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아기보다 더 아기

20200423, 겪어야 아는 것들

by 윤신



1


처음으로 저보다 작은 아기 사람을 만났다. 아윤이는 태어난 지 237일이고 작은 아기는 84일이니 거의 세 배나 되는 삶을 살기도 했다. 8개월도 채 안 되는 삶이지만 그보다 어린 생명을 만나니 여태껏 성장해 온 시간이 티가 난다. 몸무게는 고작 3kg 차이인데 전체적인 외형과 안았을 때의 감이 확연히 다르다.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아 도어 스토퍼 door stopper가 된 3kg짜리 아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의 무게를 담고 있는 셈이다. 손바닥 한 뼘만 한 몸속 자그만 폐로 숨을 쉬는 것보다 엄마와 연결된 탯줄로 숨 쉰 시간이 훨씬 기니 어쩌면 중력의 손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지도 모른다.


뉘면 뉘는 대로 누워 눈만 깜박이는 아기 곁에 찰박찰박 다가가더니 혼자 앉아 관찰한다. 아기의 옷을 만지기도 하며 신기로이 바라본다(손, 발을 입으로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마냥 작게만 보이던 손과 발이 이제 보니 갓난아기의 두 배는 되는 것 같다. 아기들의 세상에서 오 개월의 차이는 조약돌과 자갈돌만큼 다른 모양이다.

어른의 시간과 아기의 것이 강과 바다만큼 다른 것처럼.



작은 아기의 이름은 시하다.
이름의 조합 때문인지 시원한 여름이 연상되지만 시하는 겨울의 한가운데인 1월 끝자락에 태어났다.
한겨울의 여름 아이. 여름의 뜨거움을 한 겨울에도 잊지 않고 가득 뿜어대는 아이. 그 온기를 주위 모두에게 공평히 나누는 아이. 시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고 멋대로 상상했다. 역시 이름에는 힘이 있는 법이라고 덧붙여 생각한다.
시하의 엄마는 수영을 하다 알게 되었다. 소녀 같은 얼굴로 세 아이의 엄마의 역할도 거뜬히 해내는 데다 에그타르트는 물론이고 앙금으로 고운 꽃을 빚어 케잌도 만든다. 이 세상엔 도대체 멋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 건지 사람을 자세히 알게 될수록 놀라고 만다. 수없이 다양한 저만의 색과 감정과 능력을 '지나칠 뻔한 사람'이라는 겉모습 속에 숨겨두고 사는지 말이다. 일상 곳곳에 숨은 슈퍼맨처럼, 배트맨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건 역시 풀꽃만의 얘기는 아닌가 보다.


2


"아니, 세상에. 우리 아기가 언제 이렇게 컸지?"


아윤이보다 큰 아이를 만나면 그 부모들은 서로 같은 말을 하곤 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너무다 닮아 있어 어디 '부모 감탄문집'에라도 나와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시하의 곁에 두고 보니 어느새 나도 똑같은 말을 한다. 일 년의 생도 채우지 않은 나의 아기, 우리의 귀여운 베이비가 이렇게 다 큰 어린이처럼 보이다니. 분명 저 옆의 갓난아기처럼 작고도 작던 우리 아기가 이렇게 훌쩍 커버리다니. 아마 그들의 눈과 마음에도 그 생각이 떠올랐던 거겠지.

아기를 탐색하다 나를 보곤 고개를 갸웃하는 아윤이가 곧 고 앵두빛 입술로 말할 것만 같았다.

'엄마, 얘는 누구야?'

물론 아윤이는 아직 엄마라는 단어(는커녕 그 어떤 말)도 말하지 못하지만 시하에 비하면 걷고 뛰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정말이지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을 곁에 새로운 누군가 혹은 무엇의 출현에 내가 가진 것을 새로이 측정한다. 절대적인 바로미터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인간 세계에서는.



언제 나의 딸이 이렇게 컸을까.
목도 가누지 못해 늘 고개를 받치고 안아야 하고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지도 못할 곳에 시선을 두고 까만 눈을 빛내던, 붉고 작던 아가는 언제 이렇게 컸을까.
늘 아윤이를 사이에 두고 제 자식의 성장에 아연해하던 부모들의 마음에 다시 한번 격하게 공감한다.
계속 옆에서 지켜보고선 뭘 이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하고 그들의 감격을 매도했던 나를 매도한다. 만날 붙어 있으니 쌀알만큼씩의 하루치의 성장에 더 눈치챌 수 없음을 직접 겪으니 알겠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겪지 못하면 그 언저리만 짐작할 수 있는 모양이다. 아님 짐작조차 못하던가.



하지만 망각은 또 신이 준 선물.
시하가 돌아가고선 또 '나의 아가, 세상에서 제일 작고 귀여운 우리 아가'라고 노래 부른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세상에서 제일 작고 귀여운'의 객관적 정의와 '우리 아가'라는 주관적 정의가 그 반반을 담당한다. 어쨌든 이래나 저래나 아윤이는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작고 귀여운 우리 아가인 것이다.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세상 모든 아기(를 비롯한 생명)는 소중하다는 것을.
세상 모든 어른도 한때 시하처럼 작고 작은 아가였다는 것을.


그러니 한낱 한 아이의 엄마인 나는 그저 조그맣게 바랄 뿐이다.
모두에게 평안한 마음이 온 하루에 깃들기를.
그 사이사이에 사랑과 웃음 또한 머물기를.
나의 딸 아윤이와 그녀의 딸 시하의 오늘 밤도 매일 밤과 같이 안온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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