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생일 축하합니다, 우리들의 엄마들

20200306, 생일 전에

by 윤신





매년 이맘때면 생일의 향연이 펼쳐진다.

3월 4일은 시누이, 5일은 찹쌀떡 군, 8일은 나의 생일.

장난감 기차처럼 줄지어진 이유로 삼월 첫째 주는 내내 생일 축하를 하고 받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일 년과 하루 차이로 태어난 남매의 생일을 축하하다 문득, 딱 그만큼의 차이로 두 아이를 낳았을 그들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오직 태어난 사람에게의 축하가 맞는 걸까.'



출산 후 (고작입니다만) 6개월간의 육아생활을 하고 나니 ‘생일의 주인공’에 대한 시선도 조금 달라진 모양이다. 생일에 축하를 받고 그날의 기쁨을 나눠야 할 사람은 탄생한 이만큼이나 생명을 품어온 이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걸 보면 말이다.

태어나는 과정을 함께 이뤄낸 두 명의 주인공이랄까(일 년에 생일 두 번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아마도).



그렇게 다가올 내 생일, 3월 8일.

삼팔 광땡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가 있어 적어본다. 그 하나는 편지다.


「엄마,

나 낳아주고 지금껏 길러줘서 너무너무 고마워요. 엄마에게 자랑스런 딸이 될게요.

엄마 딸 신이가」


늘 내 생일이면 엄마에게 편지나 문자로 글을 보냈다. 매번 조금의 변주가 있지만 늘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한 번도 '자랑스러운 딸'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 것 같아 멋쩍은 마음에도 부끄러운 손은 매년 같은 글을 적어 내렸다. 나름 '언젠가'를 기약한 미래지향형의 문장인 셈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엄마가 늘상 말하는 레퍼토리다.


"니를 낳을라고 병원 세 군데를 돌아다녔다 아이가. 처음 간 병원은 너무 작아서 다른 데 가라 하고, 아파 죽겠는데 니 머리가 골반에 꼈다꼬 딴 데서도 수술 몬해준다 하고. 결국 맨 마지막에 간 큰 병원에서 수술했는데 진통만 24시간을 했다. 하이고. 골반에 끼가 니 머리는 또 얼마나 퉁퉁 부었든지."


당시 제왕절개 수술은 대구 여느 집 전세에 맞먹는 돈이 들었다고 한다. 인생에 시작부터 그런 어마한 돈이 들었다니 마이너스 통장을 뚫고 태어난 삶이다. 한편으론, 태어날 때부터 불효를 한 기분이 든다. 그 고생을 시키고 돈까지 다 쓰게 만든 딸이라니, 어린 엄마로선 이게 뭔가 싶지 않았을까? 임신 따위 다신 하지 않겠다 맘먹지 않았을까? 씁쓸해진 입안을 침으로 삼켜 넘기고 험난한 첫 제왕수술이 끝난 엄마의 하루를 생각해본다. 누가 제대로 미역국이나 끓여 줬을까? 20살이나 차이 나는 남자와 결혼하겠다며 뛰쳐나간 딸과 연락을 끊었던 외할머니는 과연 당신의 딸과 손녀를 안아주려 찾아왔을까? 공부시켜준다는 말에 철없이 나이 많은 남자를 따라 나왔던 엄마는 나를 배고, 낳고 후회하진 않았을까? 아빠라 불리는 그 사람은 '잘했어, 애썼어.' 엄마를 다독였을까.

마음이 괜히 더 복잡해진다.



요 며칠 누구나의 것처럼 나 역시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테트리스처럼 겹겹이 쌓이는 피로에 점점 복잡해지는 이유식과 역병처럼 번지는 코로나 19로 제대로 된 산책도 불안해지는, 일상이 일상이 아닌 나날이었다. 아마 오늘도 그래서일 거다(과연?). 요즘 들어 '짜증 내기'를 시작한 아기가 제 맘껏 칭얼대고 있을 때 난 그만 '공기 중에 증발하고 싶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아기를 달래지도 않고 모든 것이 소진된 사람처럼 멍한 상태로 말이다. 순간적으로 아차, 싶어 바라본 아기는 어느새 칭얼거림을 그치고 무표정의 엄마를 깊고 까만 눈동자로 빤히 바라본다. 그러곤 고 밤톨 같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갑자기 환한 웃음을 짓는다. 나를 똑바로 보며 반짝거리며 웃는다.



아윤이는 오직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가는 제 통통한 몸속 가득 담긴 사랑을, 제게 햇볕처럼 쏟아지는 사랑을 나눠주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의 길이 다시 엄마에게로 향한다. 내가 이만큼 작은 어린 아기였던 시절, 엄만 어떤 마음으로 날 어르고 달랬을까. 젊고 예쁜 그 얼굴로 환히 웃었을까. 지금의 나와 아기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눈길을 주고받았을까. 지친 그녀에게 작은 난, 웃음으로 힘이 되어 줬을까.



오늘은 찹쌀떡 군의 생일이다. (생일 축하해, 내 사람)

침대에 딸과 함께 누워 꺄르르 웃는 그들을 보다 지금까지 적어 내린 생각들로 머리가 꽉 찼다.

좁은 산도를 빠져나오려 두 번의 자세 전환을 하고 머리뼈를 조이고 조였을 그의 노력도 물론 가상하지만 살면서 가장 큰 고통이었을 출산을 무사히 이뤄낸 그의 엄마, 나의 시어머니 역시 축하를 받아야 하는 날이 아닐까.

그의 핸드폰을 빌려 시어머니에게 화상 통화를 했다.

"오늘은 상혁이보다 어머님이 더 미역국을 드셔야 할 날 아니에요?"

그리곤 이내 당신이 사랑하는 손녀 쪽으로 카메라를 돌린다. 아가의 웃는 얼굴은 언제나 치료제이지만 오늘은 미역국 대신이다.



그리고 이번 주 일요일은 내 생일이다.

결혼하고 첫 시아버지 생신날, 미역국을 한 솥 끓여가는 내 모습에 위선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속상한 마음도 그 곁에 쭈그려 있었다. 이유는 빤하다. 내 생에 한 번도 엄마에게 내 손으로 미역국을 끓여준 적이 없었던 탓이다. 그래 놓고 이제 막 가족이 된 신랑의 부모에겐 이렇게 냉큼 끓이다니, 배은망덕하구나 나도 참. 그 마음을 친구에게 말했다.

"말해 뭐해. 나도 그래. 한 번도 내 엄마 내 손으로 미역국 끓여준 적도 없는데. 결혼하고 시부모 생일이라고 음식 바리바리 싸 들고 가다가 운 적도 있다야, 나는. 시댁 가는 횡단보도 앞에서 펑펑 울었어."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하며 누가 볼까 몰래 눈물을 훔치는 우리였다.



아마 이번 주 일요일에도 엄마에게 매년 통과의례처럼 보내는 문자를 아마 난 또 보낼 것이다.

다만, 올해의 엄마 생일엔

꼭 내가

엄마에게

직접

미역국을 끓여드리리라, 다짐하고 다짐해본다.

한때 내 세상, 내 전부였던 그녀에게 말이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우리들의 생일이 조로록 놓인 이 한 주는 나의 엄마와 그의 엄마가 축하를 잔뜩 받아야 할 그런 날들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생일 축하해요, 우리들의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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