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6, 이 동네엔 아이도 임신부도 참 많다
*오늘은 글 쓸 시간이 많았던지 할 말이 많았던지 했나 봅니다. 글이 기네요.
이 동네는 어린아이들이 참 많다.
한 집당 두세 명은 기본이고 셋넷을 키우는 집도 천지삐까리다(난데없지만 굉장히 많다는 뜻의 대구 사투리입니다). 출산율 저하가 나라의 문제라는데 이곳은 육지에서 다리 하나 떨어져서 그런가 전연 다른 나라 얘기만 같다. 작년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산 수)이 1명 이하로 떨어졌다는데 이 섬은 포함되지 않았던 걸까. 만약 이 동네만 합계출산율을 낸다면 2프로는 거뜬히 나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2.5까지 나올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꼽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 모양이다.
첫째로 경제적인 부분, 그러니까 집세나 교육비 혹은 아이를 기르며 드는 비용이다. 집(여유)이 생기고 난 다음에야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거다. 가정을 먼저 만들고 집을 가지기엔 삶이 너무 팍팍해질 수 있고 그걸 감당하기에 우린 여태 너무 재밌게 살았다. 그 재미와 안정을 포기하느니 아직 생기지 않은 아기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한 논리적인 사고 아닐까.
그 두 번째로는 핵가족화다. 핵가족이라 하면 고령화 같은 단어와 함께 어릴 적 사회 교과서에 실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일컫는 말이었으나 이제는 보통이 되어버린 가족의 형태를 말한다. 즉 지금 당장의 우리 집이다. 부부와 아기. 이렇게 2대가 함께 사는 것을 뜻한다. 아기를 키우기 전엔 불편을 모르던 가족 구성이 아기를 키우니 손 하나가 그렇게 아쉽다. 화장실 갈 때 잠시 잠깐 아기를 봐주고 기저귀 갈 때나 식사 차릴 때 그저 누가 눈으로라도 아기를 살펴보아줄 한 명이라도 있으면 육아가 이렇게까지 힘들까 싶다(쓰고 보니 손보다도 보아줄 눈이 아쉽다). 물론, 그렇담 엄마가 좀 더 조심하고 잘 보면 되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참 어렵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사실 오늘 말하려던 건 첫 번째에 속한다.
아기 한 명을 키우는 데는 생각보다 자잘한 돈이 자잘하게 많이 든다. 하루 다섯 개는 기본으로 쓰는 기저귀는 물론이고 시기에 맞는 장난감과 도서, 하루 두 번 정도 먹는 간식을 비롯한 먹거리, 아기 안전과 관련된 용품, 6개월도 채 입지 못하는 옷들이 그렇다. 특히 옹색할 정도로 옷을 오래 입는 나로선 몇 번 입히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는 아기 옷들이 참 아깝고 섭섭하다. 원단도 좋고 디자인이 좋아도 시기를 놓치면 더 이상 아기의 통통한 발을 끼워 넣을 수 없다. 아윤이가 한참 잘 입던 옷을 버릴 땐 특히나 더 애틋하다. 그래서 그중 몇 벌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결국 내 옷장 작은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효기간이 짧다고 해서 안 입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기의 성장과 계절에 따라 입을 수 있는 편안한 외출복과 실내복, 번듯한 외출복은 몇 벌 이상으로 구색을 갖추어야 하는 탓이다. 그래서 오늘 어느 집에서 홈 벼룩을 한다길래 한달음에 그곳을 찾았다. 옷의 구색의 조건 중 '새것이어야 할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특히나 어린 아기의 옷은 더욱더. 나 역시 물려받은 옷들이 꽤 많고 그만큼의 옷을 물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적다 보니 뜬금없는 궁금증이 인다. 집주인이 한다던 홈벼룩이란 단어에는 왜 '홈 home'만 영어일까. 집 벼룩이라 하면 괜히 작은 날파리처럼 생긴 벌레를 떠올리게 하는 탓일까. 모를 일이지만 아마도 그렇겠지?
제 옷을 보러 가는 줄도 모르는 아윤이를 안고 구제 옷 원정에 나섰다. 그리고 세상에나. 산책하듯 도착한 그 집 거실에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아무리 여자아이라 해도 옷이 이렇게나 많단 말인가. 그것도 딱 한 계절만 입을 수 있는 옷들인데. 거실과 소파 위, 부엌 근처까지 줄지은 현란한 옷의 행진에 숨이 턱, 막혔다. 이 옷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도 내겐 무리일뿐더러 무슨 옷을 어떻게 봐야 할지도 아득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이만큼의 옷이 필요한가. 이 정도 있어야 '옷 좀 입는 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면 아윤아, 넌 절대 그 이름을 갖지 못하겠구나. 그러다 문득 이 집에 연년생의 자매가 있는 건 아닐까 궁금했다.
"혹시 딸이 몇 명이신가요?"
"한 명이예요. 아들 둘이랑."
역시 이 집도 아이가 셋이다(이 동네엔 아이가 많다니까요). 아니다. 그것보다도 딸이 하나라는 게 중요하다. 집안에 펼쳐진 옷들은 모두 연분홍과 레이스가 가득한 여자아이의 옷이었다. 과연 아들 한 명의 옷도 이렇게나 많을지 의문을 갖고 주섬주섬 옷들을 챙겨보다 결국 몇 벌을 손에 쥐었다.
여름용 모자 하나와 원피스 몇 벌, 레깅스 두벌, 카디건 두벌. 당장에 입거나 올해 안에 입을 수 있는 옷들이다. 그중 레이스가 층층이 진 파란 원피스가 있었는데 이건 미국 빈티지라며 특히 비싼 편(5000원)이라 했다. 미국 빈티지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쨍한 파랑이 마음에 들어 사기로 결정했다. 파란 땡땡이 원피스를 포함해 사고 싶은 물건들을 두 손에 꼭 쥐고 1분 정도의 말의 공백과 씨름으로 막 신길 수 있는 허름한 여름 신발도 하나 덤으로 얻었다. 홈 벼룩은 처음이지만 이런 재미가 홈 벼룩의 묘미가 아닐까 혼자 기뻐하고 혼자 추측했다.
돌아가는 길, 함께 옷을 구경하던 언니와 별 볼일 없는 뒷담화를 하며 그곳을 나오자니 날이 흐리다. 홈 벼룩이라 해서 좀 쌀까 싶어 갔더니 다 오천 원 삼천 원에다 비쌌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엔 어느 브랜드든 세일하는 시기엔 비슷한 가격으로 새 옷들을 살 수도 있지. 맞아 맞아. 그런 식의 얘길 하다 그렇담 내 손에 옷으로 한가득 채워진 종이 가방은 뭔가 싶었다. 게다가 자기가 산 옷 자기가 처분하기는 자유 아닌가. 그렇게 많은 옷을 천 원 지폐로 교환하다니 그 얼마나 알뜰살뜰한 주부인가. 옷 한 뭉텅이를 기껏해야 딸기 우유 하나와 교환했던 난 참 갈 길이 멀구나 싶다. 물론 나란 사람은 어김없이 '아기 옷 무료 드림'이란 제목으로 동네 카페에 글을 쓸 테지만 말이다. 사람이란 참 변하기 힘들다니까.
여하튼 이렇게 아윤이에겐 구제 꼬까옷이 생겼고 아마도 그런 이유가 이 동네에 아이들이 많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무료로 나눠주고, 쓰던걸 싸게 사서 다시 쓰고 입히고 하니 부담이 확 줄어드는 셈이니까. 아니 어쩌면 그 반대려나. 아이들이 많으니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은 닭이 먼저냐 닭알이 먼저냐 하는 질문과 같다. 순서를 따지기엔 얽혀있고 구태여 지금 내게는 필요 없는 질문이다. 내겐 그저 이 동네에 아이들이 많다는 것과 그래서 아이들 물건의 중고 거래가 활발하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감사할 뿐이다.
참, 그러고 보니 그곳에 함께 간 언니도 아이가 셋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살림살이를 거뜬히 해내고 브라우니, 에그타르트, 케잌도 척척 굽는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난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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