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엄마도 휴식이 필요해

20200715, 우리 동네 헌책방

by 윤신


동네 작은 헌책방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것은 좋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법입니다.


"동네에 괜찮은 중고서점이 생겼어요."
"그래요? 예스 24인가요? 아니면 알라딘?"
"자그마한 '고양이 책방'이라는 데예요"
"음. 보통은 말이죠. 어느 정도 규모가 크지 않으면 '헌책방'이라 부릅니다만."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 그 말에 완전히 납득해버렸습니다. 헌책방. 왜 그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요. 글자가 하나 더 줄어든 것도, 네 글자 모두 한자가 아닌 한글인 것도 마음에 듭니다. 취향의 단어예요.

고. 양. 이. 헌. 책. 방.

그렇게 동네에 아담하지만 알뜰살뜰 마음에 쏙 드는 책방이 생겼습니다. 진작 읽고 싶었으나 도서관에서 찾지 못한 두 권의 책을 그곳에 간 첫날 발견한 데다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 꽤 있는 덕에 매번 가는 발걸음이 즐겁습니다. 사람들의 취향을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책방에는 한 묶음씩 책을 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책을 판 사람이 분명 저 책도 팔았을 거야. 작가는 달라도 책이 주는 태도와 결이 같으면 은근슬쩍 사장님께 물어봅니다. 추측은 대개 긍정의 끄덕임으로 돌아옵니다. 재채기와 사랑은 속일 수가 없다더니 취향 역시 그런가 봅니다.


매주 수요일은 아윤이가 문화센터에 가는 날입니다.
그곳에선 누구보다 활화산처럼 흥을 분출하는 모녀지만 가는 길은 험난합니다. 우선 낮잠 시간과 애매하게 걸려있습니다. 초조하게 시계를 보다 아기가 깨면 비몽사몽 밥을 먹인 뒤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와 간식, 우유를 챙깁니다. 한쪽 어깨엔 아기 짐을 다른 팔 엔 아기를 들쳐 안습니다.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이 팽팽해집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카시트입니다. 용에게 붙잡힌 공주처럼 아니 도살장 주인에게 붙잡힌 아기 돼지처럼 그렇게 서럽게 울면서 몸부림을 칠 수가 없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이십 분 동안을 내리 울고 도착해서 부은 눈으로 사십 분 흥을 내고 이십 분 울며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은 조금 낫다는 데 안도합니다만 지치긴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면 물으시겠지요. 수업을 취소하면 되지 않냐고요.
그게 참 어렵습니다. 율동을 보고 제 또래 아이들을 만나 신나 하는 딸아이를 보면 그게 참 어렵습니다.
다음엔 좀 더 노력해서 울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할 뿐이지요. 사실은 내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닌데도 '엄마'란 아이의 기쁨에 때론 믿고 싶은 대로 믿기도 하나 봅니다. 다음엔 나을 거라고, 어떻게든 될 거라고요.
그렇게 저는 매주 수요일 바리바리 짐을 싸고 아윤이를 둘러업고 일명 문센으로 향합니다. 아기 돼지, 아니 공주의 흥을 돋우려고요. 그 대신 나에게는 수고의 의미로 작은 선물을 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그 책방에 가는 거지요.


첫날, 아윤이를 본 사장님은 아기가 참 귀엽다고 말합니다. 예쁠 때라고요. 하지만 그땐 이쁜 게 보이지 않을 때라고도 합니다. 마지막 문장은 엄마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겠지요.
칭얼대는 아윤이를 품에 안고 달래며 이리저리 책을 하나씩 살펴보는데 안온한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거기 좀 앉아요.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이네. 나 어차피 커피 마시려 했는데 같이 마셔요."

지쳐 보인단 말에 울컥했습니다. 이 날은 정말이지 지청구, 아니 악청구를 늘어놓고 싶은 날이었거든요.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따라 울지 않은 게 용한 날이었습니다. 어느 엄마에게나 있고 어느 사람에게나 있을 그런 지치고 지친 날 있잖아요. 가끔 밤송이 떨어지듯 툭, 떨어지는.
등이 깊고 폭신한 의자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순간을 견디며 고단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자라는 거겠죠. 아이도 엄마도.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그녀는 아기와 함께 가면 좋을 국내 여러 곳을 소개해 줍니다.
9월 중순 즈음, 고창의 선운사에 가면 상서화로 불리는 꽃무릇이 지천에 피어 장관을 이루니 언제 꼭 가보시라, 또 춘천에 인형극제를 매년 하는데 거기 간 김에 춘천역 바로 맞은편 꿈 자람 어린이 공원도 가고 닭갈비도 먹고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런데는 아이와 매해 가는 것을 추천한다.
놓칠세라 또박또박 메모해둡니다. 고작 20분 차 타는데 기진맥진하는 엄마지만 분명 어떻게든 될 테니까요.


지난주엔 혼자 책방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윤이에게 이유식을 먹이다 제풀에 지쳐 우는 나에게 그가 자유시간을 준 덕입니다. 책을 읽는 둥 뜨개를 하는 둥 그저 혼자라는 사실에 감격하던 중 책방 사장님과 옆집 네일숍의 사장님 대화가 들립니다.

"그러게요. 육아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즐거워야 하는 건데 그땐 그걸 몰랐어요."
"맞아. 무엇보다 엄마가 진심으로 즐겁게 같이 노는 게 최고의 육아 같아."

내 곁에 투명한 아윤이 그림자가 주제를 그쪽으로 몰고 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내 얼굴에 '방전'이라고 쓰여있었는지도 모르고요. 그들이 나눈 이야기를 곱씹습니다. 내가 즐거워야 한다라, 나도 함께 놀아야 한다라.
최근 읽은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육아에서 제풀에 나가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엄마 마음의 평안'이고 그를 위해선 엄마가 즐거워야 한다고요. 당연한 말인데도 참 어렵습니다. 잠시 머리를 비우고 떠올립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즐겁게 '놀았을 때' 아가의 표정을요. 그저 우쿨렐레를 치고 책을 보다 누워 웃는 사소함에서 온 충만을요. 나의 즐거움이 끌고 온 것은 다름 아닌 아가의 웃음이었습니다.
그래, 그거지. 왠지 조금 자신감이 생깁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의 선순환을 그려봅니다. 동시에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마음먹기도 합니다. 천천히 편안해지는 연습을 하는 거지요. 어쩌면 그 사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양도 천천히 늘지도 모를 일이지요.


'동네'라는 단어에는 이것저것 숨어져 있습니다. 장소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속속들이 아는'이라는 뜻이 언어 저변에 깔려 있기도 합니다. 책방에서 마주치는 이들이 내 곁에 아기가 없어도 금방 내가 아기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처럼요. (거기에 '아주 통통하고 귀여운'이 붙기도 합니다) 또 '친근한'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도 자기가 가진 간식을 나눠주고 가게에 흘러나오는 곡을 함께 선곡하기도 하니까요. 알지 못하던 정보를 알게 되고 생면부지 타인과 말을 건네는 게 다 '동네'(여행인 경우도 있습니다만)인 덕이지요. 물론 어느 정도의 사이와 거리는 자연스레 생기기도 합니다. 수관 기피 Crown Shyness처럼 나무들이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고 지켜주듯이요.


내일은 또 수요일입니다.
나에게로의 선물을 핑계로 둔 그곳이 있어 마음과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정말이지 참 좋은 동네 책방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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