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아기 까치와 나의 아기새

20200525

by 윤신



볕 좋은 날 어김없는 아가와의 긴 산책 끝자락에

남의 집 앞에 옹기종기 모여든 어린아이들을 본다.


"야! 여기 봐봐!"

"우와! 이게 뭐야? 잡아볼까?"


무슨 일인가 싶어 유모차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밀어 보니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해 아기 티를 벗지 못한 까치가 나무 밑동에 옹송그리고 있다. 삐-삐-삐- 처음 들어본 아기 까치 소리는 병아리의 것을 닮았다. 새 장난감을 발견한 듯 깔깔 떠드는 아이들 한가운데서 어쩔 줄 모르던 아기 까치는 토도도, 제 힘껏 달려보지만 원래 자리에서 채 5m도 도망가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 역시 사냥에는 젬병이다. 너 다섯 명의 아이들이 나무 주위를 빙빙 돌며 포진한 뒤, 총공격에 임하지만 목숨을 걸고 경계하는 아기 까치의 방어도 만만치 않다. 몇몇 아이들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 사냥에 이내 시들해져 자리를 떠나고 남은 건 온갖 분홍으로 중무장한 두 명의 여자 아이다.

진분홍, 연분홍, 흰색에 가까운 분홍, 꽃분홍, 탁한 분홍.

아기 까치의 까만 눈엔 아마 화려한 분홍의 포식자로 보이겠지.



난 어쩌지도 못한 채 자꾸만 그 주위를 서성였다.

'저기 봐, 우리 아윤이처럼 작은 아기 새가 있어!' 괜히 아가에게 말을 건네며 근처 놀이터를 큰 원으로 비잉 빙 돌았다. 판옵티콘의 설계처럼 원형으로 발자국을 남기는 대신 눈만은 활발한 감시를 하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니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까치 두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건물 4층 위에서 나처럼 비잉 빙 큰 원으로 돌다가 잠시 앉다가 다시 초조한 지 멀지 않은 하늘을 돈다. 잘은 몰라도 나와 같은 마음이란 건 알겠다. 내 눈초리가 매웠던지 한 아이가 이제 그만 다른 데서 놀자고 한다. 하지만 다른 아이는 막무가내다.


"아, 싫어. 난 얘 꼭 잡고 싶단 말이야."


잡아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아이를 미워해서 될 일이겠냐만 큐빅이 잔뜩 달린 분홍색 모자를 쓴 여자아이가 밉다. 행동이 미우니 얼굴도 밉고 온통 덧입은 분홍도 밉다.

갑자기 센 바람이 불더니 두 마리 어른 까치가 시끄럽게 운다. 새라고 해서 모두 다 노래 부르거나 지저귀거나 우짖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새는 울부짖고 또 어떤 새는 흐느끼고 또 다른 새는 제 힘껏 소리 지르며 경고한다.

혹은 '가만히 내버려 둬!! 제발 내 아기를 건드리지 마!'라는 부르짖음을.



이제 막 제 키만 한 벽을 붙잡고 일어설 수 있는 아윤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보고 싶고 다 만지고 싶고 입에 넣고 싶다. 온 세상 만물이 제 손을 다 거쳐야 하는 조그만 신 god이라도 되는 듯 통통하게 물오른 손으로 조몰락, 까만 눈동자를 도르륵, 입으로 앙! 거리기 일쑤다.

저 작은 아기 까치도 그래서 저 높은 가지 아래 미끄러진 것 아닐까.

이것저것 날갯죽지로 만져보고 싶고 부리로 쪼아보고 싶고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건너뛰고 싶고, 그러다가 잠시의 실수로 정말 아주 잠깐의 실수로 제가 살던 키 큰 나무에서 떨어진 것 아닐까. 하늘 아래 모든 아기 피조물들이 가진 순수한 호기심 때문에 말이다.

아니 어쩌면 제 양쪽 보드라운 날갯죽지를 시험하고 싶었던지도 모른다. 창공을 나는 엄마처럼, 아빠처럼 따라 날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아윤이가 할아버지의 표정을 따라 하고 아빠의 입모양을 따라 하듯이. 그 태곳적 본능이 가져올 위험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예를 들면, 제 몸집의 몇십 배나 되는 커다란 분홍 포식자에게 위협을 당하든지 하는.



그 작고 순진하고 약한 모습에서 금쪽같은, 이른 가을 포도송이처럼 탐스런 나의 아가를 생각했다. 내가 만약 혼자 떨어진 아가를 지킬 수도 없이 멀리서 그저 까악 까악, 까악 까악 운다면-하고 상상도 했다.

가슴이 울꺽해져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두 분홍 포식자가 그만 사냥을 포기하고 자리를 떠날 때까지 엄마의 의리로 자리를 지킨 것이다.



센 바람이 불러온 걸까 다음날부터 며칠간 비가 왔다.

천둥도 치고 벼락도 내리던 시끄러운 하늘이 잠잠해지고 오랜만에 푸른 하늘이 말갛게 고개를 내밀었다. 이제는 마스크만 써도 나가는지 알고 좋아하는 아윤이를 데리고 집 앞 산책을 했다. 물을 머금어 더 싱그런 공기와 풀 사이를 찬찬히 걸었다. 아윤이도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둘러본다.


한참을 거닐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찾아 간 그 집 앞. 그러니까 놀이터 옆 나무 아래, 돌무덤이 하나 있다. 자갈보다 작은 돌로 이루어진 작은 무덤. 만들어진지 하루 이틀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아니겠지. 분명히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해.


괜스레 나무 꼭대기를 바라보고 울부짖는 어미 까치가 있던 4층 언저리도 보고 솜털이 가득하던 아기 까치를 찾아본다. 한사코 찾으려 애를 쓰는데 아윤이가 얼굴이 붉도록 힘을 주더니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급한 마음으로 온 허공에 눈을 휘저어도 희고 까만 새는 보이지 않는다. 아윤이의 얼굴에 점점 울음이 번진다. 나에겐 내가 지켜야 할 나의 아기새가 있다. 황급히 유모차를 집으로 민다.



서둘러 돌아가는 길

포로롱, 저 멀리 이름 모를 새가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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