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3, 엄마가 아프면 집도 잔병치레를 하는 법
이틀을 내리 아팠다.
찢어지는 듯한 목구멍에 지끈한 두통, 으슬거리는 몸. 보통날 같으면 늦봄마다 찾아오는 목감기에 몸살이려니 싶을 텐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주위와 거리를 둔다. 지금은 버스 안 타인의 ‘헛’ 기침에도 양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홱 돌리는 시기다. 그것도 은근슬쩍 마스크를 고쳐 매면서.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목이 따끔한 첫날부터 체온을 쟀다. 36.6도.
두 시간에 한 번꼴로 재보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진 않는다. 그래도 은근한 염려는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는 아니겠지?
내가 아프니 집도 잔병치레를 한다.
말끔하던 거실 바닥엔 여기저기 아윤이 기저귀가 말려있고 감청색 플리스 조끼는 소파 밑에 널브러져 있다. 그 위엔 빈 젖병이 가로누웠고 책과 장난감도 있는 대로 펼쳐져 있다. 부엌은 또 어떤가. 싱크대는 젖병과 이유식 그릇, 각종 식기로 만실이고 먹다 남은 국도 구석에 한자리 차지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집안(왠지 이 모습은 집구석으로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리지만) 살림 위로 한 꺼풀 두터운 층이 얹어져 있다. 바로 고양이 털이다.
하루 서너 번 청소해도 계속 뿜어져 나오는 털은 하루 이틀 청소하지 않으면 오존층처럼 하나의 두터운 층을 이룬다. 이른바 '고양이 털층'인 셈이다. 유아 매트 위고 설거지 그릇 위고 선반 위고 어느 한 곳 뒤덮이지 않은 곳이 없다. 평소라면 경악을 하며 돌돌이 테이프와 온갖 장비로 아윤이 주위를 밀어냈을 테지만 정말 요 며칠은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었다. 종일 한 일이라곤 아윤이 주위 어딘가를 위성처럼 맴돌며 드러누워있었을 뿐이다.
쓰러지듯 누운 내 곁에서 아윤이 역시 빙빙 돌며 놀았고 난 가끔 잠에 들었고 아윤이도 그랬고.
그러고 보니 아윤이의 몰골도 가관이다.
겨우 이틀 사이 눈에 띄게 꼬질꼬질해졌다. 찹쌀떡 군은 일하러 가기 전 아윤이의 목을 보더니 팔자 눈썹이 되어 길 잃은 아기 고양이 보듯 하기까지 했다. 왜 저러나 싶었더니 아윤이 목 사이에 고양이 털과 실 보푸라기와 먼지, 즉 때가 끼여있었던 탓이다. 고작 이틀 내가 누워있는 사이 집은 빌빌거리고 아윤이 목엔 그새 때가 생긴 거다. 며칠 푹 누워 있고만 싶은데 어쩐지 할 일은 둘넷 곱빼기로 늘어나고 마음은 점점 조급해진다. 엄마는 마음 놓고 아프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손수건에 물이라도 묻혀 닦아내주고 싶지만 그럴 여력도 없어 집에 돌아온 그에게 맡기기로 한다. 이른 아침엔 그가 내 얼굴에서 눈곱을 떼주기까지 했다. 제 얼굴에서 눈곱을 떼지도 못한 내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고이 얼굴을 내맡기며 머쓱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저 아픈 날이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아윤이와 나는 하루를 잘 보낼 것을 믿었다. 우린 한때 한 몸이었으니 서로를 채워줄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정말 이 날따라 아윤이는 더 웃고 덜 울었다.
분명 코로나는 아니겠지만 부디 코로나는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며칠간 꼬박 복용한 약 덕분인지 오늘은 한결 몸이 좋아져 쌓여있던 고양이 층을 털어내고 아윤이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다행히(찹쌀떡 군은 코로나 일리가 없다고 했지만 세상에 단언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코로나는 아니었던 거다.
종일 거실을 뒹굴거리던 어제, 잠시 잠깐이지만 ‘코로나에 걸린 거라면’ 하고 상상했다. 아찔했다. 아픈 건 둘째치고 미안한 감정은 어찌해야 할까. 주위 아끼는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만큼 마음 불편하고 괴로운 게 있을까. 타인의 이유 없는 경계보다 내 가까운 이들부터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코로나의 가장 참혹한 부분 아닐까 한다.
목은 여전히 따끔거리고 아프지만 두통은 사그라들었다. 체온도 평균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끝이라는 시기가 감기에도 찾아온 것이다.
Hoc quoque transibit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여태껏 그러했듯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는가. 지리한 여름의 매미소리도 이내 잦아들고 더운 바람도 금풍으로 변하지 않겠는가. 어느 걸음에도 휴식이 있고 어느 수업에도 방학이 있듯 잠시 쉬어갈 뿐이다. 중요한 건 긴장과 이완 그 사이에서 잡아야 할 미묘한 감각이겠지.
난 믿는다.
인간의 무력함을 일깨우고 수많은 안타까운 생을 앗아간, 지긋지긋하게 일상을 괴롭히는 코로나 19의 시대도 분명 지나갈 것이고 우린 또 살아낼 것이다.
아아, 부디 하루빨리 코로나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어제가 되어버리기를 온 마음으로 바라본다.
여전히 남은 감기의 잔상에 알약 두 알을 물과 함께 삼키면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