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6, 세상 모든 아가의 아장아장과 엄마 아빠 화이팅입니다
공기도 하늘도 맑은 하루. 쾌청한 푸름 아래 썰물이 진 바다 곁을 차로 달리다 보면 그 길의 끝에서 다리로 연결되어 이젠 더 이상 섬이라 부르기 조금 망설여지는 곳이 있습니다. 무의도입니다. 여전히 그 땅은 육지와 떨어져 오롯이 제 몸만 버티고 있긴 하지만 섬이라면은 육지로 가는 수단이 배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리타분한 저의 생각에서 입니다. 하긴 무의도와 다리로 연결된 영종도에 살면서 스스로 섬 댁이라 부르니 역시 섬이라 말하는 게 맞을까 싶습니다. 외로운 섬들끼리 손을 마주 잡은 기분이 드네요.
차로 갈 수 있는 도로가 끝나고 소무의도로 가는 다리 전, 오른쪽으로 작은 샛길로 등산로가 있습니다.
호룡곡산을 향하는 길입니다.
호랑이와 용이 싸웠다는 전설에서 지어진 무시무시한 이름이지만 그 말의 울림이 왠지 귀엽습니다.
우리 작은 아가가 '호룡-호룡-' 말할 것만 같은 발음이에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정상까지 2km인 그 길을 쉬엄쉬엄 올랐습니다. 바닷바람은 귀를 에는 듯 날카로웠지만 간간이 보이는 진분홍엔 봄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아, 그동안 나의 딸 아윤이는 어디 있었냐고요?
아가는 제 아빠인 찹쌀떡 군과 함께 집에서 까꿍 놀이를 하고 침대에 누워 꽁냥 거리고 요즘 한창 맛 들인 배밀이를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난 한시 즈음부터 해가 진 뒤 온 도로가 어둑해진 시간까지 둘은 그렇게 함께였어요. 찹쌀떡 군이 내게 보내준 사진 속 부녀는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과연 그의 오늘은 편안하고 행복하지만 했을까요?
에이, 아니에요. 저도 압니다.
혼자 아가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지치고 답답한지 잘 알아요.
요즘 들어 유독 짜증을 내는 아가를 대하다 자신의 인내심의 부족을 느끼고, 아무리 안고 달래도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가를 보며 무력함에 좌절하고,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마음을 졸여야 하는 그 시간을요.
아가가 잠들었을까 살금살금 들어온 집안은 역시나 정적한 밤의 산길 같아요. 두 마리 고양이만 기지개를 켜고 쓰윽 나를 훑어봅니다.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곤 안방 문을 살포시 엽니다.
불빛 하나 없는 방에 암순응 된 두 눈에 맺힌 둘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요. 새액새액 소리를 내며 자는 작은 아가 옆, 분명 재우다 함께 잠들었을 찹쌀떡 군이 가로누워 있네요.
조심히 문을 열어 거실의 빛을 보태 카메라로 사진을 찍습니다. 곤히 잠든 1과 1/2의 내 사람들입니다.
주의한다고는 했으나 내 움직임과 셔터가 그를 깨웠습니다. 눈을 비비며 나온 그와 오늘 하루를 이야기해요. 재잘재잘 서로의 하루를 묻고 대답합니다.
그가 고맙게도 말합니다.
"또 나 쉬는 날, 자기 하고 싶은 거 있음 해요."
이렇게 얘기한 게 처음이 아니에요. 그 덕에 오늘도 자유 부인이 되었던 거지요.
하지만 다음번 그가 쉬는 날엔 나 혼자가 아닌 함께 산책을 하고 싶습니다. 시국 탓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바닷길을 전세 낸 듯 셋이서 걷는 거지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3월의 반이 지나갔는데도 여러 의미로 유난히 혹독한 이번 겨울의 산바람, 바닷바람은 매서웠습니다. 호룡곡산 정상에서 맞는 바람에 어른의 몸도 흔들거렸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 사이에도 볕은 따뜻했고 꽃은 봉오리를 맺었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이 말만큼 진리인 말이 또 있을까요.
정말이지 이것 또한 분명 지나갈 것입니다.
찹쌀떡 군 덕분에 오늘은 흙을 밟으며 기운을 충전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고마워요)
아가가 제법 잘 걸을 수 있을 땐 낮은 동산부터 시작해 언젠간 셋이서 이 산을 오르기도 하겠지요.
오늘처럼 밀 썰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바다 곁을 지나 손을 맞잡은 섬, 무의도 호룡곡산을 말입니다.
그때를 위해 우리 아가는 아마 내일도 열심히,
아주 열심히 배밀이를 하겠지요.
우선은 조만간의 아장아장을 위해서지만요.
응챠응챠.
응챠응챠.
다시
응챠응챠.
- 조금 난데없지만 세상 모든 아가의 아장아장과 모든 엄마, 아빠, 햇빛, 바람, 산, 흙, 바다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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