도 그렇지 않아도 늘 애정이 극치 주위를 맴도니까. 물론 부재를 실감하는 순간에는 그리움이 산 하나만큼 커지지만 그것은 거리나 사진 탓이 아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고 감각할 때도 있고, 의외로 그리운 느낌은 촉각이나 후각, 청각이 불러올 때가 많다. 

하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늘이 아기와 가장 멀리 떨어진 그 첫날이라 단호히 확신할 수는 없다. 내일이면 찰떡이의 귓불 사진을 부여잡고 눈물을 뚝뚝 흘릴지도 모를 일이다.

   


찹쌀떡 군은 오늘도 아가의 허벅지, 귀, 이마 사진들을 보냈다. '인질은 잘 있느냐'는 물음에 '인질은 밥도 잘 먹고 똥도 귀엽게 잘 싸고 하루 종일 웃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 문장 하나에도 배시시 웃음이 난다. 말랑한 허벅지의 보드라운 감촉과 손톱 달을 짓고 웃을 웃음소리가 손끝과 귓가에 닿아온다.

햇빛처럼 깊고 따뜻한 생명력으로 나를 환하게 비춰주는 작은 사람. 

옹알거릴 때 잔뜩 올리는 눈썹이나 산홋빛 작은 입술의 오물오물, 이마보다 더 볼록한 볼의 사진 만으로도 잠잠한 오후에 웃음을 일게 하는 작은 사람. 



너만큼 귀여운 네 아빠는 내일은 또 어떤 사진을 보내올까. 

벌써 싱긋이 웃어버리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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