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9, 나의 느린 걸음에 대해서
열 달과 십일.
아윤이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태어나 숨 쉰 시간이다. 분명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을 맞닿으며 하루를 보내는데 나의 세상과 아이의 것은 천차만별의 속도를 지닌다. 내 속도에 0 하나나 두 개를 를 더 붙여야 아이의 속도가 나온달까. 나의 느린 걸음은 한없이 한자리를 맴돌며 제자리를 떠나지 못하는데 아이는 달음박질치며 자꾸만 커나간다. 폴짝폴짝 잘도 뛰어간다. 일 년 치 하루의 묶음이 아이의 단 하루와 같을까. 매일 찍는 우리의 사진에서 아윤이는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자라난다. 늘 제자리에 서 있는 내 곁에서.
아기가 열 달이 되던 날 첫 뜨개질을 배웠다.
없는 시간을 가르고 쪼개서 배울 것인가, 한참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좀 더 쉬지 뭐. 마음이 기우는 사이 찹쌀떡 군이 꺼지는 불에 휘발유를 부었다.
"세상에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해보고 싶은 건 하면서 살아야지. 지나친 사치도 아니고."
하지만 어쩌면 아기 엄마에겐 사치일지도 모를 뜨개질 수업을 향하며 마음은 여전히 저울질했다. 결정 전에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 후엔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지만 늘 그 반대를 행하는 청개구리 심보 탓이다. 과연 여름이 가기 전 가방이라도 하나 뜰 여유가 있을까 고민하는 찰나 아주 빠른 속도로 무언가가 차 쪽으로 뛰어온다.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빠른 달음박질이지만 차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 아슬한 간격에 60km/h 남짓 밟던 속도를 급하게 내린다. 뒤에 따라오는 차가 있었더라면 부딪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급정거하듯 속도를 내린 차 앞으로 난데없는 암꿩 한 마리가 빠른 다리로 힘껏 8차선을 건넌다. 그 아슬함에 침이 꼴깍 삼킨다. 거북이 기어가는 속도로 안전한 꿩의 귀가를 살피고 다시 속도를 올린다. 심장이 두근댄다. 도로 위 달리는 꿩의 존재와 하마터면 차로 칠뻔한 생명의 무사귀환에 마음을 쓸어내린다.
동네에 꿩이 살다니. 무슨 마음으로 그 넓은 도로를 건넜을까. 하긴, 차도가 생기기 전 이미 그들의 집터였을 테지. 그나저나 꿩이란 그렇게 상체를 올곧게 세우고 도도도 빠르게 뛸 수도 있구나. 무사해서 다행이야.
뜨개질로 심란한 마음은 어디 가고 머릿속엔 온통 꿩의 달리기 잔상만이 남았다.
열 달과 십일.
오늘로 뜨개질을 시작한 지 십 일째다.
뜨개질은 정확한 산수와 같아 한코 한코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정석이다. 어릴 적부터 수학을 싫어하던 기질이 여기서 발휘되는지 매번 한코를 빠트리고 다시 풀기를 반복하며 같은 줄을 맴돈다. 십일 동안 내가 한 거라곤 뜨개의 가장 기초인 한길 길 뜨기와 짧은 뜨기를 떴다 푼 것뿐이다. 하지만 그동안, 그 십일 동안 아윤이는 역시나 수많은 걸음을 했다. 이젠 제법 능숙하게 책장을 넘기고 초당 옥수수를 맛나게 먹을 줄도 알며 사운드북의 버튼을 눌러 선곡을 하기까지 한다. 첫 가래떡 맛에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하고 아슬하긴 하지만 소파를 짚고 일어나 두 손을 놓고 여유 부릴 줄도 안다.
내가 비슷한 일상 속 비슷한 높이의 뜨개를 쌓아 올렸다 내렸다 다시 쌓아 올리는 동안 말이다.
도 도 도 도 도.
아윤이의 하루도 이렇게 뜀박질에 가까운 걸음일까.
도 도 도 도.
그 꿩은 가족에게 돌아갔을까.
도도도.
꿩이라니, 세상에.
「꿩은 어떤 위기에서도 자기 알이나 자식을 떠나지 않고 남는다고 합니다. 포수가 자신을 쏴도 알의 곁에 머무는 거지요. 죽는 한이 있어도.」
라디오 디제이의 한마디에 십일 전 내달리던 꿩을 다시 떠올렸다. 한낮의 라디오였다.
포수가 쏴도 알의 곁에 머문다니. 죽고 난 꿩과 그 곁의 알을 옳다구나 채는 사냥꾼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횡재가 이토록 아릿하고 슬프다니. 정말이지 '꿩 먹고 알 먹고'는 너무 슬픈 말이다.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도 말아야지.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쌩하니 달려가던 꿩이 궁금했다.
그때 어쩌다 떨어진 가족에게 달려간 것은 아닐까.
잘 있겠지?
잘 있을 거야.
오늘도 아윤이는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는 수많은 달음박질로 하루를 보냈다. 세상 궁금한 것이 많은 탓에 요리조리 다니다 철퍽 넘어지기도 많이 한다.
아슬하게 서있다가 쿵, 두 손을 하늘로 뻗다가 기우뚱, 난데없이 발라당.
나의 하루가 아이의 것보다 느린 이유는 이래 서가 아닐까. 정신없이 바쁜 아윤이의 걸음 뒤 묵묵히 제자리를 걸으며 기다려주고 일으켜주기 위해 뱅뱅 주위를 도는 건 아닐까.
마치 무슨 일이 있어도 주위를 맴돌며 자기 새끼를 돌보는 꿩처럼 그렇게 그렇게,
언제라도 아이가 나를 찾을 때 제자리에서 '나 여기 있어' 그대로 서서.
열 달과 십일.
아직 땅을 밟아보지도 않은 데다 5/6 년의 삶을 산 아윤이에겐 더 오랜 뜀박질의 시간이 남았다. 나는 다만 내 자리를 지키며 아이의 달리기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버팀목이 될 일이다. 내 제자리걸음만이 달음박질을 무탈하게 만들리라 믿는다. 당연히 아이를 위해 뛰어야 할 땐 누구보다 빠르게 뛰겠지만.
도도 도 도 도도 도도, 온 힘을 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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