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30, 상상하던 12월이 왔다
벌써 열두 달 가운데 넷째 달의 마지막 날이다.
하루는 식물의 움직임처럼 정지된 순간으로 흐르는데 한 달은 왜 화분에 빠지는 물만큼이나 빠른 걸까. 흰 벽에 걸린 달력 앞에 서서 사월을 떼야 하나, 주저한다. 이러다 분명 또 금방 연말이 찾아오겠지. 남은 달의 수를 종이로 재어보다 마지막 장을 들춰본다.
여름도 오지 않은 지금 벌써 12월이 아쉽다.
한겨울의 아가는 걸음마를 하며 좀 더 꼿꼿한 의사 표현을 할 것이다. 쌀밥도 먹고, 살아생전 나의 외할머니가 먹던 방식으로 구운 고기를 작게 작게 잘라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겨울(그때도 겨울이었다) 외할머니에게 고기를 잘라 얹으며 '아기 꺼 같아'라고 생각하던 딱 그 사이즈로 말이다.
춘사월의 말일에 십이월을 생각한다. 그리곤 세 살이 되고 네 살이 되고 다섯이 되고 언젠가 스물이 될 아이의 얼굴을 그려본다. 내심 기대도 되지만 서운한 마음이 훌쩍 크다. 나 없는 내 하루들에 ‘에이, 금방 커라. 요 녀석’하고 쉽게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녀 말이 맞았다.
내 나이 한 살 먹는 것보다 아이가 나이를 먹는 것이 더 싫다.
살구 같은 손과 쌀알 같은 치아에 시간이 쌓인다니 괜히 애달아 꼭꼭 숨겨만 두고 싶다.
그러나 어쩌랴.
지난 달력 한 장을 찢지 않아도 달은 넘어가고, 흐르고 떠오르다 침잠하는 시간은 모두의 몸을 공평히 통과한다. (어쩌면 조금은 다른 속도 일지도)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 하나다. 우리의 순간, 그 시간 속에 있는 것뿐이다.
아가의 눈을 더 오래 바라보고 더 많이 안고 더 자주 이야기할 수밖에는,
지나고 오지 않을 오늘의 아가를 온 힘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는 없다.
곧 밤 사이로 찾아들 열두 달 가운데 다섯 번째 달에도 어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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