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3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매해 사월이면 저 시구절이 아시아 대륙 끝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뉴스와 글머리를 장식할 줄 T.S 엘리엇은 알았을까.
제주 4.3 사건, 4.19 혁명, 4.16 세월호 참사. 아마도 유독 4월에 일어난 사건들이 불러온 공감일 것이다. 하지만 434행이나 되는 장시의 첫 문장을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lest month'이라 쓴 이유는 사실 개인적인 것으로 그가 아끼던 이가 1915년 4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예술은 개인적인 감상에서 군중적인 동감으로 옮겨간다. 리트머스 종이의 색이 번져가듯.)
그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실감은 여전히 그 계절, 봄에 남아 있는데 일 년과 달은 함께 돌아 다시 찾아왔다. 겨우내 품던 마른 가지에 꽃망울이 터지고 굳어있던 땅은 따뜻한 숨을 토하는데 그 사람은 없다. 찬란한 햇빛은 그가 아닌 그의 빈자리를 비춘다. 봄인들 무슨 상관일까. 아무리 날이 좋다 한들 사랑하는 이가 함께할 수 없다면 그곳은 '잔인할' 수밖에 없다. 아니, 날이 좋아 더 괴로울 것이다.
24시간을 한 몸으로 붙어 생활해야만 하는 하루들에 지긋해했다. 잡념의 먼지를 탁탁 털고 훌쩍 떠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 내 피로를 느꼈는지 찹쌀떡 군은 내게 이틀의 휴가를 줬다. 맘껏 하고픈 일 실컷 하고 원 없이 잠들겠다 생각했으나 아니다. 모든 것이 시시하다. 그가 사진으로 보내온(아윤이와 안산 집으로 갔다) 아가의 모습보다 사랑스럽고 소중한 게 없다. 아가와 눈을 맞추고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내게 없다. 이 얼마나 별 볼일 없는 인생인가 싶지만 뭐 어떤가. 끝없이 애정이 쏟아지는 이의 곁에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둣빛 사월, 사랑하는 이와 함께임에 더없이 고맙고 고마운 마음이 인다.
사월이다.
거실 큰 창 너머로 보이는 송산엔 산 진달래, 개나리, 민들레, 이름 모를 풀꽃이 송골송골 피었다. 자다 깬 아가의 둥근 이마에 맺힌 땀처럼 송골송골, 산 사이사이에 동그마니 피었다. 천천히 걷는 길, 혹여나 작고 낮은 꽃을 밟지 않을까 걸음에 조심한다. 돌부리 옆 작고 하얀 냉이꽃이 얼굴을 내민다. 여기, 봄의 한가운데다.
이곳은 다른 지역보다 늦게 봄이 찾아온다. 대구라면 진즉에 목련이고 개나리고 다 졌을 텐데 여기는 이제 시작이다. 꽃봉오리 하나가 터지기 무섭게 여기저기 팝콘처럼 한꺼번에 팡팡 피어오른다. 볕이 거세도록 뜨거워지기 전에 아가와 산책을 자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어제 아침엔 빨간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노오란 개나리와 아기 연둣빛 버드나무 잎 사이를 거닐었다. 바다를 품은 바람은 아직 조금 차지만 날카롭지 않다. 조금 살랑이기까지 한다.
느지막이 고갤 들어도 역시 사월은 만연한 봄이다.
사월이다.
2020 원더 키디가 어쩌고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만화 속 미래 세상을 이미 세 달이나 살았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난 걸까. 몸을 웅크리던 겨울이 끝나고 봄바람이 불어서인지 하얀 달력 속 오늘의 날짜가 낯설다. 연례행사처럼 적어 내려가던 '올해 하고(이루고) 싶은 일' 목록을 아직 고민하지도 못했는데 이미 한 해의 1/3이 지나고 있다니. 이제라도 몇 개 적어야 하나 펜을 들다가 까만 별처럼 눈을 반짝이는 아가를 생각하며 단념한다. 8.5kg에 이제 제 힘으로 앉을 수도 있지만 이 작은 생명은 아직 제 손으로 밥도 먹지 못하고 걸어서 식당에 갈 수도 없다. 심지어 혼자서 잠도 못 잔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혼자서 잠들지도 못하다니. 잠이 오고 피곤하면 눈을 감고 스르르 잠이 들면 될 것을 울고 짜증을 내야만 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아기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린 탓이다. 잠드는 이유와 방법을 몰라 겁나던 시절을 망각한 탓이다.(어쩌면 잠 못 드는 수많은 불면의 어른들은 다시 포근한 엄마품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따듯하고 포근한 아가를 안고 재우다 보면 사실 올해 이루고 싶은 일 따위 어떻게든 되라지 싶다. 해내고 싶은 일보다 아가의 곤한 잠이 더 중요한 이유다. 올해 딱 하나 마음먹었던 '하루의 기록 매일 쓰기'도 아가를 재우고 이유식을 만들다 보면 금방 뒷전으로 내일로 밀려난다. 어쩌면 「아가의 세상=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세상=아가」 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월은 아가를 중심으로 빙빙 돌던 엄마에게 어김없이 찾아왔다.
사월이다.
하루를 보내다 보니 사월이란 달에 서 있다.
어쩌면 이러다 금방 십이월을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괜찮겠다는 마음이다. 이유는 하나다.
몇 년 전 인기 있던 드라마 대사를 옮겨본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사월이든 오월이든 또 유월이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해와 달과 시가 뭐 그리 중요할까.
사월은 함께 해 눈부신 그 모든 날들 중에 한 달일 뿐이다.
아가의 눈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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