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오늘만 같아라

20200308, 어허라디야 내 생일이로구나

by 윤신





온 방안 한가득 노오란 프리지어 향이 가득하다.

두 손바닥을 가득 펴도 가려지지 않는, 아무리 가린다 해도 그 존재를 절대 숨길 수 없는 한 다발의 꽃. 정원용 가위로 깔끔히 이발한, '당신의 시작을 응원해'란 꽃말을 지닌 이 꽃은 시어머니가 보내준 선물이다. 선명한 색 사이 줄기엔 아직 꽃봉오리조차 맺지 않은 연초록이 갯버들처럼 알알이 맺혔다.

오래전 오늘, 봄이 시작하는 날에 태어난 나를 위해 보내온 마음 한 다발.



생일을 혼자, 아니 1과 1/2(아기)로 보내자니 조금 섭섭했다. 솔직하자면 섭섭한 감정보다는 점심과 저녁을 혼자서 차려 먹는 게 싫었다. 생일만큼은 생존을 위한 식사가 아닌 식사 다운 식사가 하고 싶달까. 허겁지겁 맛도 모른 채 욱여넣는 식량이 아닌 앉아서 함께 이야기하며 먹는 따뜻한 밥, 말이다. 하지만 출근하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수도 없고 다음날까지 일하는 스케줄을 내가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다.

며칠을 몇 안 되는 선택지를 손가락으로 접어보다 결국 동네에 있는 자연 언니 집에 가기로 정했다. 물론 언니에겐 미리 양해를 구했다. 코로나 19로 맘 편히 어딘가를 가기도 불안한 지금, 나는 다만 작은 걸음에 숨통을 틀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을 뿐이다.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점심을 얻어먹겠다는 핑계로 간 언니 집에서 결국 저녁까지 거하게 먹고 돌아왔다.

따뜻한 소고기 미역국을 든든히 먹고 슈퍼맨 자세에 몰두한 아윤이를 눈으로 지키며 조물조물 색색의 레고를 이리저리 맞추는 사이 시간은 금방 흐른 것이다.

매일 오늘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후 내내 언니의 아들인 이안이는 아윤이와 놀아주려 노래 '그대로 멈춰라'를 수십 번 불렀고 나와 놀아주기 위해서(?)는 잠들어 있던 레고를 꺼냈다. 그리고 나를 배려한 언니는 내가 밥을 먹거나 레고를 조립하는 동안 아윤이를 돌봐줬다(모전자전이라던가, 두 모자가 우리 모녀를 위해 마음을 써준 것이다). 그러던 중 아윤이를 살피던 언니는 몇 번 '아유- 우리 애기'라는 말을 썼다. 엄마들이 아기를 달래거나 안아줄 때 으레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때 흘깃, 이안이가 제 엄마를 본다.

"우리 애기?"


이안이는 엄마를 보며 또박또박 말한다.

"우리 애기라니. 남의 애기라고 해야지."


그렇다. 이안이가 언니의 '우리 애기'다. 초등학교 4학년에 신발 사이즈도 235로 나보다 1센티나 크지만 아직 이안이는 언니에게 아기인 것이다. 저 사랑스런 '남의 아들'을 어쩌면 좋을까.

엄마에게 당당히 정정요구를 하는 이안이에게 남의 엄마(저입니다)가 킥킥, 웃으며 말한다.

"맞아요. 언니, 이제 아윤이한테 '아유- 우리 애기 예쁘다' 말고 '아유- 남의 애기 이쁘다'라고 하세요. '오구구, 남의 애기 참 착하네' 이렇게요."


그 말을 듣던 이안이 역시 쑥스럽게 웃는다.

하지만 습관은 무서운 것, '에구, 우리 애기 그랬어?'라는 말이 또 언니의 입에서 나오고 이안이는 찌릿, 엄마를 본다. 또다시 내가 끼어든다.

"아니, 언니. 에구 남의 애기 그랬어? 지요."

툭 조약돌 같은 말에 모두가 물결치듯 웃는다. 제 엄마를 보며 환하게 웃는 이안이는 서른이 되든 마흔이 되든 평생 언니의 아기일 것이다. 동글동글 맨들한 하얀 돌 같은 아윤이가 언제까지고 우리 아기이듯이.



엄마는 자신의 아기가 자라며 이뤄가는 작은 변화들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아기가 겪는 모든 일의 곁엔 엄마의 시선이 있고 그 기억과 시선은 차곡차곡 엄마의 가슴과 몸에 인으로 박힌다. 그로서 한 생명은 누군가에게 일평생 아기로 존재하고 한 여자는 어머니의 이름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아마 뱃속의 아기를 손으로 감싸 안으며 '안녕? 아가'라고 인사하는 순간부터.



여전히 프리지어는 코끝에서 은은하게 빛난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부터 달큼한 향으로 나와 아기를 반긴 꽃이다.

다시 생각한다.

아아 오늘만 같아라.

우리의 배는 따뜻이 부르고 눈은 반달처럼 웃고 입은 노래를 부른다.



모두를 집안에 가택신처럼 머물게 하는 지리멸렬한 코로나 19는 아직 푸득이며 활개 친다.

하지만 나는 어제 뉴스에서 봤다.

저녁 온종일 화면을 메운 대구 신천지 아파트로 낙인찍힌 한 아파트의 정경에서 작은 정원 안 목련이 팝콘처럼 하얗게 방울방울 피고 있는 것을. 보이지 않는 질병에 모두가 두려움과 경계를 내 비칠 때 묵묵히 탐스럽고 흰 얼굴을 내미는 몇 그루의 목련 나무를.

아, 그래도 봄은 왔구나.

온 세상이 공포에 떨고 있는 사이에도 봄은 성큼 한 발을 내딛고 있구나.



아무리 움츠러드는 시국이라도 생일은 생일이고 봄은 봄이며 프리지어는 프리지어인가 보다.

나의 아기가 영원히 나의 아기이듯이 말이다.




p.s. 이안아, 걱정 마. 언니가 항상 나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고 아끼는 '우리 아기'는 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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