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의 눈, 20200205
봄의 입구에서 눈이 내린다.
차 앞창 유리에 먼지처럼 작은 흔적의 물이 닿는가 싶더니 금세 하얀 결정으로 바뀌고
짧은 터널을 빠져나오는 사이 세상은 좀 더 하얘진다.
올겨울은 춥지 않더니 드디어 눈이 오네요.
익숙한 목소리의 라디오 DJ가 말한다. 여기저기 눈에 대한 제보가 쏟아지는 걸 보면 눈 축제는 이 작은 섬만의 것은 아닌듯하다. 어느새 펄펄 오는 눈을 와이퍼로 밀어내며 70km의 속도로 도로 위를 지친다. 보통 차를 타면 끔뻑 잠을 자기 일쑤인 아기는 처음 본 눈이 신기했는지 까만 구슬 같은 눈을 도르륵 하늘로 굴리며 입을 헤- 벌린다.
오랜만에 찾은 산부인과는 여전히 만석이다. 뉴스에선 매번 출산율이 역대 최저라며 난린데 이 섬은 예외인 모양이다. 정말이지 이 동네엔 임산부가 많다. 게다가 한집에 둘은 기본이고 서넛의 아이를 기르는 집도 많다. 슈퍼 가는 짧은 길목에서도 임신부나 갓난아기 둘셋은 꼭 마주친다. 그것도 매일.
물론, 임신 전엔 눈치채지 못했던 일이다.
산부인과 소파에 대기하는 이는 많았지만 난 약만 타는 것이라 간호사가 바로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내 가슴팍에 대롱대롱 매달려 '오아~오오 아?' 수다 떠는 아가도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병원은 아윤이가 0.95cm(처음 아가를 봤을 때 크기)였을 때부터 출산 전까지 아기와 나의 안녕을 확인하기 위해 매번 가던 병원이다. 하지만 아가가 이렇게 눈앞에 보이는 한 인간으로 이곳을 밟은 건, 정확히 말하면 공중에 뜬 채로 온건 처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가가 태어나면 엄마가 자주 가야 하는 병원은 산부인과가 아니라 영유아 소아과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명의 모습을 초음파로 보여주고 실감시켜 주던 곳의 역할은 아가의 실체화로 끝나는 것이다. 물론 엄마의 검사나 질병으로 오는 경우는 제외한다.
그래서인지 대롱 매달린 아가의 등장으로 작은 로비가 술렁인다. 흘끔이는 눈빛과 인자한 미소가 대기실에 퍼졌다. 아기의 오라 aura는 평소에도 크지만 이곳에선 그 배倍다. 곧 막달인지 한껏 부푼 배의 임신부, 임신 초기인지 깨끗한 산모수첩을 소중히 들고 있는 임신부, 그리고 그 옆의 그녀의 남편 모두의 신경이 이쪽으로 흐른다.
나를 보며 그들의 미래를, 아윤이를 보며 그들의 아기를 상상했을 것이다.
반대로 그들은 나의 어제를, 작년의 기억을 불러냈음은 물론이다.
꼬물이던 배의 감각을 되새기는 사이,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대롱 매달린 아가를 안고 진료실로 들어선다.
임신하고 생긴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아기를 낳고도 자연 치유되지 않았다. 매일 이른 아침, 공복에 씬지로이드 0.05mg 한 알을 먹은 지도 일 년이 훌쩍 넘은 것이다. 어제부로 약이 똑 떨어진 상태라 전화해보니 아직은 계속 먹어야 하니 병원에 들리라고 했다. 아기를 그에게 맡기고 혼자 가려면 4일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어쩌지 며칠 뒤에 갈까, 잠시 갈등하다 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처음 저하증이 오고 약을 먹지 않아(병이 온 지 몰랐다) 생겼던 증상이 떠올라 아득했기 때문이다. 물먹은 키친타월처럼 몸은 축축 처지고, 우울은 우울대로 치달았던 때다. 입덧으로 잘 먹지 못하는 데도 살은 점점 찌고 무기력으로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고개를 흔든다. 안돼.
물론 약을 당장 안 먹는다고 그렇게 되진 않을 거다. 하지만 고통의 경험은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종일 아기와 보내야 하는 시간을 그렇게 보낼 순 없어.
진료실엔 늘 같은 그림의 의사 선생님이 앉아 있다.
백석의 '고향'이라는 시에 나오는 의원처럼 빙긋이 웃으며 아윤이를 바라본다.
뱃속이 아닌 눈앞의 아가를 본 것은 그도 처음이다.
"허허, 지금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할 때겠구나. 엄마와 항상 붙어있고."
나의 아기 시절이 기억나지 않으므로 이 시기의 행복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작은 생명을 책임지는 일상을 살았을 뿐 아기의 마음을 그려보지 않았다. 또 그려본답시고 몇십 년 전 나의 아기 시절을 떠올려보지도 않았다. 그런다 한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니 분명 언젠가의 아윤이도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반짝이며 함께 웃고 온몸으로 사랑받는, 어느 한 조각 버릴 것 없는 지금을 그저 '아기 시절'이란 네 글자로만 남길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아이가 오늘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좋다. 내가 기억하고 기록하며 이 행복을 담을 것이다. 오롯한 엄마의 행복이다.
날 빤히 보는 아가를 힘껏 안는다. 포동한 촉감, 달큼한 냄새가 좋다. 선생님은 반만 맞았다.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때를 보내는 이는 아기 만이 아니다. 아가가 바라보는 엄마 역시, 그 아가를 포근히 안는 엄마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처방받은 약을 들고 차로 돌아가는 길, 머리 위로 눈이 떨어진다.
아이, 춥겠다. 우리 아가.
커다랗고 긴 그의 패딩으로 아윤이를 감싸 안고 걸음을 재촉한다. 눈발은 사그라들었지만 아가가 눈을 맞게 할 순 없지. 걷는 내내 60알의 약은 찰랑이는 소리를 내고 아가의 볼은 따듯하다.
오늘은 봄의 입구 입춘,
겨울이 잠깐 안녕의 인사로 눈을 마중 나왔다.
라디오에선 여전히 눈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얘기하고 있고 아가는 집에 돌아가는 길 새근히 잠에 들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자장자장 우리 아가, 엄마 품에 잠이 들고
자장자장 우리 아가, 봄이 오면 봄을 걷자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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