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8, 내가 생각하는 결혼이란
난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마도- 결혼한 그 해에 잃어버린 것 같다.
문장에 '아마도'를 붙인 이유는 기억이 또렷이 나지 않아서이고 그럼에도 그때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그즈음부터 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떠올릴 수 없는 탓이다. 갑작스레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빈소를 찾아가느라 너무 서둘렀던 걸까, 어쨌든 난 결혼한 8개월이 지나고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
올해 5월은 결혼한 지 3주년 되는 달이다.
벌써 3주년이 되었네. 아니지, 아직 3주년 밖에 안된 거야? 여러 마음이 드는 3년이라는 햇수는 벌써라는 부사도 아직이라는 부사도 적용할 수 있구나, 시시한 생각을 한다.
우린 올해도 어김없이 흑백사진을 찍었다. 매해 결혼기념일 즈음으로 가족사진을 찍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 시간 속 우리를 기록하고 싶다.
둘, 흑백사진은 값이 싸서 부담이 없다.
이로써 3번째 흑백사진이다.
올해는 우리 둘, 그리고 두 고양이(결혼 후 입양함) 외에 작은 생명체가 하나 더 늘었다.
아윤이다.
작년 이 무렵 사진 속엔 뱃속에 있던 녀석이 이젠 내 앞 의자에 앉아 당당히 제 몫의 자리를 차지한다. 한 번의 칭얼거림도 없이 렌즈에 제 모습을 비춘다. 외려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게 하는 건 고양이들이다. 세 번째 촬영이면서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도망갈 궁리만 하는 녀석들.
같이 찍지 말걸, 괜한 후회로 돌아온 집안 곳곳 고양이 냄새가 가구처럼 앉아있다. 옷에 배인 냄새처럼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아마, 우린 내년에도 같이 찍겠지.
사진을 찍고 이틀 뒤 주문한 반지가 도착했다. 결혼을 기념한 날을 또 기념해 반지를 맞췄던 것이다. 금액은 잃어버린 결혼반지보다 훨씬 적은 액수다. 부담 없이 은으로 주문한 이유다. 내가 은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잃어버릴 수도 있는 물건, 맘 편하게 하자 싶었다. (애초에 결혼반지도 은으로 하고 싶었으나 그래도 구색은 갖춰야지 하는 마음에 그러질 못했다)
결혼기념일에 맞췄지만 반지에 '결혼의 상징'이나 징표라는 의미는 없다. 어디에 있든 우리는 반지로 연결되어 있어, 하는 아이들 연애 소꿉놀이 같은 마음도 아니다. 그냥 같은 반지를 끼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냥 하루 중 문득 이 반지를 보며 그를, 그는 나를 떠올리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결국 끼고 지내보니 별생각 안 나긴 하지만.
잃어버릴까 아끼느라 꼈다 뺐다 한 결혼반지와는 달리 은 반지는 매일 마구잡이로 끼고 있다. 설거지할 때도 잘 때도 별일 없으면 빼지 않는다. 아예 반지를 꼈다는 것조차 잊고 산다. 그 결과 아직 산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반지 표면이 온통 흠이다. 심지어 오늘 아침 아윤이 똥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를 씻겨주다 반지에 똥이 묻기까지 했다. 기본적으로 '미美'를 추구하는 액세서리에겐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다니 하며 날 노려봤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난 그러든 말든 여전히 고이 잘 끼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결혼이란,
이 반지에 쌓이는 흠 같은 게 아닐까.
그 속 흐르는 나이테 같은 시간이 아닐까.
바닷바람을 함께 맞으며 걷고 더러워진 집안을 같이 청소하기도 하며 똥 싼 아기의 엉덩이를 함께 씻겨주기도 하는 것.
어떤 일상이든 함께 견디고 살아내는 것.
시간의 퇴적층을 함께 쌓아나가는 것.
너무 당연해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것.
그러다 지친 하루 끝, 서로의 존재에 안심하는 것.
뭐, 그런 게 아닐까.
아마도 보석함에 고이 끼워진 흠 없는 반지는 평생 알 수 없을 것들 말이다.
얼마 전 그는 맥주를 사러 나가며 내게 말했다.
너랑 결혼해서 다행이야.
참, 밋밋한 고백일까 싶지만 난 그 말이 좋았다.
곁에 있는 내가 나고 네가 너이기에 다행이라 말하는 관계. 고만고만한 하루 속 가끔 함께 환한 웃음 지을 일이 있고, 지칠 때면 서로의 등을 한 번씩 쓰다듬어 주기도 하며 서로가 있음에 감사하는. 그런 하루 속 우리말이다.
찬찬히 일 년의 시간이 쌓인 네 장의 사진을 보며 나 역시 생각한다.
내 곁에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아윤이가 함께라서 다행이다.
우리가 우리라서
참 다행이다.
*찹쌀떡 군과 연애하던 시절, 결혼은 사실 생각지도 않던 시절 남긴 일기가 있어 옮겨봅니다. 이때의 나는 그와의 연애도 언젠가 떠올릴 추억으로 남을 거라 생각했나 봐요. 일기를 쓰던 내게 올해 우리의 흑백사진을 보여준다면, 과연 뭐라 말할까요. 거짓말-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역시-라고 할까요.
2016年 5月23日 日記
그런 순간이 있어.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딱 그 자리 그 시간에 머물러 영원이길 바라는 시간과 공간의 막간,
혹은 '멈춤'의 순간.
쑥스럽던 지난 웃음이 그러하고 시드니 보타닉 가든의 뜨거운 햇살도 그러하고 가끔은 울먹이는 누군가의 얼굴이기도 하지.
어떤 날은 그 저장된 순간들만이 전부인 것처럼 머릿속에서 한없이 원을 이루고 맴돌기도 해.
보통은 커다란 오늘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한 멈춤의 순간들이 말이야.
그러다, 그러다 말이지.
이따금씩 그중 툭, 하고 하나가 튀어나와 버리면 울고 싶을 정도로 이상야릇한 웅덩이에 빠지게 돼.
아, 네가 거기 있구나, 그랬지 하고.
그 멈춤의 순간들은 마치 낡은 트로피처럼 하얀 먼지에 숨어 조용히 내 눈을 응시하지. 그러면 나는 고양이를 대하는 눈으로 몇 번 깜박여.
안.
녕.
오랜만이야.
그러면 그것은 이내 그 원의 대열에 합류해 쏘옥 들어가 버리지만 또 언젠가 다시금 툭 튀어나와 날 울컥거리게 하겠지.
물론 머릿속엔 멈춰진 순간이 아닌 움직이는 필름 같은 순간의 연속도 있어. 당연하지. 기억은 끝이 없는 보관소니까. 아, 끝이 있긴 하지. 더 이상 기억을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을 때가 그때이려나.
자, 차르르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이는 동작을 떠올려 봐. 그게 내 연속의 기억이야.
네가 탄 차가 조용히 길을 미끄러져 나갈 때나 20년 전 짝사랑하던 그 사람이 조용한 하품을 마실 때, 곤히 자는 엄마의 배의 움직임을 바라볼 때 같은.
이상하게도 그런 동작의 연사들이 떠오를 때면 슬며시 웃음이 배시시 나. 박제되어버린 새가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어디선가 아직 날고 있을 새를 떠올리게 되는 기분이랄까.
아니, 그 새의 따뜻한 기운이 여전히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난 생각해.
네게 난
박제하고 싶은 멈춤의 순간보다 천천한 움직임으로 남아 있고 싶다, 고.
아끼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혹은
천천히 넘겨질 책의 한 장 한 장의 이어짐처럼.
그렇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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