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가까이서 보면 억겁이지만 멀리서 보면 순식간

200일 기념 한풀이

by 윤신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m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 Charlie Chaplin




오늘은 아가가 태어난 지 이백일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관심 없는 타인의 무신경한 대답 같은 시간이자 온갖 감정이 터지다 내려앉는 활화산 같은 하루들이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가.

인생이랄 것도 없이 아윤이의 첫 숨과 시작한 이백 일치의 일기만 봐도 그렇다. 손가락 끝으로 적힌 매일의 기록엔 여유와 따듯함이 가득하지만 실상은 초췌하고 무질서한 상태다.



아가는 최근 몇 주 동안 제 의지가 강해져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찡찡거리고 울어댄다. 대부분의 경우 전후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해 요구를 들어주고 달래주지만 열에 두세 번은 눈곱만큼의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예고도 없이 혼이 쏙 빠지도록 자지러지는 그때의 울음은 아무리 어르고 안아도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정말이지 누군가의 이유 모를 짜증과 울음을 몇 날 며칠이고 계속 듣고 받아줘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그 상대가 갓난아기일지라도, 그리고 그 아기가 나의 딸일지라도.

분명 엄마 역할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데다 체력이 지친 탓일 거다. 하지만 내 사정을 알리 없고 봐줄 리 없는 아가에게 어제는 결국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아, 어쩌라고!"


소리치는 것도 모자라 아가의 통통한 모카번 같은 엉덩이 두 짝을 가볍게(죄의식이 쓴 형용사입니다) 찰싹찰싹 때렸다. 쉽사리 가시지 않던 울음이 더 세어진다. 날카로운 울음이 나를 잡고 흔든다.

지금 나, 뭐 한 거지?

어깨 한쪽 길이가 내 엄지손가락만 한 아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직도 폐가 제 기능을 온전히 하지 못해 하루 몇 번이고 '아후' 귀엽게 한숨 쉬는 아가의 엉덩이를 때린 건가?

제 입술이 부르르 부딪히는 게 재밌는지 맘마를 먹다가도 '푸푸 푸푸-'투레질을 하는 아가에게 큰 소리 낸 건가?

그것도 엄마라는 사람이?



현실을 자각하고 미친 여자처럼 다시 아가를 꼭 끌어안는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199일, 이건 그러니까 어제 일이다. (멀리서 본) 일기에 '화목한 가족'을 적던 (가까이 있는) 내가 아가의 엉덩이를 팡팡 때린 것이다. 한참을 끌어안다 울음이 그친 아기와 다시 까꿍 놀이를 하고 쭉쭉이 체조를 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롤러코스터의 하루가 또 그렇게 지나갔다.



고등학교 때 벽에 걸린 둥근 시계를 흘끔 보며 초를 센 적이 있다.

1초에서 2초, 2초에서 3초.

초가 지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눈을 한번 깜박여도 아직 일초는 지나지 않았는데 50분이란 시간은 3000초가 흘러야만 했다.

도대체 몇 번이나 눈을 깜박여야 한 교시가 끝이 날까. 그렇게 난 억겁의 세월을 열일곱에 배웠다.

그런데 또 3000초이자 수많은 눈의 깜박임으로 이루어진 50분의 수업이 가득 찬 삼 년은 왜 그렇게 짧은지, 졸업식이 끝나고 돌아본 삼 년은 찰나 그 자체였다. 첫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등교한 날 졸업한 기분이라 하면 과장이겠지만 정말 그런 마음이었다. 1초씩 바라본 50분과 3년 속의 50분은 절대적으로 다른 시간의 길이를 갖고 있다.

그리고 십몇년이 지나 그 상대적인 시간을 다시금 체험한다. 같은 하루라 해도 똑같은 일분, 똑같은 한 시간이 아니다. 때론 무량 억겁, 때론 순식간이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남의 애는 빨리 큰다더니.'

멀리서 본 육아는 빠른 모양이다. 나 역시 임신한 친구를 보며 생각했다.

'벌써 30주라니. 남의 애는 빨리 큰다더니 뱃속에서도 빠르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문장에 육아를 넣어 바꾼다.

육아는 가까이서 보면 억겁이지만 멀리서 보면 순식간이다. 억겁으로 느껴지는 데는 아마 수많은 눈 깜박거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집중하는 순간이 너무나 많아 기억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엄마의 모든 처음'을 겪고 알아가는 시간이 겹겹이 길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어느 순간 문득, 훌쩍 성장한 아가의 모습에서 시간의 속도를 체감하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졸업식에서 느낀 50분처럼 ‘지난 시간’에 대한 마음일 뿐이다.



매일 수많은 감정을 품고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기를 돌본 지 이백일이다.

막 아랫니가 나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저작운동을 하고

뒤집기가 겨우 되는가 싶더니

또 어느샌가 배를 쑥쑥 밀고 앞으로 나간다.

얼마 전엔 방긋 웃는 걸 배웠나 싶더니

이젠 또 금방 짜증 내기를 시전 한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잘 알지도 못하는 육아의 길을 한 손엔 찹쌀떡 군의 손, 다른 손엔 아가의 손을 잡고 허겁지겁 이백일을 달려왔다. 어떤 날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경보를 걸었고 다른 날은 지쳐 쓰러져 간신히 기었으며 또 어떤 날은 백 미터를 하듯 온 힘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그 모든 날 꼬옥 잡은 양손을 한 번도 놓지 않았다.

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첫 구절이 떠오른다.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아가는 지구보다, 우주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와 그를 끌어당긴다. 그 힘으로 이백일을 버티고 걸어왔다고 난 생각한다.

백일이고 이백일이고 어쩌면 그저 낮과 밤의 하루일 뿐인데 이상하게 생각이 많아진다. 마음을 스치는 문장이 많아진다. 이백일이 고작 일 년도 안 되는 시간이 아닌 하나의 세월처럼 느껴진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육아에 벌써 말이 많아진다.



하지만 쓰려던 문장은 사실 하나다.

2020년 3월 17일, 오늘이 아가가 울음으로 첫 숨을 토해낸 지 이백일이라는 것과 그것에 감사하다는 것.



아윤아,

이백 일 동안 잘 먹고 잘 자고 잘 성장해 줘서 고마워.

나도 엄마로서 잘 성장해 나갈게.

엄마도 엄마로 태어난 지는 이제야 200일이 되어서 많이 서툴러.

그래도 우리 지금처럼 사이좋게 지내자.

나의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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