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산책과 잠

20200429

by 윤신






스마트 워치를 찬 지 한 달이 넘어간다.

작고 가벼운 이것은 밤낮 상관없이 내 오른쪽 손목에서 오늘의 날짜와 시간, 걸음수, 심장박동수를 근면하고 성실하게 재어 나에게 알려준다. 사실 이 시계를 산 처음의 의도는 25m 당 몇 번의 스트로크를 하는지, 최장 몇 m를 헤엄치는지 등의 수영 능력 측정이었지만 완벽한 타의(=코로나)로 3달째 수영장 냄새도 맡지 못하는 중이다. 이렇게 수영 기록도 못하고 까맣고 투박한 디자인인 데다 스마트 워치 특성상 매번 충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그것도 잘 때마저도 착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시계 화면은 작지만 LED로 되어 있어 까만 밤, 그러니까 아윤이가 울다 깼을 때 시계의 본 역할인 '시간을 보는 데' 충실할 수 있고 밤의 수면 시간(낮잠은 기록되지 않는다)과 질까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보기 기능도 있어 전반적인 내 생활을 수치화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아, 오늘은 8시간 잤는데도 깊은 수면이 고작 1시간도 안되네.(아윤이가 많이 깼기 때문)'

'세상에. 오후 4신데 여태 1200걸음 걸었다고?(종일 아윤이와 거실을 구르며 보냈기 때문)'



실은 요즘 들어 산책을 자주 나가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시계를 차고 생활하던 지난 어느 저녁, 집안에서 걷는 걸음이 하루 최대 2000걸음도 안될 때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 ‘걷기 애호자’이자 ‘옹호론자’였던 나로선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만삭일 때도 하루 만 이천보씩을 걷던 나였다. 그렇게 광합성을 할 겸, 꽃을 볼 겸, 바람을 쐴 겸, 만보기를 올릴 겸 이번 주는 정말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나갔다. 물론 그래 봤자 거창한 숫자는 나오지 않고 대부분 5000-6000을 맴돌지만.



그러다 오늘 3달 만에 동네 친구를 만났다.

아윤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역시나) 산책하던 중 마주친 것이다. 그녀 역시 유모차와 함께였다. 서로 피로하지만 환한 웃음과 어색한 자세로 손인사를 했다. 피차일반 아직 엄마라는 역할과 유모차라는 물체가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오랜만에 만난 우린 짧고도 가끔의 긴 영어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렇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금발 엄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배만 뽈록 나온 임신부였는데 오랜만의 그녀는 갓난아기에게 젖을 주는 임산부가 되었다. 시간이 그렇게 만들었다.

둘 다 한 손은 유모차를 끊임없이 밀고 당기며(잠시라도 멈추면 아기의 잠도 멈춘다) 엄마 생활에 대해 묻고 물었다. 그녀보다 몇 달의 경험을 더 한 나는 가끔 답 비슷한 말을 내놓기도 했지만 결국은 'Who knows?(누가 알겠어)'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아기는 언제 배가 고픈지, 왜 자다가 웃는지, 잘 먹고 잘 자고 나서 짜증은 왜 내는지, 아가는 덥고 추운지 어떻게 표현하는지, 언제부터 아기가 통잠을 자게 될지.

Who knows?

글쎄, 누가 알겠어?



그녀와 나지막한 산 아래 붉은 철쭉으로 꾸며놓은 박석 공원도 가고 뜨거운 한낮의 운동장 트랙도 빙글빙글 돌았으나 4988걸음이다. 오천보에도 미치지 못하는 걸음으로 하루가 다 저문다. 뭐 그래도 괜찮다. 오늘은 '아기 사과나무 꽃'을 발견하고 아가에게 친구가 될 '소피아'를 만나고 제법 따뜻해진 바람에 기분도 좋았으니까.

게다가 그렇게라도 걷지 않았다면 2000걸음에 미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한두 시간의 유모차 데이트를 하며 그녀에게 '요즘은 어떻냐' '필요한 건 없냐'고 물었다. 아기를 낳은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가까이에 가족이나 친척, 친구가 없는 것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같은 엄마로서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지금'은 괜찮아. 아기 낳고 2주는 매일같이 울었지만."

"왜? 너무 아팠던 거야?"

"자고 싶어서. 너무너무 자고 싶어서 계속 울었어."



아아. 결국 잠이다. 모든 건 잠으로 통한다.

갓난아기고 243일 된 아기고 엄마고 아빠고 잠을 충분히 잘 자야 한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안 아프다. 뜬금없지만 얼마 전 누군가가 권해준「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라는 책에서의 무섭도록 의미심장한 글귀가 떠올랐다.


수면 부족은 건강에 은밀하게 훨씬 더 깊이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몸의 모든 주요 계통, 조직, 기관은 잠이 짧아지면 고통을 겪는다. 우리 건강의 그 어떤 측면도 수면 부족이라는 신호를 보고 재빨리 물러나서 아무런 피해 없이 숨을 수가 없다. 집의 수도관이 터져서 물이 쏟아질 때처럼, 수면 부족의 효과는 생물의 모든 구석과 틈새로, 세포 속까지 스며들면서,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자아인 DNA까지 변형시킬 것이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매슈 워커



다시 읽어도 무섭다. 부족한 잠이 인간에게 주는 피로를 알기에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섭다. 정말이지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짧은 잠의 반복으로 하루를 연명하다 보면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자아인 DNA까지 변형 시'킬 수 있다는 말이 억지가 아님을 알게 된다. 하지만 2시간 간격으로 젖을 먹는 갓난아기 엄마에게 그러지 말고 푹 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힘내. 괜찮아질 거야. 100일만 좀 지나도 정말 희한하게 아기가 밤에 잠을 더 자더라고."

그저, 아직 두 달도 넘게 남은 그날의 희망을 줄 수밖에.(수면의 질은 역시나 장담하지 못한다)



시계는 벌써 11시를 향한다. 잘 준비를 하고 양치를 하고 책도 조금 보려다 보면 자정은 금방 찾아올 것이다. 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좀 더'를 외치며 사부작 거리는 나와 한껏 졸리면서도 더 놀고 싶어 칭얼대는 아윤이는 같은 걸까, 다른 걸까. 아윤이가 깨서 운다. 잠시 잠투정을 하며 우는 아가를 달래는 사이 만보기는 5249를 넘었다. 만보의 반을 걸은 오늘도 ‘오늘의 할 일’은 다했다. 이제 그만 걱정 말고 자자.

내일은 또 내일의 유모차 산책과 잠이 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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