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안녕, 철 지난 옷과 장난감들아

20200518, 감상적+자연친화적인 엄마의 아나바다

by 윤신




바운서와 철 지난 장난감, 옷들을 정리했다.

요 작은 녀석이 얼마나 살았다고 벌써 시기가 지난 장난감과 맞지 않는 옷이 있는지 괜히 애틋하고 서운한 마음이 든다. 연한 벚꽃색으로 가득한 두터운 우주복과 보디슈트의 엉덩이를 쓰담으며 옷을 개었다. 이 우주복 참 잘 어울렸는데. 엉덩이 한번 쓰담,
이 보디슈트는 배냇저고리 벗고 입은 첫 옷이지 아마. 엉덩이 두 번 쓰담.
아가가 홀짝 크는 탓에 옷은 금방 작아진다.


아니다.
옷은 제자리에서 성장이 멈췄다.
커진 건 인간이면서 옷더러 작아졌다 한다.


이사한 뒤 하루 이틀 미루던 아기 물건 정리였다.

게으름보다 서운한 마음이 날을 달을 미뤘다. 단지 사물에 불과한 것들이 아가에게서 떨어진 얇은 조각처럼 느껴졌다. 감상적인 엄마는 그 조각들을 종량제 봉투나 분리수거함에 넣길 주저했다. 동시에 자연친화적 엄마(동일인입니다)는 다섯 손가락도 채 못 꼽도록 입은 옷을 버리는 게 아깝고 아쉬웠다. 심지어 몇 벌은 시기를 놓쳐 한 번도 입히지 못했다. 대부분 면이 짱짱하니 잘 살아 있고 보풀 하나 피지 않은 것 투성이었다. 선물 받은 옷들 역시 같은 처지다. 아윤이 몸에 몇 번 닿지도 못했다.
애틋한 마음과 부디 잘 입어줄 새 주인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 막 출산한 친구에게, 아윤이보다 작은 동네 아기들에게 전했다. 감상과 자연친화가 이룬 화합의 결과였다. 아기를 키우면 그럴 일이 참 많다고 느낀 엄마는 옷을 털털 세탁하고 탁탁 널어 개며 '그곳에 가서도 아가들을 단단히 호위해 주렴.' 말을 건넸다.



장난감 역시 마찬가지다.
아기의 발달 사항과 흥미에 따라 거실 가득 총천연색으로 채워진 크고 작은 장난감들의 생태계는 계절처럼 바뀐다. 겨우 발을 까딱거리고 손을 휘젓기 시작할 무렵의 '아기체육관', 아니 그전에 이미 아기의 눈을 현란하게 미혹하던 '타이니러브 모빌', 다리에 힘이 조금 생기곤 얼굴살이 하늘로 치솟도록 뛰던 '점퍼루'는 이미 거실이라는 정글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어떤 경로로든 그중 어느 하나의 노래가 들리면 그게 그렇게 반갑고 신기한 거다. 지난 매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저 리듬이 이젠 7080 옛날 가요 같은 느낌이라니. 어딘가 그리운 노스탤지어 nostalgia를 닮은 멜로디가 되어버리다니.

만약 오늘도 거실 한가운데를 굴러다니느라 바쁘던 깜짝볼이나 아윤이가 한창 몰두해 있는 걸음마 보조기의 노래를 나중에 들어도 이런 기분이 들까. 아마도 그렇겠지. 지금은 첫 음만 들어도 달달달 욀 수 있는 이 노래들도 소란한 생활에 잠겨 까마득할 때가 올 거야. 이 지겹고 발랄한 음의 나열도 그땐 그저 그립고 반갑겠지. 어쩌면 그때까지도 이 장난감들은 새로운 아기와 새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주부터인가 아가는 소파를 붙잡고 슈퍼마리오 버섯처럼 쑤욱, 일어서는 연습을 한다.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찧으며 주저앉아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 도전한다. 오늘은 제법 서있는 폼이 안정적인 데다 손을 옆으로 뻗어 몸을 움직이기까지 했다.
아마 곧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조그만 입술을 닫혔다 열며 '엄마', '아빠' 말할 날도 금세 다가올 것이다.


얼른 커서 함께 책도 읽고 이야기도 하고 산책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지만 요즘 들어 훌쩍 커버린 모습에 왠지 서운하다. 걷고 달릴 아가의 소맷자락을 잠시라도 잡고 싶을 만큼 간절하게.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나의 바짓가랑이를 아가가 말랑한 두 손으로 잡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는 아닐까. 이 시간을 순간으로 멈추고 싶은 아가의 바람은 아닐까.
알 수 없는 내 마음과 더 알 수 없는 그 마음을 자그마한 양말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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