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배냇머리
오늘은 너의 배냇머리를 자른 날.
그까짓 머리, 머리카락은 어차피 언제고 자르니 서운하지 않을 거야 했는데 자르고 돌아온 길 마음에 괜한 파도가 인다.
차르르 출렁, 차르르 출렁.
바닥에 떨어진 곱슬한 머리를 얼마 모아 주우려다 유난한 엄마라는 얘길 들을까 주저했다. 유난 그까짓 게 뭐라고. 가져올 걸 그랬어. 그러면 앨범에 넣든 책갈피를 만들든 했을 텐데. 아니야 그건 지나친 미련 껍데기 일지도 몰라. 잘 가, 하고 인사할 줄도 알아야지.
별의별 생각을 한다.
검붉던 네게 검게 자라났던 머리가 잘려나갔다.
날카로운 가위로 삭삭, 가벼이 날듯 떨어졌다.
그게 뭐라고.
그 곱슬이는 다갈색 머리가 뭐라고
일렁이고 일렁이다 찌르르 퍼진다.
귀 옆 아래 살짝 동그랗게 말려있던 머리가 뭐라고.
어제 읽은 책에서 사물은 단지 긴 사건에 불과하다 하였다. 결국 인간도 지구도 우주도 시간 속에 존재하다 한낱 먼지로 돌아가는 사건이라 하였다. 잠깐 동안 시공간 속에서 변함이 없다 언젠가 사라지는.
네 베넷 머리칼도 다만 그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일 년 반전,
양수와 피에 젖은 채 태어나 하루씩 성장하는 네 곁에서 머물던 526일의 사건.
안다.
알지만 서운한 건 역시 서운하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아는 게 다른 탓이다.
머리로는 언젠가는 잘렸을 머리칼임을 알고 마음으로는 '넌 이렇게 점점 자라 아기의 티끌을 벗는구나' 안다.
다시 출렁인다.
사락하고 떨어지기 전 안녕, 하고 쓰다듬어나 줄걸.
후회는 잠시 시간을 멈추고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가 한 번 두 번 네 예쁜 뒤통수를 쓰다듬는다.
머리론 불가능하나 마음은 가능한 이유다.
엄마는 아이의 어느 시절에고 가닿을 수 있는 이유다.
아 이쁘다. 아 이쁘다.
지금까지 고마워. 고마워.
보드랍고 가는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한번 더 다시 한번 더.
인간이 긴 사건에 불과하다면,
넌 나에게 우주보다 크고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사건이다. 잊을 수 없고 떨어져서도 잊지 못할 일생의 등장이다. 때론 나를 파먹고 때론 나를 치유하고 때론 나를 살게 하는 너 하나로 완성인 뜨거운 생명이다.
여전히 마음이 이런 걸 보면
오늘 잘린 너의 낱낱이 가는 머리칼마저도 내겐 그랬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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