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하루가 갑니다

20200206

by 윤신





새벽 5시 반 혹은 6시 어김없이 눈을 뜬다.

예전 같았으면 내게 한밤에 가까운 이른 새벽이지만 이젠 일상의 시작이 되어버린 시간이다.

그리고 겨울은 새벽은 더 희고 더 차고 더 검다.


오늘따라 그 시작이 유난히 피곤하다. 나른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이불을 정수리까지 푹 뒤집어쓰고 십 분이라도 바닥에 비벼대고 싶지만 어림없다. 진작부터 유리구슬 같은 눈을 똘망이는 작은 인간이 지금, 당장, 어서 침대를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있다. 큰 숨을 쉬고 졸린 눈을 비비며 따끈한 몸을 들어 거실로 향한다. 방 밖을 나서니 아가의 얼굴이 애기똥풀의 노란 꽃처럼 핀다. 저 웃음에 당할 도리가 없다.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이다.



찰떡아, 거실에 나오니 그렇게 좋아?

대답하듯 분홍 잇몸을 보이며 활짝 웃는다. 쌀 한 톨 같은 아랫니 하나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그래. 아가가 행복하다면 됐지. 아가를 잠시 바운서에 뉘고 물을 끓인다. 뜨거운 코코아 하나를 타기 위함이다.

아기를 갖기 전 친구는 말했다.

"커피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카페인 힘으로 하루를 살지, 살아. 이거 없음 난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할 거야."

그녀는 저와 저 신랑을 꼭 닮은 딸 하나, 아들 하나를 키우는 엄마다.


고백한다. 사실 그땐 '에이, 뭐 그렇겠어. 그냥 커피가 좋은 거겠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부로 육아 159일 차.

내 빌빌 거리는 활력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일으키는데 당과 커피는 필수다. 임신 전엔 마시지도 않던 인스턴트커피마저 이젠 홀짝홀짝 감사히 마신다. 심장을 뛰게 하고 호랑이 기운을 솟게 할 엄마 처방약이다.



아가는 오늘따라 더 자주 울고 짜증 냈다.

이가 하나 더 나려나. 말하지 못하는 아가의 마음을 살피며 달랜다.

뱃속에서 제 심장을 품던 엄마라도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안고 토닥이는 것뿐이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가.

오히려 그렇게 힘들던 아가를 재우는 건 수월해졌다.

옆에서 토닥이기만 해도 아가는 졸린 눈을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나면, 오롯한 나의 시간.



내일부터 3일간 먹일 감자 미음을 만들고 큰 무를 서걱 잘라 소고기 뭇국을 끓인다.

분명 우리 엄마도 안산 엄마도 맛나게 끓이는 국인데 같은 재료라도 내가 하면 엉성하다. 내일 아침 다시 손보기로 하자. 이미 시간도 늦었으니.

손과 얼굴을 씻고 가만히 앉아 있자니 시야가 흐릿하다. 이유도 없이 눈과 가슴께가 욱신거린다. 왜일까. 슬픈 일도 없는데 아니, 슬프지도 않은데 몸은 괜히 쓸데없이 수분 낭비를 한다. 하지만 나오는 걸 어쩔 순 없지. 잠시 눈물이 감정이 흘러가버리도록 내버려 둔다.

눈을 감고 몇 번의 심호흡을 한다. 배 깊숙한 곳까지 숨을 가득 들이쉰다.

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지나간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누구에게랄 것 없는 기도를 하고 곤히 자는 아가 곁으로 간다.

내일은 바닐라 라테를 마셔야지.

아이,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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