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7
목감기와 몸살감기가 생각보다 오래가나 싶어 병원을 갔더니 후두염이란다.
밤이 되면 유난히 심해지던 기침과 속삭이듯 쉬어버린 목소리가 알고 보니 후두염의 대표적인 증상이었던 거다. 전에 없던 새로운 질병이 '나를 거쳐간 각종 질병들' 리스트에 오른다.
안녕, 잘 부탁해.
자, 입에 긴장을 푸시고 아- 한번 해보세요.
아기 주스 빨대보다도 가늘고 기다란 은색의 카메라를 쑥 넣어 촬영한 내 목구멍의 입구는 '아' 소리와 '이'소리를 내는 동시에 좁혀졌다 넓혀졌다 반복한다. 원래 어떤 생김새인지 모르기에 이 모양이 정상인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뻐끔 거리는 구멍은 물고기의 입을 연상시킬 뿐이다. 수중 생물이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는 가설은 덤이다. 진료가 끝나고 다시 마주한 아윤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렇담 얘는 어느 물고기를 닮았을까. 뿔난 아기 복어가 아닐까. 쓸 곳도 없는 생각을 하며 찹쌀떡 군에게 쉰 소리로 말한다.
"후두염이라고 되도록 말하지 말래."
10개월 차에 접어든 아기 엄마에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의사에게 그 속말을 했더니 그는 어떤 문장의 대답이 아닌 감탄사 '아...' 한마디만 내쉬었다. 나직한 울림 뒤 진료실에는 잠시의 정적이 인다.
그 찰랑이는 고요는 나도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아는 이유다. '불가능'이란 이름의.
조제한 약을 먹어도 큰 차도가 없다. 약을 먹으면 곧 몸의 떨림이나 기침은 멈추지만 모두 일시적이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고 벌렁 누워서 육아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차선으로 링거를 선택했다. 심각하거나 죽을병도 아닌데 병원에 누워 수액을 맞는다고? 예전 같으면 별 호사를 다 한다고 여겼겠지만 이젠 그저 얼른 낫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가 나아야 아윤이의 하루도 찹쌀떡 군의 하루도 집도 나아지고,
내가 나아야 아이에게 옮기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염려가 사라진다.
혈관을 타고 드는 번뜩이는 수액 줄기는 작년을 떠올리게 했다.
부서질 듯 고통스럽던 어깨(방귀를 뀌니 나아졌습니다만)와 팔에 주렁주렁 달린 링거들, 시가족들이 왔을 때도 연결되어 있던 도뇨관, 자리에 앉기 위해 사투를 벌인 한 시간.
이제는 가장 맨 아랫배의 붉은 줄로만 남은 자국이 생생하게 튀어 오른다. 아문 상처라 생각되던 기억은 어느새 부르르 몸을 떨게 한다.
아픔의 정도와 방식은 다르지만 그때도 이런 마음이었다.
얼른 낫고 싶다.
얼른 일어나는 게 수월해지고
얼른 내 속도의 걸음으로 산책하고 싶다.
나를 위해 일찍 조퇴한 그와 아윤이를 1층에서 만났다. 링거를 뺀 뒤 소독솜을 떼고 가뿐하게 침대에서 나온 뒤였다. 아가에게 맞춘 우리의 속도로 함께 집으로 걸었다. 작년 한 시절의 바람, 그러니까 셋이서의 산책은 이루어진 셈이다.
여전한 후두염으로 다음 내진 일정을 잡고 돌아온 주제에 바로 선생님의 묵언 수행 처방을 무시한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돌 덜된 아기를 곁에 두고 말하지 않기란 설레는 연인을 두고 가슴 뛰지 않기와도 같다. 그게 가능했다면 시간과 돈을 들여 링거를 맞지도 않았을 것이다.
잠투정하는 아윤이에게 약기운을 내 책 몇 권을 읽어주고는 엉덩이를 토닥인다. 가만히 말을 건넨다.
"아윤아.
요 며칠 엄마 몸이 안 좋아서 거실에 누워 너를 '보기만' 하고 제대로 놀아 주지도 못했는데 혼자서 씩씩하게 잘 놀고 잠이 올 땐 가로누운 엄마 곁으로 와서 낮잠 들어줘서 고마워. 혼자 놀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활짝 핀 꽃처럼 웃어줘서 고마워. 지친 엄마 곁에 있어줘서 그저 그저 고마워, 우리 아가."
욕심을 부려본다.
내일은 말짱하게 싹 나은 몸과 목구멍으로 하루를 시작해야지. 옮길까 걱정 없이 맘껏 안고 맘껏 둥근 볼에 뽀뽀해야지.
그러니 후두염아, 한동안은(되도록 영영) 보지 말자.
안녕(Bye),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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