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기와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신 Sep 25. 2020

생활 속으로

in to my life





작은 화면 속 사진 너머로 보이는 타인의 생활엔 조급함이나 흐트러짐 하나 없다.

똑같이 2019를 지나 2020을 사는 데 어쩌면 이렇게 나와 다른 모습일까. 목이 잔뜩 늘어난 맨투맨에 부스스한 머리, 졸린 눈으로 휴대폰 창을 닫는다.

어쩌면 그들은 다른 은하계에서 살지도 몰라.



아가는 요즘 들어 새벽에 자주 깨고 자주 운다.

'도약기'라 불리는 성장기인 듯하다. 하나의 작은 변화, 하루의 패턴이 변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뭔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비치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침 빛도 온전히 비치기 전인 새벽 5시 30분부터 일어나 놀고 싶다며 투정 부리기 시작했다.


'엄만 잠 좀 더 자고 싶은데...'


어림없는 일이다.

아가에게 자유의지가 생기고 나서 엄마의 자유의지는 얼린 밥 신세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 모두 다 얼려 놓았다가 잠깐의 짬이 났을 때만 후다닥 띵! 해동시킨다. 그것도 한꺼번에 모두 하기란 엉킨 실을 푸는 것처럼 힘들다. 한 번에 하나씩만 아껴가며 간신히 할 수 있다.

일분이라도 더 최대한 재우려는 자와 거실에 나가서 놀려는 자의 눈치싸움은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고 결국은 조그마한 녀석이 승리했다. 부루퉁한 얼굴로 저를 째려보는지도 모르고 찰떡이는 헤헤 웃는 낯으로 날 바라본다. 어쩔 수 있나. 피익, 그만 웃고 만다. 어깨엔 아윤이 같은 분홍 아기돼지들이 한 열 마리쯤 매달려 있는 것 같지만 마음에 쌓인 피로는 뭉근하게 덥힌다.

오늘도 이렇게 시작이다.



등기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을 가거나 작은방에서 빨래를 갤 때, 잠시 한숨 돌리러 집 앞을 산책할 때 모두 내 곁엔 작은 인간이 달랑달랑 붙어있다. 1+1, buy 1 get 1 free의 모양새다. 세수는커녕 이도 닦지 못하고 집 밖을 나선 탓에 고개를 푹 숙인 어미와는 달리 아가는 세상 모든 것들이 신기한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까만 눈을 반짝 빛낸다.

눈부신 햇살 아래 흔들리는 나무, 오고 가며 저를 보고 웃는 사람들,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마른 겨울 냄새, 모든 게 새롭다. 나의 제자리걸음 같은 하루는 아가에게 멀리뛰기와도 같은 모양이다.



집 밖의 세상을 흘긋, 염탐하며 잠깐의 눈을 돌리고 싶을 때 sns를 한다. 손바닥만 한 화면 속 그들은 아름답고 재능 있으며 그 배경 역시 완벽하다. 아기를 안고서도 표정은 여유롭고 옷은 세련과 과감의 가운데에서 도도하다. 사진 속 인테리어나 요리도 잡지에서 오린 것처럼 멋스럽다. 나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게 맞을까? 내 것 아닌 세상이다. 정말이지 화보 같은 그들의 일상은 내게 없다. 정돈된 화이트나 우드의 인테리어 대신 알록달록한 장난감들이 굴러다니고 엎어져 있는 게 우리 집 거실이고 예쁜 식기와 화병의 꽃이 진열된 부엌 대신 이틀 치가 밀린 설거지가 쌓인 싱크대가 내 생활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대로의 모습이 좋다면 허세로 들릴까. 그러나 정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뒤섞인 하루가 좋다.

부스스한 내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아가와의 씨름, 존재 자체로 힘이 되는 찹쌀떡 군, 좋아하고 필요한 사물이 가득한 집, 그리고 잠깐 동안 해동된 나의 자유시간 같은 뭐 그런 것들. 



똑같은 공간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있는 두 사람도 보는 시각, 자세, 행동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을 테니까. 심지어 다른 장소와 시간에서 사는 sns 속 사람들은 말 그대로 다른 은하계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의 수만큼의 은하계가 존재한다고나 할까. 유일무이한 저마다의 세계 말이다. 침범할 수 없고 복사할 수 없는 각자만의 시간과 공간, 그 속에서의 생활.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화면 속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내 세계의 하루를 알뜰히 살아내는 것뿐이다.

내 곁의 1+1 작은 아가와 함께 말이지. 



일찍 일어난 탓에 낮잠에 빠졌던 아가가 잠이 깼다.

색색의 아기 장난감과 나의 생활 속으로 뛰어들어가야겠다.

우선 요 귀여운 아가의 기저귀부터 갈고 나서.




_


매거진의 이전글 poco a poc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