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오로지 이 작은 생명만이

환한 이 생명만이

by 윤신




모든 게 무료하고 권태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이 번거롭게만 느껴집니다.

둘 곳 없이 바쁘고 피로한 신체의 하루엔

망상이 낄 틈새가 없을 텐데도

오늘 아침 문득

삶이 다 뭔가, 회의懷疑가 날 빤히 쳐다봅니다.

무상시로 찾아드는 감기 같은 감정이지요.



그 녀석은 아주 차갑고 평온한 것이어서

이른 아침, 아윤이를 부르는 나의 목소리와 불협한 음을 냅니다. 어울리지 않는 다른 색의 크레용을 쥐고 하루의 시작을 칠하는 형상입니다.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이제 5개월 차에 접어든 한 아기의 엄마입니다.

수많은 어제가 지나간 내 얼굴을

평정히 바라볼 수 있는 한 사람입니다.

(아닐 때도 많습니다만)



한때 전혜린이란 수필가를 좋아했습니다.

모험 전 허망을, 여행 전 피로를 상상하던 그녀를 동경하며 종종 내 마음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풍기는 센티멘털의 극점은 물론이고 '결코 평범해서는 안되'는 그녀의 지성인으로서의 삶과 기록에 매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 제 생을 마친 나이, 서른하나를 훌쩍 지난 오늘의 난 그녀의 생각에 내 생각을 덧입히지 않습니다.

그저 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 지치고 외로운 마음을 꼭 안아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녀의 말처럼 오늘 생이 다하든 십 년, 이십 년 뒤에 생이 다하든 별 차이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모든 생물과 무생물에게 찾아오는 가장 공평한 순간이고 그다지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니까요. 촛불 하나가 꺼진다 한들 이글이는 태양은 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과 십 년, 이십 년 뒤의 나와 내 주변은 분명 변해 있겠지요. 그러니 그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똑같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오늘의 하루와 20년 후의 하루가 딱히 다르지 않아도 20년 후엔 오로지 신체적, 정신적 늙음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삶이란 건 그 사이의 공간이 더 중요한 것임을 나의 어제가 일러주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바라봅니다.

이미 과거의 나가 되어버립니다.

나른한 권태도 과거의 것이 되어버립니다.



모두

그저

그렇게 지나갑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

오로지 작은 아가만이 고른 숨을 쉬며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이 조그마한 생명만이 순간으로 남아

내 손을 꼬옥 붙잡고 있습니다.

캄캄한 시간이 뒤섞인 파도의 배꼽에서

빛을 반짝이며 웃고 있습니다.

오늘은 다만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이라고

작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이 작은 나의 반짝이는 빛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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