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우리 집 그랜드 피아노

20200307, 결국은 부부싸움 이야기

by 윤신




우린 일어나자마자 싸웠다.

(찹쌀떡 군은 논쟁을 펼친 거라 얘기합니다만)

아기는 아침부터 칭얼댔고 그는 내가 아기 침대로 다가간 틈을 타 미끄러지듯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에 쏙 들어갔다. 내 어깨에 기대던 피로가 그를 따라 이불에 숨어들었다. 둘 다 새벽 두 시까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육퇴 후 자유(라 착각한 시간)를 좇은 결과다.

점점 울음으로 번지는 아기의 밥때를 체크한다. 분유 시간이 30분 지난 상태다.



"아기 분유 하나만 타 주고 다시 자, 자기."
대답 없는 그는 들은 체도 없이 눈을 감고 누웠다.
하아. 수면부족과 만성에 접어든 예민함이 고개를 든다. 아, 됐다 됐어.
슬리퍼로 바닥을 끌며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한다. 분유를 탄 젖병을 들고 돌아가니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수유 의자에 앉아있다. 하아. 역시 다 들렸던 거였어. 한참 말싸움이 이어졌다.

그렇다.
우린 오늘 '분유 타는 것'때문에 싸웠다.



내 말을 들었으면서 분유 타기 싫어서 눈 감고 누워있었어? - 직접 분유 타서 먹여도 되잖아? - 그럼 대답이라도 해야지. 왜 무시해. - 아니야. 아침부터 일 관련 문자가 와서 스트레스받은 상태였어.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내가 육아 같이 안 도와줘? - 아니, 내가 언제 육아 같이 안 한다고 그랬어?
정거장은커녕 종점조차 없는 대화의 기차가 씩씩대며 이어진다. 그리고 결국은 서로 아기를 보겠으니 '너나 자라'고 아웅 대는 것으로 멈춘다. 가운데에서 우릴 빤히 보던 아윤이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어휴, 그냥 제가 타 먹을 테니 둘 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세요들."


사실 이 싸움은 표면은 분유의 모습이지만 그 아래 실체는 '지독한 피로'에 있다. 아가와 매일 집에서 24시간을 보내며 이유식과 생활을 맡아야 하는 푸석한 나와 직장에서는 가득 찬 업무, 돌아온 집에선 끝없는 육아를 보는 그의 쉴 틈 없는 피로 말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실제로 들은 말이다).


"아니, 한 명밖에 안 키우면서 무슨 유난이야."

아니다. 한 명이라서 그렇다. 모든 게 처음인 탓에 더 조심스럽고 무지한 것이다. 시작이 어렵다는 말은 육아에도 해당한다. 오롯이 한 인간을 키워내는 게 쉬울 리 없다. 가끔 재난에 가까울 정도로 난장판인 집에 흰 연탄재처럼 백화한 부부와 그들의 아기 한 명, 이게 우리 현 상황이다. 고까짓 뜨거운 물에 분유 가루를 타는 일 때문에 싸운 부부 말이다.
물론, 칼로 베어진 물줄기처럼 우린 또 금방 자리를 찾긴 했다. 나의 것만이 아닌 서로의 감정을 다독일 줄 아는 어른을 흉내 내는 우리로 돌아갔다고 할까.
'내가 미안해.' '나도 너무 미안해.'
그의 몸을 안으며 화해의 무드를 만드는 사이, 아기가 '꺄아' 소리 낸다. 아니 말한다.

'훗, 내 또 이럴 줄 알았지!'



장류진 소설가는 그녀의 소설에 이런 글을 썼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중략) 아무리 부족해도 어떻게든 욱여넣고 살면 살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집이 아니라 피아노 보관소 같은 느낌으로 살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쓴다.

'이십 평대 아파트에는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지 않는다.'

마음이 속에서 공감과 비공감이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결혼과 출산에 걸음을 떼기 전 상상하던 고귀한 가족의 소리가 내게도 있다. 그리고 먼저 그 길에 접어든 그들(당시엔 이렇게 뭉뚱그려지던)이 내비치던 우월감 비슷한 감정, 혹은 '넌 모르겠지'식의 눈빛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이 순간의 난 결혼을 한 아기 엄마다. 피아노 보관소(=아기 용품이 널브러진 거실)에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무의식이 반발한다.
'그래도 아기든 뭐든 겪기 전까진 모르는 거지. 이 뼛속까지 와 닿는 감정(피로의 얘기는 여기서 빼기로 하자)은 정말 아기를 가져보지 않고선 모르는 거라고.'


요즘 세대에 아기를 가지는 건 실로 힘든 일이다. '빛이 나는 솔로와 빚이 많은 부부'라는 말도 있고 이 험한 세상에 왜 자식을 낳아 고생시키냐는 의견도 많다. 나 역시, 미세 먼지고 미세 플라스틱이고 하는 이 세상에 아윤이가 과연 맑은 꿈을 꾸며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아득한 마음마저 든다. 아기를 갖는다 건 그 모든 불안한 현재와 미래를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걱정 따위 남의 것으로 두고 휘황 찬란 솔로로 사는 게 더 전위적이고 쿨하고 멋져 보이기도 한다.



아니 다른 생각들은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솔로였다면, 을 가정한다. 그와 나 둘 다 혼자 사는 생활을 했다면 이런 물에 가루 타는 일로 싸웠을까. 이만큼이나 피곤과 예민을 전신에 '욱여넣을' 필요가 없을 테니 분명 상대를 배려했을 것이다. 지금보다 언행과 행동에 약간의 선이 그어진 '예의'라는 것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갓 태어나 제 몸을 뒤집는데도 몇 달이 걸린 생명 곁에 24시간 붙어 함께 키우지 않아도 되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린 부부다.
아침부터 분유 타는 일로 싸운 부부다(몇 번을 더 쓸 작정인가).
영문도 모르고 우릴 번갈아 보며 방긋방긋 웃는 딸 앞에서 처음으로 부부 싸움 다운 싸움을 한 부부이자 가끔 유치한 일로 거친 포효보다는 까칠한 하악질을 해대는 부부.
그 계기는 대부분 사소하지만 결국 부부 싸움이란 게 사소할수록 더 치열한 법 아닐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일보다 내 통제와 조절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계의 작은 일들이 틀어졌을 때 사람은 분에 못 이기는 법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소설 주인공의 문장은 적확하지 않다.

아기라는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는 집의 자리만 차지하는 것뿐 아니라 그를 보살피는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과 시간과 사랑, 체력과 오르내리는 감정을 먹고 산다. 하지만 그 사실의 옳고 그름, 값어치, 소중함 따위는 얘기하지 않겠다. 개인마다 다를 테니 각자의 판단과 기준에 맡기는 수밖에.



우리 집엔 이제 막 바닥을 뱅글뱅글 구르기 시작한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

새하얗고 보드라운 살결을 지닌, 고음이 특기인 피아노다. 그리고 그 피아노를 어느 악기나 존재보다 아끼는 우리가 있다.

자신이 쏟아내야 하는 모든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엄마 아빠라는 이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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