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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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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29. 2020

#가문의 귀염둥이

를 소개합니다, 20200127 




태어난 지 21주 되는 아가에게는 지나가는 구름의 모양마저 새롭다.

처음 맞는 계절의 냄새와 사람들 목소리의 높낮이와 웃음, 처음 만져본 귤의 촉감.

그리고 한 해의 시작.



양력에 익숙해진 우리지만 아직 설날과 추석만은 음력을 쇤다. 매번 바뀌는 날짜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그 갸우뚱을 물려줄 아이를 데리고 서울에 있는 친척 집을 향했다. 전날 미리 대구에서 올라온 엄마와 함께였다. 늘 편한 옷을 입고 오던 엄마는 이번만큼은 웬일인지 있는 대로 멋을 부렸다. 부채꼴의 화려한 깃털을 펼친 수컷 공작새처럼 그녀가 생각하는 맵시를 차르르 펼쳤다. 단발머리는 동그랗게 말아 단정히 핀을 꽂고 눈에는 은은한 아이섀도, 거기에 파란빛이 도는 모피코트와 롱부츠를 신었다.


"지금까지 본모습 중에 오늘이 가장 예쁘신데요?"

"그러게? 우리 몰래 어디 데이트 가는 거 아니야?"


진심 어린 우리의 농담에 엄마는 멋쩍게 웃지만 난 안다. 그녀의 깃털은 다른 공작새를 홀리기 위함이 아닌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화려함은 지난날의 힘들었던 시기에 대한 스스로의 보상에 가깝다.



5남매의 넷째로 자란 나의 엄마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자식 둘을 데리고 이혼한 탓에 당신의 형제들에게 매번 나와 동생의 거처를 부탁했다. 당신이 돈을 버느라 바쁜 사이 어렸던 우리를 돌봐줄 어른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서울, 대전, 상주 이곳저곳을 부모 없이 유랑민처럼 살아야 했던 남매의 삶이 고달팠다면 차마 자식을 내버리지 못하고 근근이 돌아다니며 부탁했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서른도 안된 그녀가 제 형제들에게 '한 달에 돈은 꼬박꼬박 부칠게'하며 맡긴 그 마음은 또 어땠을까.



모피코트의 양팔 사이로 듬직이 둔 딸과 아들, 그리고 또 그들의 딸과 아들은 그녀가 이룬 금의환향이다.  서러운 젊은 시절, 엄마 역할을 이겨내고 삼대를 이룬 멋진 할머니의 시대를 맞은 것이다. 이 당당한 걸음의 종점인 큰 외삼촌 네의 현관엔 신발이 가득이다. 어색하고 과장된 인사가 오가는 사이, 한 끗 차이로 서먹할 수도 있는 분위기를 봄바람처럼 날리는 이가 있다. 바로, 내 작은 손으로도 네 뼘이 안 되는 찰떡이다.

모든 시선이 아기로 향한다.

모든 손길이 아기에게 뻗는다.



고 작고 뽀얀 몸에 웃음보따리라도 품고 있는지 아가의 닿는 시선마다 손끝마다 환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따스한 힘이 향기롭게 퍼진다. 큰 외숙모는 '아기가 제일 어른'이라며 긴 갈색 소파에 찰떡이를 앉혔다. 빨쪽한 아가의 웃음을 소파를 빙 둘러싼 모두가 더없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 정도면 우주 대스타인데?'


맘껏 관심과 사랑을 받는 아가를 보는 기분이 이상하다. 지난날 뒤엉킨 감정은 흐른 시간의 거리만큼 오늘의 행복만큼 옅어진다.

화려한 한 마리의 공작 같던 그녀의 속은 나보다 훨씬 더 묘하고 후련했을까.  



얼굴은 모르지만 내 핏속에 옅게 흐르는 누군가를 위해 절을 하고는 안산 집으로 향했다.

어김없이 이곳에서도 찰떡인 대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모, 이모할머니의 사랑을 담뿍 받고 안긴다.

통통한 작은 몸의 체온이 집안의 온도를 한껏 높인다. 그런 아가에게 고모는 새해 선물로 ‘#집안의 귀염둥이’란 문구가 새겨진 빨간 옷을 선물했다. 그 문구에 자연스레 고개가 주억인다.

하루 종일 아가를 데리고 다니며 느낀 감정이 명쾌한 한 문장의 글씨로 옷에 새겨져 있다. 늘 내 눈에 예쁜 아기라 생각했건만 아니었다. 우리 가족, 우리 집안의 귀염둥이다.

작은 몸으로 곳곳을 환한 웃음으로 밝히는 큰 힘을 가진 우리 사랑 보따리, 웃음 항아리.



우리 찰떡아, 윤아, 아윤아.

새해 복 가득 받고 늘 건강하자.

올 한 해 네가 더 웃을 수 있도록

엄마, 아빠가 노력할게.

네 웃음이 우리에겐 행복이니까.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다음번에 외할머니 보거든 생긋 웃어주렴(엄마가 안기만 하면 울었습니다).

큰 호랑이 같아도 속은 다정한 분이야.

너의 모든 시작에 함께할게.

내일도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 보자.

엄마 아빠 손 꼭 잡고.





P.s.

모두들 늘 건강하시고요,

매일 홀가분하게 보내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2019년 못 이룬 일들 2020에 이루도록 해요.

아가처럼 우리도 한 발짝 한 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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