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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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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27. 2020

엄마의 사교 활동

모든 엄마에게 꼭 필요할 





이틀 동안 아윤이는 바깥 구경을 했다. 

엄마의 사교활동이 그 이유다. 



어젠 자연 언니의 도움으로 아기의 옷 정리를 한 뒤 새로 생겼다는 칼국수 가게와 역시나 새로 생긴 카페를 찾았다.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이 동네 길가엔 하얀 포도송이 같은 아카시아 꽃향기가 흐드러지고 텅 빈 공터의 잡목 사이로 보이는 노을은 꽤 낭만적이었는데 이젠 그 모든 곳에 건물이 피었다. 꽃망울이 터지듯 한순간에 여러 곳에서 높은 빌딩들이 순식간에 지어졌다. 꽃 대신 건물이 만발한 것이다. 물론 개발된 덕에 좋은 점도 있다. 예를 들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떡볶이집과 카페가 생긴 정도지만. 



아가의 물려받은 옷을 정리한 덕에 기분이 말쑥해져서인지 칼국수집과 카페에서 나름의 여유를 부렸다. 물론 혼자가 아니기에 가능한 여유이기도 했다. 불쑥 칼국수를 먹던 나와 아윤이를 빤히 보던 언니의 아들, 이안이가 말한다. 

"육아란 이렇게 밥을 먹다가도 해야 하는 거구나."

그 아인 올해 4학년이 된다. 

열한 살 아이의 눈에도 육아는 녹록지 않은 모양인가 보다. 



그리고 오늘은 얼마 전 새로 사귄 친구, 다리아 Daria를 만났다. 그녀는 같은 아파트 주민으로 운동하던 도중 나의 오지랖으로 알게 된 이웃이다.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와 만삭에 가까운 볼록한 배가 눈에 닿자마자 생각했다. 

'가족이 없는 머나먼 타지에서 아기를 가진 마음이 어떨까.' 

아는 사람만 안다고 했다. 뱃속에서부터 아기를 키우는 고충과 타지(고향이 아니거나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그 고충을 견디는 외로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의 몫이기도 했다. 고향을 물어보니 그녀의 집은 여기서 7000km 떨어진 곳이라 한다. 정확히 그 거리를 외우고 있는 그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300km의 거리로 애달파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것이다. 그리움을 수치로 비교할 순 없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찾아갈 수 있는 거리인지 아닌지는 아주 큰 차이가 있으니까. 물론 마음을 먹는 그 자체가 힘들긴 하지만. 



300km 정도 고향과 떨어진 엄마는 아기가 더 이상 쓰지 않는 수유쿠션, 옷, 베개와 걸음마 보조기를 고향에서 7000km 떨어진 엄마에게 건네주고는 함께 카페에 갔다. 재잘재잘, 카페의 소음에 보탬이 되는 사이 아가는 잠깐의 쪽잠을 자다 깔깔거리며 웃는 날 빤히 쳐다본다. 일순 말을 끊고는 나 역시 그런 아가를 지그시 바라본다. 아기가 할퀴어 왼쪽 눈 아래 난 상처와 내 품에 하도 비벼서 빨개진 볼따구, 요즘 숭숭 빠지는 탓에 듬성듬성 비어있는 머리카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빛나는 까만 눈동자는 물론이다. 일시 멈춤의 순간이 지나고 다리아는 다시 말을 걸어온다. 


"그런데 아기가 있으면 더 심심하지 않아? 섬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여긴 할 것도 없는데 말야."

지금 우리가 앉은자리에 아카시아 나무가 뿌리를 내렸던 걸 그녀는 모르는 걸까.

"심심하기는. 아기가 있으면 심심할 새가 없어."


지나간 시간은 알 방법이 없지만 오는 4월에 출산할 예정이니 이 말에 대해선 그녀도 곧 인정하게 되겠지. 

이안이가 말한 대로 육아는 밥을 먹을 때도 해야 하고 잠을 잘 때도 해야 하는 '삶'그 자체라는 걸 말이다. 



간만에 잡힌 약속 덕에 콧바람을 좀 쐬긴 했지만 아직 너무 어린 아가를 데리고 나가는 일은 여러모로 힘들다. 어쩌면 이유나 목적도 모르고 엄마 따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아가의 입장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틀 동안 아윤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탐색하고 호기심 있게 바라봤다는 점이다. 고요에 가까운 집과 달리 소란스러운 밖의 풍경이 신기했을까. 

아가, 세상엔 다양한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관계, 장소가 있단다. 



지금은 어딜 가든 꼬옥 안아줘야 하는 아윤이지만 조금의 시간만 흘러도 제 발로 걷고 총총총 다닐 것이다. 

그리고 또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엄마와 친구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이며 아는 체를 하겠지. 

내가 해야 할 말을 자기가 물음으로 대신할지도 몰라. 


"유가? 유가?  그게 모야? 그게 모야?"

"보오리? 보오링? (boring)"


아니야, 또 모르지. 물음표 대신 느낌표가 가득한 대답을 내놓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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