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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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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11. 2020

대구語

찰떡이를 위한 사투리 교실, 20200107




지역색이 강한 언어가 좋다.

사투리나 방언으로 불리는 그것 말이다.

어렸을 땐 아무 생각도 없더니 언젠가부터 동향 사투리를 들으면 그게 그렇게 반가웠다가 지나온 자리가 까마득하게 그리워졌다. 내가 태어난 곳은 대구 본리동, 아니 본동인가.

어쨌든 대구 내에서도 끝이었던 곳이다.



어린 시절에는 '사투리'란 개념을 알기가 어렵다. 모두 같은 단어나 억양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를 5번, 중학교를 2번 전학했던 난 억양의 차이나 단어의 상이함을 절실히 느꼈다. 6개의 초등학교 중 네 군데는 대구, 한 군데는 한 시간에 버스가 한대 다니던 시골, 나머지 한 군데는 서울이었다. 중학교도 입학은 서울에서 하고 시골에서 다니다가 대구에서 졸업했다.

사실 이렇게 전학을 다니다 보면 무엇보다 가벼운 친구를 만드는 데는 도가 튼다. 오랜 친구, 진실한 친구를 만들기가 어려울 뿐이다. 적당한 거리의 얕은 친분. 참 외로울 법한 관계만 쌓였다고 볼 수 있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이게 아니다.



전학을 연례행사처럼 한 탓에 각기 지방어의 다름을 쉽게 깨달았고 빨리 적응했다. 그렇지 않으면 말투로 인해 놀림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 사투리의 유연함 덕인지 지금도 대구 친구를 만나면 대구 사투리, 화북 친구를 보면 화북 사투리를 쓰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나만 그렇게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철두철미하게 어제의 언어를 지우는데 노력했다면 이젠 어제의 언어를 남기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현재 쓰는 말에 몇 개의 사투리를 섞어 쓰는 거다. 유년시절을 이런 식으로라도 남기고픈 아쉬움일까 모르겠지만 아마 평생을 가도 이러지 않을까 싶다. 혹 내가 세상에 먼저 뜬다면, 찹쌀떡 군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고마해라. 마이 울었따 아이가."



대구 사투리를 아끼고 계속 쓸 요량이기에 몇몇의 대구語를 적어둘까 한다.

혹, 아가가 "엄마 천지삐까리가 무슨 말이야?"하고 물으면 "응,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야."라고 선선히 대답하겠지만 아윤이가 글을 읽을 때쯤 리스트를 짜잔, 하고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게 엄마가 태어난 곳에서 쓰는 단어들이야, 하고.

물론 아이의 습득력은 상상을 초월하니 물어볼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아빠, 나 이거 쌔그러워서 못 먹겠어."

라며 사투리라곤 써본 적도 없는 찹쌀떡 군에게 말할 수도 있다.



그래도 혹여나, 나 역시 언젠가 안 쓰는 것 아닐까,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 생각나는 대로 틈틈이 적어보려 한다. 사용되지 않는 언어는 사어가 된다. 죽은 언어. 죽어서 가슴이 아픈 건 사람이나 동물, 생명이 있는 것뿐만은 아니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사라지고 잊혀진 언어가 많을 거라 확신한다.  



그렇기에 오늘은 나를 위하고 아윤이를 위하고 어쩌면 찹쌀떡 군을 위한 대구語 기록의 작업.


1. 그마이 = 그만큼

2. 짜달시리 = 그다지, 별로

3. 뭐라카노 = 뭐라고 했니

4. 됐다 고마 = 그만해

5. 쌔그랍(럽)다 = 시다

6. 천지삐(빼)까리 = 아주 많다

7. 맞나 = 정말?

8. 마카 = 모두

9. 정구지 = 부추

10. 걸구친다 = 걸리적거린다

11.디다 = 힘들다

12. 매매, 단디 = 제대로, 확실히

13. 어제 아래 = 그저께

14. 만다꼬 = 왜

15. 파이다 = 별로다

16. 니 맹키로 = 너처럼

17. 고단(당)새 = 그새

18. 문때다 = 문지르다

19. 쑤그리다 = 숙이다

20. 남사시럽데이 = 부끄럽다

21. 쌔리삐까리다, 쌨다 = 많다

22. 티미하노 = 얼빠졌다

23. 어리하노 = 얼빠졌다

24. 절단났다, 니 = 너 큰일 났어

25. 대븐에 = 단번에

26 욕봤데이 = 수고했어

27 벌거지 = 벌레

28. 끄내끼 = 끈

29. 복장 터지겠다 = 답답하다

30 지끼지 마라 = 얘기하지 마라

31. 언치다 = 체하다

32. 카면 = 그러면

33. 낭창하노 = 맹하다

34. 히매가리 없다 = 힘없다

35. 선나꼽쩨이빠이 없다 = 조금밖에 없다

36. 가제이~ = 잘 가

37. 선낫 = 조금

38. 똥강새이 = 똥강아지

39. 헤깝하다 = 가볍다

40. 고(꼬)네이 = 고양이

41. 마실 = 마을, 동네 나들이

42. 디게 = 매우, 몹시

43. 산만디 = 산꼭대기 

44. 한데 = 한 군데에

45. 메리치 = 멸치

46 뻐뜩하면 = 걸핏하면

47. 똑띠 = 똑바로

48. 상그럽다 = 불편하다

49. 숨쿠다 = 숨기다

50. 까립히다 = 할퀴다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늘릴 마음이다.

그러고 보니 외할머니와 함께 살 때 그녀가

"가새이 가온나, 가새! 퍼뜩 안 가오나!"

라고 한 말에 어벙벙하게 주위를 둘러봤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그 '가새'인지 '가새이'가 뭐란 말인가.

외할머니가 가위를 들고 '가새이 모리나.'라고 말할 때까지도 정말이지 그게 가새인지 몰랐다.



그런 상황은 엄마와 아윤이 사이에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친정엄마는 근 40년을 대구에서 살아 대구 사투리가 심한 데다 어조도 딱딱하다. 아윤이에게 단어 하나씩 차근히 조곤조곤 말해주면서 할머니가 말투는 좀 차가워 보여도 정이 참 깊은 사람이라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도 말해줘야지.



문득 새로이 신기하다.

그 시절의 어리던 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남매를 먹여 살리느라 쌔가빠지게('힘들게'란 뜻입니다) 고생하던 엄만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기억되고 그보다 많이 잊혀진 시간들.

괜히 마음이 찡해지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오늘을, 오늘의 찰떡이와 엄마를 더 사랑하고 고백하려 한다.



"찰떡아, 윽시로 사랑한데이."



괜히 잠든 아가에게 다가가 손가락 빗으로 가늘고 보드라운 배냇머리를 쓸어 넘기며 속삭였다.

소곤소곤 소곤소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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