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이 오빠(초등학교 4학년이 된 동네 오빠)는 아윤이에게 두 권의 책을 선물했습니다.
이토 히로시의 '구름이는'과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
아마도 아이가 가진 동화책 중에 고르고 골랐을 책들입니다.
"아윤이는 아기니까 따뜻한 책을 읽어야 해요."
솜사탕처럼 폭신폭신한 마음입니다. 이안이가 생각한 따뜻한 책은 무엇이었을까요.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생각하는 '따뜻함'이란 또 어떤 감정일까요. 그 마음이 전해져 언젠가의 우리 아가도 이 두 권을 따뜻한 책으로 기억할까요. 아윤이가 이 책을 소리 내어 읽을 때쯤 이안이는 사춘기에 막 접어든 소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뭐든 빨라 사춘기도 빨리 온다고 하니까요. 물론 '빠르다'는 건 상대적이니 그게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나에게 빠른 시기가 누군가에겐 느리기도, 또 다른 이에겐 적기이기도 하니까요.
그저 아기들이 자연의 순리대로 크는 것처럼 사춘기도 저마다의 시기에 찾아올 뿐이겠지요. 이안이의 사춘기는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딱 이안이의 흐름 속 제때에 올 것입니다.
171일 동안 아가의 곁에 있어보니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일 년은 어른의 십 년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나와 아윤이의 일주일, 함께 붙어 있어도 우리 시간의 깊이와 속도는 너무나 다릅니다. 제자리 혹은 뒷걸음질을 치는 나와 달리 아기는 쉬지도 않고 자꾸만 성장하고 큽니다. 매일매일 어제 보지 못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오늘은 아윤이가 지금껏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새로운 표정을 지으며 "푸우우-'하고 바람을 입 밖으로 내보냅니다. 그 느낌이 신기했는지 한참을 하더군요. 그 모습이 귀여워 자꾸만 자꾸만 따라 해 봅니다.
"이렇게 하는 거야? 푸우우-. 푸우우-."
심각한 얼굴로 둘은 한참을 침을 튀기고 입바람을 불다 까르르 웃습니다. 이렇게 아가는 오늘도 개인기가 하나 늘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아윤이는 매일 다른 하루와 성장이 버거운지 으아앙하고 울음을 터트리기도 합니다. 사실 그게 정말 성장 때문인지는 나도 잘 몰라요. 이유를 찾지 못한 어른들이 '성장통'이라 부르며 제각기 해석을 어 놓지만 그 이유는 아기만 알 뿐이지요.
어쩌면 단지 어제와 다른 바람의 소리나 시간의 냄새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안이가 골라준 두 권의 동화책을 읽어봅니다.
「우리 엄마」 속 색색의 꽃이 만개한 그림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엄마의 옷이 되고 나비의 날개가 되고 고양이의 리본이 됩니다. 작가는 이 풍요로운 꽃으로 엄마의 색을 표현했나 봅니다.
우리 엄마는 무용가나 우주 비행사가 될 수도 있었어요. 어쩌면 영화배우가 될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우리 엄마가 되었죠.
우리 엄마에서 가장 좋았던 글입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엄마 아닐까요. 우리 엄마는 무용가나 우주 비행사가 될 수도 있었어요. '에이, 정말?'하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엄마도 한때 수많은 꿈을 꾸고 가능성을 지닌 한 사람이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그 꿈과 가능성은 현재 진행형일 수도 있어요.
다음으로 연한 파랑의 하늘이 예쁜 「구름이는」의 첫 장을 엽니다. 은은한 색연필의 하늘과 땅 사이에 구름은 제 모습을 시시로 바꿉니다. 비행기로, 사자로, 악어로.
심지어 멋진 수염이 달린 거인으로도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이내 모양이 곧 사라져 버리지요. 그래서 구름이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 아무런 모양이 없는 게 그것이 나의 진짜 모양일지도 몰라.
그 얼마나 직관적이고 단순한 해답일까요.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어른들은 한참의 시간을 쏟지만 구름이는 몇 페이지 만에 금방 생각해내곤 또 흩어집니다. 자신의 진짜 모양으로요. 구름이는 참 기특한 구름입니다.
두 권을 덮고 나니 가슴 어딘가의 몽글한 기운이 화아하고 퍼집니다.
아가와 '푸우우-'하면서 도르륵 책장을 넘기는 사이 어쩐지 이안이가 말한 그 따뜻함이 조금은 내게 스며든 것 같습니다.
함께 책을 보던 아윤이는 어땠냐고요?
호기심 있게 책을 빤히 바라보던 아가는 손을 뻗어 책장을 넘기는가 싶더니 냠냠 책을 먹으려 합니다. 당연해요. 아윤이는 아직 5개월을 지나는 아가인걸요. 모든 걸 입으로 확인하는 아가는 책도 혀의 미각으로 확인하려 합니다. 딱 그럴 시기니까요.
이렇게 저마다의 속도에 맞춰 아이들은 하루를, 제시간을 살아갑니다.
그리곤 어느새 훌쩍 성장해 있겠지요.
아윤이가 이 동화책들을 고 시냇물처럼 맑은 목소리로 졸졸졸 읽을 날이, 이안이의 소년의 사춘기가 찾아올 날이 말입니다.
그때까지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성장과 경험을 할까요. 구름이처럼 제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하는 아이를 위해 온몸으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잠시 생각해봅니다. 어머, 이건 아윤이가 아닌 나를 위한 책 읽기 시간이었네요.
어쩌면 이 동화책들은 이안이 오빠가 아기와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나 봅니다.
p.s. 이 따뜻한 책 나랑 아가랑 함께 잘 읽을게.
고마워, 이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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