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4, 이제는 겨울이 되고 만 오늘 봄에 쓴 글을 다시 쓴다
운전하는 차창 너머 매화가 하얀 손바닥을 펼쳐 인사한다. 안녕.
겨우내 굳어 있던 땅 위의 무채색을 겹겹이 색칠할 봄이 왔다.
참 다행이다.
유난히 힘든 겨울의 마지막 발자욱 너머에도 봄은 어김없이 부닐며 찾아왔다.
코로나 19로 한동안 갈 수 없었던(불안함과 배려로 어디도 갈 수 없었다) 안산으로 향했다. 한동안이라고 해봤자 한 달 남짓이지만 오매불망 아가 얼굴을 그릴 안산 가족(시가족)에겐 한 오백 년이었을 거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시계와 달력은 무의미하다. 그들의 흐름과 기준이 시계의 물성과 다른 탓이다.
당일로 다녀오려다 ①우리의 피곤한 몸을 더 혹사시키지 않기 위해 ②안산 가족과 아가의 함께하는 시간을 위해 하루 머무르다 왔다. 정말이지 24시간 실컷 먹고 실컷 쉬다 왔다.
완전한 휴식이라기보다 휴식과 반쯤의 육아 사이를 줄타기하는 시간이었지만 충분하다.
소담한 음식의 행렬과 끊이지 않고 화-하게 터지는 웃음이 뭉친 마음 언저리를 풀어준 것이다.
아아, 코로나도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 가족과 집이 있어 맛난 식사를 하며 지구가 아닌 그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겨울잠을 자듯 웅크린 우리의 몸과 마음도 사르르 풀어지면 참 좋겠다.
「또다시 소생한 봄.
앞으로 몇십 번이고 소생할 봄.
조금 지루하겠지만, 그것이 행복이란 것이다.
_시바타 쇼」
오늘 읽은 책에서 만난 문장처럼 봄은 또다시 소생했다.
비슷한 하루를 수없이 반복하며 지루에서 지긋의 경계를 오가면서도 오늘을 견뎌내도록 하는 것은 봄을 닮은 내 앞의 작은 사람의 웃음이다. 그리고 앞으로 몇십 번이고 소생할 봄에 함께할 '우리'다.
안산에서 충전한 몸을 기지개 켜고는 어머니가 준 오미자청과 물을 순서대로 유리잔에 따른다.
이 나지막한 행복에 감사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 반가운 얼굴이 건넨 어제의 인사에 느지막이 답한다.
안녕, 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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