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가장 잘한 일 두 가지

그가 말한, 내가 말한

by 윤신




찹쌀떡 군은 제 인생 중 가장 잘한 일이 두 가지라고 말한다.

하나, 나와 결혼한 것.

둘, 아윤이를 가진 것.

흐음- 의심하는 눈빛을 보내다 픽, 웃어버린다. 만족이야 어떻든 나와 결혼한 건 제가 선택한 일이지만 아윤이를 가진 건 본인의 선택과는 무관하지 않은가.



또 작년엔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난 올해 가장 잘한 게 세 가지가 있어. 건조기 산 거, 무선 청소기 산 거, 아윤이 가진 거."

건조기와 무선 청소기 사이 어딘가 아윤이가 난데없이 끼였다. 계획적 임신도 아니고 본인은 내가 임신할 줄도 몰랐으면서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다니. 게다가 건조기와 무선 청소기도 내가 우겨서 산 게 아닌가.

입을 샐쭉이 내민다.

"아윤이는 가질 줄도 몰랐잖아. 게다가 임신은 내내 내가 했는데 뭘 자꾸 자기가 가졌대."

"에이, 그 씨앗을 내가 준 거지. 그러니 아가가 생겼지."

무슨 밭에 씨 뿌리는 친 농경 같은 대답이지만 은근 설득당해 '하긴, 그렇지.' 따위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다른 날도 아니고 딱! 그날, 응? 그 염색체들이 만났으니 찰떡이가 생긴 거잖아. 우리 찰떡이라 너무 다행이야. 다른 아기였으면 이렇게 예쁘지 않았을 텐데. 찰떡아, 고마워. 그 많은 정자 중에서 1등 해줘서."

X와 X의 만남. 이젠 또 생물학적인 접근이다. 찰떡 정자가 찰떡 난자를 만나는 경주에서 이긴 덕에 지금의 아윤이가 되었다는 거다. 맞는 말이지만 자신의 아기에 대한 발상이 참 새롭다.

"하긴, 이 허벅지 봐. 이렇게 튼실한데 1등 할 수밖에 없지."

심지어 솔직한 아빠 같으니라고. 칭찬인지 놀림인지 헷갈리지만 역시나 이 말도 설득력 있다.

이러니 부부인가.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아윤이는 우리가 온전한 의지와 선택으로 뛰어든 운명 같은 아이가 아니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우리에게 찾아온 축복 같은 존재다. 나의 자궁경부암의 재발과 반복된 수술로 아기를 갖는 건 엄두도 내지 않던 우리다. 기대하고 꿈꾸다 실망할 바에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게 나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찹쌀떡 군은 날 배려해 자기는 아기를 싫어한다는 말을 몇 년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나는 이번 생 우리 곁의 아가는 유니콘 같은 신화적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2019년 8월 31일, 아득한 이야기나 타인에게서만 듣던 아가의 탄생이 우리에게 일어났다.

아직 붉게 자국이 남은 내 배의 날렵한 칼자국 사이로 나온 3.61kg의 새 숨, 새 울음.

피로 이어진 열 달을 보내고서 마주한 낯선 얼굴.

그때만 해도 몰랐다. 지금처럼 이 작은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이 이렇게 커질 줄은. 아마 찹쌀떡 군도 그렇지 않을까. '이렇게 아가를 온몸으로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니 말할 수 있다. 아가는 우리의 의지가 아닌 제 운명, 사랑받고 나눠주기 위한 제 숙명을 쥐고 태어났다.



“하나는 자기랑 결혼한 거고, 둘은 아윤이를 가진 거야.”

틈만 나면 그는 제 인생 중 가장 잘한 일이 이 두 가지라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실인지는, 또 아윤이를 가진 건지 받은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뭔들 어떠랴.

나 역시 내 곁의 그들이 내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이라 여긴다. 내가 선택한 사람과 우리에게 찾아온 작은 사람. 인생은 내가 선택한 것과 내게 주어진 것 사이에서 타는 멋진 줄타기만 같다.



오늘은 나도 그에게 얘기해야겠다.

"내가 가장 잘한 두 가지는 너를 만난 것과 아기를 품은 거야.

그래서 이렇게 우리라 부르던 너와 내가 셋이 된 게 내 인생 가장 감사한 일이지.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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