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세상 모든 엄마를 응원합니다
손목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린다.
울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 내 안의 팽팽한 줄이 끊어질 듯 아슬하다. 그 줄 양 끝을 잡고 늘이는 거나 그 위에 어름산이가 되어 널뛰기를 하는 것은 모두 요 조그마한 계집 아이다. 울상이 되어 저를 바라보는 어미를 앞에 두고 샐쭉 웃는 요 녀석.
이제 막 9개월 3일이 된 아윤이는 모든 것을 입에 넣어 정의 내리려 한다. 핥아보고 물어보고 여덟 개의 유치로 씹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예외도 있다. 그건 바로 '이유식'이다. 자기가 응당 관심 갖고 먹어야 할 밥만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잘도 입에 넣는다.
오늘은 바로 그 이유식(에 대한 나의 스트레스)에 관한 이야기다.
얼마 전엔 '일어서기 병'에 걸려 자다 깨서는 물론이고 피곤해 울면서도 일어서는 아가였다. 그 덕분인지 이전엔 소파나 범퍼침대, 의자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몸을 일으키더니 이젠 그 동작에 거침이 없다. 콩나물 자라듯 쏘옥쏘옥, 엄마의 다리든 보행기든 뭐든 손에 닿으면 자동반사로 일어난다. 수만 번의 연습이 단단히 일어서는 온전한 한걸음을 낳았다. 그런데 일어서기가 수월해져 한시름 놓나 싶었더니 새로운 타자가 나타났다.
'일어서기 개미지옥' 대신 '이유식 먹이기 지옥'이라는 타자다.
모든 아기에게 종이 먹는 염소 시절이 있다지만 아윤이는 정말이지 날렵하고도 신속하게 종이를 뜯어먹는다. 제 손에 잠시 종이가 놓이는 찰나를 놓치지 않는다. 내가 뺏을 걸 알아선지 어째선지 평소엔 나무늘보처럼 느릿하면서 종이를 뜯어먹을 땐 운전하는 '플래시(주토피아의 나무늘보)'가 된다. 아니 그렇게 종이는 잘도 씹고 삼키면서 밥은 왜 안 먹을까. 참 신기한 노릇이다. 치즈를 얹기도 하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트려도 보고 이유식 책을 보며(인간이란 결국 자기가 자주 접하는 물건에서 답을 찾는 법이다) 아기들이 잘 먹는다는 이유식을 만들어도 4 숟갈 정도가 한계다. 시중에 파는 이유식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는 제 몫의 한 끼를 꿀꺽 잘도 먹던 아이가 이러니 영 마음이 편치 않다. 분유는 그나마 잘 먹으니 분유라도 제때 먹이자고 마음먹어봐도 이제 곧 몇 달 내에 분유를 끊어야 하는데, 하고 조바심이 난다. 아기 밥시간은 전쟁이라더니 세상 이렇게 불공정하고 치사한 전쟁이 어디 있는가.
내가 나 좋으라고 먹이나, 저 좋으라고 먹이지.
어제는 아기용 리조또를 만들었다. 거의 매 끼니때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새로운 시도를 당한다고 볼 수 있다(이건 정말 당하는 거다). 정성이 들어가면 알아주겠지, 내 맘대로 착각을 하며 썰고 휘휘 젓고 끓이고 졸였다. 하지만 결국 한 김 식혀 아기의 입에 쏙 넣다가 그만 내 마음만 졸였다. 밥엔 관심이 없고 제 입 앞으로 왔다 갔다 하는 숟가락에만 온 정신이 쏠려 허공에 손을 휘젓는 아윤이를 보고 '네가 직접 먹고 싶구나.' 하고 꼬막 같은 손에 숟가락을 쥐여준 탓이다. 밥풀을 쥐었다 폈다 입에 넣었다 던졌다, 밥풀들의 대전이 이어졌다. 그렇게 해주고 싶었던 촉감놀이를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이야.
이번에도 틀렸구나, 체념하고 바라본 아가는 또 배시시 웃는다.
미어터지도록 답답한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의 딸도 이유식 거부의 과거와 현재가 있는 4살 여자아이이기 때문이다. '여보세요'도 없이 시작한 우리의 통화는 멈출 줄 몰랐다. 팔 할은 서로의 울분과 하소연이다.
아이고 말도 마라. 얼마나 밥을 안 먹는지 진짜 내가 미쳐서 환장하는 줄 알았다. 정말이다. 아기가 밥 좀 안 먹기로서니 미치고 환장할 일인가 싶더니 내 일이 되니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 야야.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화는 또 어떻고. 어쩌고 저쩌고.
반 시간 이어진 수다로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내가 마음을 좀 더 놓아볼까, 결국 우리도 그렇게 컸을 테니까. 세상의 모든 엄마가 지치는 건 완벽하고 싶거나 유난스러워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보통이라도 되고 싶은 거다. 그런데 그 보통으로 가는 길이 엄청난 오르막인 데다 가시밭길이다. 심지어 맨몸도 아니다. 한동안은 등에 밥 안 먹겠다고 보채고 떼쓰는 아기가 업혀있기까지 하다. 그러니 괜찮다. 전신이 저리도록 힘들 땐 잠시 쉬다 걸으면 된다. 무리하지 않으면 된다. 안에 있던 감정을 쏟아내며 우린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찾았다. 또 이유식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위한 나름의 두 가지 답을 생각해 냈다.
첫째, 다양한 식재료와 요리법을 탐색해본다.
둘째, '그래, 니 인생이다.'하고 초연한 마음가짐을 갖는다.
이미 알던 사실이라도 새로이 규칙을 정하는 건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실천이 더 중요한 일이지만 마음이 가벼워진 게 어딘가.
이유식 하나도 이렇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데 살면서 이런 일이 오죽 있을까.
턱 막히는 숨에 탁한 숨을 섞어 큰 숨을 내쉰다. 날카로워진 신경의 줄을 느슨히 돌린다. 요 며칠 날이 선 내 모습에 찹쌀떡 군은 일주일 만이라도 혼자 자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새벽마다 분유를 달라 우는 아윤이는 자기가 책임지고 달래겠다는 거다. 최근 늘어난 업무 탓에 분명 지칠 텐데도 날 생각해 주는 그의 마음이 고맙고도 미안하다.
"미안해. 요즘 딸 둘 키우느라 힘들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응. 육아 때문에 예민한 큰딸 하나랑 아기 딸이랑 같이 키우려니 힘들어."
내 말에 부정도 않고 너무 힘들다며 토로하는 그를 꼭 안는다. 토닥토닥 토닥토닥.
어느 아빠는 '가족이란 남들이 보지 않을 때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家族とはだれも見ていない時に捨ててしまいたい存在)'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행여라도 그 비슷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게 두 딸(?)은 아빠를 함께 꼬옥 껴안는다. 아빠, 힘내세요. 동요도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어름산이의 걸음 아래 놓인 줄은 팽팽하지만 탄성이 있어 줄 타는 곡예에 따라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기도 한다. 내 신경 줄을 타고 재주를 넘는 아윤이를 위해 나의 것도 여유와 신축성을 가질 일이다. 끊어지거나 떨어질 염려 없이 줄을 타는 아윤이가 제 맘껏 펼쳐 놀 수 있도록, 조금 느슨하게 풀어놓자 다짐한다.
아, 그나저나 내일은 뭘 먹여야 할까.
*우리나라에선 기타노 다케시가 영화 하나비 공개 후의 인터뷰에서 '가족이란 남들이 보지 않을 때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家族とはだれも見ていない時に捨ててしまいたい存在)'라고 얘기했다고 유명하나 일본에선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일본에선 일절 그런 식의 말이 언급도 안 되는 걸 보면 그는 정말 그런 말을 했을까, 아닐까 궁금합니다. 인터뷰 영상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요. 뭐 사실은 그랬든 아니든 내겐 별 차이 없을 세상이지만요. 그나저나 일기를 적고 보니 아기가 그까짓 밥 안 먹는다는 이유로 엎드려 울고 싶은 일인가 부끄럽긴 합니다.
이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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