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콩나물을 뚝뚝 다듬다가

노동요가 아닌 노동생각

by 윤신





며칠 전에 산 콩나물을 오늘에야 다듬었다. 이것도 일이라고 미루고 미루다가 천 원 치의 노란 콩나물 대가리와 뿌리가 시들해진 걸 보고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제 몸에 쓰여있지는 않지만 모든 채소엔 유효기간이 있고 그 기간 내에 먹기 위해선 일단 손질을 해야 하는 것이다. 보행기에 앉은 아가를 앞에 두고 조잘조잘 상한 부분을 끊어내며 말한다.



"엄마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아까 말이지..."



영문도 모른 채 옹알이로 대답하는 아가를 두고 오늘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어제오늘, 오랜만에 지인들에게 전화가 한 통씩 걸려왔다. 먼저 어제는 그은 삼 년 만에 전화 온 고등학교 친구였다.



"남동구나 연수구 뭐 그런데 집 괜찮아? 요즘 그쪽에 어디가 뜨냐?"



내가 사는 동네의 집 시세 이야기다. 가까이에 이사 온다는 두 손 들고 반길 질문인가 싶었지만 그 목적이 아니다. 요즘 흔히들 하는 투자인 셈이다. 그는 이미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투자 목적으로 이곳저곳을 알아보며 늘 쏠쏠한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그가 물어본 지역은 나 역시 모르는 곳들이다. 아니, 지역을 떠나 부동산이나 투자에 대해선 고양이 오줌만큼도 아는 게 없다. 별다른 그의 소득 없이 통화는 끝났다.

그리고 햇볕 좋던 오늘 오후엔 일본 유학시절부터 아는 지인의 연락이 왔다.



"넌 분양 안 받아? 난 최근에 분양받은 집이 두 군데가 있는데 한 곳이 값이 많이 올랐어. 다른 곳도 좀 오르긴 했지만."

"어머, 너무 잘 됐다. 난 분양 같은 거 잘 몰라서 한 번도 안 해봤어."

"아이고, 잘 되기는. 매달 나가는 이자만 몇 백이야."



그들의 전화를 연달아 받곤 의문이 들었다.

'나 괜찮을까?'

모두가 이번 생이 처음일 텐데 그들은 몇 회차의 삶이라도 사는 듯 능수능란하다. 태어나면서부터 꼬인 실을 푸는 기분으로 살았던 난 사실 이제 겨우 그들과 비슷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또 저 멀리 현란한 드리블로 슛을 노린다. 난 여태 뻥뻥 슛을 차지도 않고 벤치에서 그저 기다리며 살아왔던 걸까. 두통의 전화는 안 그래도 집 이사 문제로 바쁜 머리에 생각을 꾸역꾸역 더 밀어 넣는다.

친구는 말한다.

"요즘엔 착실하게 살아선 돈을 모을 수가 없어. 이런 걸 해야지."



누구나 빤히 아는 상식이 되어버린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다시 감는다.

그의 말이 맞아. 그러니 서점에서도 재테크 분야의 책이 자기 계발만큼 잘 팔리는 거겠지.

하지만 난 평생을 엉킨 실을 풀고 벤치에서 바라보는 삶에서 느끼고 배운 게 있다. 나의 취향은 재테크 서적이 아닌 시, 문학, 인문 서적이라는 거다. 어린 시절 주위 누구보다 가난했음에도 돈에 대한 욕망보단 '돈이 없어도 행복하구나'를 배운 데다(동생은 나와 다른 걸 보면 같은 상황에서 나오는 반응은 역시 사람마다 다른 법이다) 또 그런 인생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그런 나도 '나의 아이'가 생기니 불안하다. 여느 부모들이 원하듯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아이가 원하는 길을 응원하기 위해선 돈의 여유가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두 통의 통화와 콩나물 건너 제 엄말 말갛게 바라보는 아기를 보니 마음이 복잡하다.

아가, 엄마도 돈을 벌어야 할 텐데, 뭘 해야 할까?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현실에 발 딛지 않고 온통 몽상에 빠져 지낸 시간을 할 수만 있다면 콩나물 다듬듯 똑, 똑 떼내고 싶다는 마음까지 든다. 하지만 아마 그렇다면 내 인생 전체를 다 떼내야 할지도 몰라.

온갖 색으로 뒤덮인 도화지를 흰 도화지로 되돌릴 순 없지. 흰 페인트를 가득 엎어 지워야 할 거야. 그건 오히려 숨기는 꼴이구나.

집에 돌아온 찹쌀떡 군에게 물어본다.



"나도 잘할 수 있을까? 돈도 벌고 말이야."

"에이, 충분히 잘하고 있잖아."



뒷문장에 대한 답이 없다. 몇 번을 추궁해도 주어가 뭔지 모를 '할 수 있다'는 동사만 튕겨져 온다.

응, 그럼 할 수 있어.

할 수 있지, 그럼.

아마 주어는 그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돈'을 의미하지 않는 건 우리 둘 다 안다.



두 친구 덕에 역시나 내가 투자나 물정에 밝지 않은 사람이란 걸 두 번 더 깨달았지만 중요한 사실 역시 실감하게 했다. 지금 내가 함께 살고 있는 가족과 집이 달팽이처럼 내 몸에 꼭 맞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내 사람과 노오란 콩나물처럼 쑥쑥 크는 이쁜 새끼가 있다는 점이다. 몇 채는커녕 세상 모든 집을 들고 와도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 사람마다 삶의 기준과 방식이 다를 뿐 모두 소중한 것을 만들어내고 지키는 것일 뿐이지.

이런들 저런들 어때.



생각이 꼬리를 잡는 사이 콩나물은 소복이 깨끗해졌고 그걸 본 아가는 이제 저도 사람 먹을 걸 안다며 손을 쭉, 혓바닥을 쏘옥 내민다. 노오란 콩나물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큰다.

아유, 아가. 이건 익혀서 먹는 거야. 소쿠리를 냉큼 뺏아 아기의 손이 닿지 않는 식탁 위에 올려둔다.



그나저나 참,

엄마는 콩나물을 다듬으며 별생각을 다한다.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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