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맘껏 웃고 맘껏 울고 맘껏 화도 내고

20200322

by 윤신



언젠가 적었던 글을 찾기 위해 페이스북을 뒤졌다.
'엄마'를 생각하며 쓴 엉터리 시 한 편이었다.
끊이지 않는 어제들의 기록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 속 아가는 점점 더 작아지다 내 뱃속으로 들어갔고 그 이전의 나는 결혼 축하를 받다 곧 호주에서의 삶으로 일본으로, 결국은 고대의 신에 대한 수업을 듣는 대학생으로 돌아갔다.



산란기가 되어 회귀하는 연어, 혹은 현재를 바꾸기 위해 몇 번이나 과거로 돌아가는 영화 나비효과 The Butterfly Effect, 2004의 주인공 에반처럼 나 역시 자꾸만 자꾸만 거슬러 올라가 지난 나를 마주했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과거의 흔적을, 크고 작은 돌에 패인 마음의 상흔을 써갈긴 일기를 읽기란 쉽지 않다. 오래 전의 기록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문장에서 독의 냄새가 났다.
읽다 멈추길 여러 번, 마음에 차랑차랑 물결이 인다.



흉터가 된 그때의 상처가 다시금 간지러운 기분도 들고 어쩐지 내 것이 아닌냥 생경하기도 하다.

괜찮아, 괜찮아.
아윤이에게 하듯 마음속 어린 내 손을 꼬옥 잡고 속삭인다. 아린 가슴을 붙들고 흔들림이 여전히 나의 것인가, 되묻는다.


나의 십 대 이십 대는 생채기 투성이었다.
혹 누군가에게 상처를 보일세라 꽁꽁 숨기고 '외로워도 슬퍼도' 타인을 향해 웃어 보였다. SNS에도 분노와 좌절은 비공개로 두고 태연한 하루만을 공개했다. 감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다.
‘미움받기 싫어’
여덟 살 때 깨달은 이치를 실현했다. - 그 누구도 우울한 징징이는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툴툴 털고 앞을 보며 웃는 것뿐이었으니 다만 할 수 있는 걸 한 셈이지만 결국은 그 웃음이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거짓이 아닌 진실로 환한 빛이 내 안에 머무는 오늘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아마도 내가 '제대로' 화내고 투정 부릴 줄 알게 된 건 스무 살도 한참 지나서다. 무수한 날의 사색을 거친 이해와 태도,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려 노력한 결과다. 짜증을 내는데도 통행료가 필요했던 셈이다.

(처음부터 투정을 부리는 징징이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복이다)

그래서 난, 웃는 나도 좋지만 제대로 화낼 줄 아는 나도 참 좋다. 필요하고 원하는 만큼의 화를 내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감정 표현을 솔직한 대화로 이어가기까지는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찾으려던 글은커녕 얼얼한 마음과 질문만 찾게 되었다.
연어처럼 돌아가 새로운 시작을 열 것인가.
에반처럼 태초의 자궁으로 다시 들어갈 것인가.
모든 길이 열려 있진 않지만 주어진 상황에 내 마음의 방향만은 선택할 수 있다.


아득하고 어지러운 나의 성장기를 멀찍이 되돌아보다 이제 막 생을 시작한 작은 아기를 바라본다.
아가는 어떤 삶을 살까.
제 맘껏 웃고 제 맘껏 울고 제 맘껏 화도 내고 넘어지면 오뚝오뚝 일어나고 자신의 삶을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함께 웃고 눈물을 닦아주고 달래줄 준비가 되어있다. 무엇보다 제 감정을 잘 알아차릴 수 있게 매일 대화하고 신나게 달리는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이다. 자상하고 다정한 아빠와 조금 엉뚱스러운 엄마와 세상 사랑스러운 아가는 그렇게 새 장을 펼칠 것이다.
(아, 두 마리의 고양이도 함께)
굳이 고르자면 연어의 삶을 택한 것인가, 나는.


과거의 기억, 그것도 넘치는 감성에 손을 뻗은 글은 위험하다. 환한 낮에도 축축 젖어 늘어진 감정에 취해버리고 만다.

자아, 돌아와야지. 이제 마른빨래 털듯 탁탁 털어내야지. 햇살 같은 아가가 날 부르잖니.


참, 책꽂이 어느 구석엔 중고등학교 시절의 내 일기가 있다. 그것만은 절대 열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어떤 건 덮인 그대로 두는 게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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