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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14. 2020

가족으로 가는 길

20200111




어떤 이는 부부 싸움에 대해 '내전이 더 잔인한 법'이라고 썼다. 당연하다. 원래 무관한 타인과의 신경전이나 싸움보다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아는 가까운 관계에서의 싸움이 더 처절한 법이다. 울타리 너머의 사람은 그저 피부의 타박상이나 생채기만을 내지만 내 사람은 가슴속에 살고 있어, 그 안을 온통 헤집어 놓고 찢어버린다.



연애와 결혼은 제법 다르다고들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결혼은 연애의 연장선이라고 본다.

돌아서는 아쉬운 발걸음이 사라진 연애의 생활화,

그것이 결혼이다. 흔히 하는 말로 '남자 친구(혹은 여자 친구)가 집에 와서 데이트한 건 좋은데, 왜 아직 안 가지? 싶은 게 결혼'이라지만 어쨌든 그것도 결국은 일종의 데이트니까.



하지만 그 둘과 근본부터 다른 게 있다.

바로 '육아'다.

육아를 시작한 부부는 그들만의 로맨스는 잠시 베란다나 다용도실 구석 정도에 치워둬야 하는 것이다. 아기의 탄생이라는 카오스 대혼란 상태에 익숙해질 즈음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은 극도로 쌓여 칼날처럼 예민해지고, 밥을 먹다가도 아기가 '끄응' 힘주며 똥 싸는 신호를 주면 돌발 눈치 게임을 하다 진 사람이 밥숟가락을 그대로 두고 노오란 똥을 맨손으로 문질 문질 씻어야 한다. 어떤 의미로는 아슬아슬하고(언제 서로 날카로운 말을 화처럼 쏠지 모른다) 긴장감 넘치는 일상, 이 사이 어디에도 레드 와인이나 초가 등장할 순번은 찾아오지 않는다.



인정한다.

요 며칠 난 유독 날이 서있었다. 제대로 된 이유가 있다기보다 지친 몸속 우울이 독처럼 스며들어서다. 이제 막 뒤집기에 도가 튼 아기는 시도 때도 없이 몸을 휘딱 뒤집고 갑자기 생체리듬이 바뀌었는지 잠투정이 늘고 잠은 줄었다. 그 사이 난 독 품은 개구리처럼 조용히 화를 품었다. 겹겹이 쌓여있던 화살의 대상은 찹쌀떡 군에게 향하다가 결국은 현실과 나 자신에게까지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재잘재잘 그에게 얘기하고 폭 안고 끝날 일을 머릿속에서 위태로운 풍선처럼 키워나갔다. 애초에 그는 아기 백일이 지나고 내게 혼자만의 휴가까지 배려한 사람이다. 찬찬히 얘기했으면 어젯밤을 홀로 새울 일도 아닐지 모른다. 밤새 온갖 쓸데없는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서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끝을 모르고 달렸다. 끝이 없던 밤샌 마음을 정리하니 오전이 되었다. 회사에  있는 그에게 짧지 않은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도 그리고 고맙게도 솔직한 마음을 두서없이 적었음에도 그는 이해해 줬다. 긴 밤이 무상하게 마음은 순식간에 풀렸다.



'날 항상 배려해주는 거 잘 알고 있어. 고마워.'

'솔직하게 얘기해 줘서 고마워.'



우린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진심이다.

아마 그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꾸준히 힘을 내어 아기를 돌보지도, 삶에 대해 긍정적이지도 못했을 거다.



가족이란 뭘까, 잠시 생각해본다.

과문한 탓에 거창한 이론은 모르나 다만 우리의 하루들을 되새긴다.

난 그가 양말을 신지 않으면 손과 발에 땀이 많이 나다가도 양말을 신으면 땀이 뚝하고 그친다는 걸 안다, 그는 내가 어디 쓸데도 없는 자수를 놓으며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내기 좋아하는 걸 안다, 자궁경부암의 잦은 재발로 손을 떨며 무서워할 때 그 손을 꼭 잡고 곁에 있던 사람은 찹쌀떡 군이었으며 항상 그의 곁에서 재잘거리며 그를 쓰다듬고 장난치고 사랑하는 이는 나다, 같은 집 안에서도 각자 서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따로 보내지만 결국 종요로운 시기엔 함께다, 늘 서로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사사로운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는 사이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가족에 대한 멋들어진 정의를 내릴 수 없다. 그저 나의 가족, 내 주위 모든 가족을 상기하고 떠올린 나만의 답은 '가족은 그래도, 함께다'라는 정도일까.



나와 그, 우리 아가는 가족이다.

서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

내 가슴 한가운데서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

그래서 날 누구보다 기쁘게도 슬프게도 만들 수 있는 사람들.

생각해보니 어쩌면 연애와 결혼, 그리고 육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을지도 모른다. 연애와 둘만의 결혼에서는 걸을 수 없는 끈끈하고 진득하지만 가끔은 진창인, 가족의 길을 아기를 키우면서야 한 걸음씩 내딛는 거다.

물론 그 길은 무정형이라 제각각 다르다.



우린 어떤 가족의 길을 걷게 될까.

내가 원하는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아, 부부의 내전에 대해 생각하다 결국 이렇게 생각 숙제가 또 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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