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9, 휴가에도 육아는 빠지지 않지
동생 가족과 함께 캠핑을 다녀왔다.
말이 캠핑이지 준비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고 바로 앞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다 돌아오는 네 시간의 오락시간이었지만 '캠핑'이란 단어가 주는 설렘만큼 신났다. 음식 재료는 동생과 올케가 미리 장을 봐오기로 했는데 평소 이런데 무지한 나로서는 고마울 뿐이었다. 아무리 돈을 나눠낸다고 해도 일에 드는 힘이나 수고엔 고마울 수밖에 없다.
한 시간 남짓의 이동 시간에 뿔난 윤이의 천둥 같은 울음을 재우고 도착한 캠핑 장소는 말 그대로 푸르렀다.
나트막한 언덕을 끼고 펼쳐진 잔디밭 너머엔 북한강이 흐르고 우리가 예약한 바베큐장 바로 앞엔 수영장이었다. 푸른 여름 나무에 푸른 강과 푸른 수영장, 온통 푸른 꽃다발.
오뉴월에 펼쳐지는 유년의 신록도 가슴 뛸 일이지만 칠팔월에 무성히 자란 녹음은 여름 그 자체의 것이다. 거기에 강과 수영장이라니 더할 것 없이 완벽하다. 현실주의자를 위한 유토피아가 바로 이곳 아닐까. 환한 시간만이 인간이 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현명한 사람들 같으니.
바리바리 짐을 들고 아이들의 함성을 지나며 그 무리에 들어가는 첫발을 디뎠다.
아이스박스와 아기 한 짐을 내려놓자마자 아빠들과 아이들은 수영복으로 갈아입느라 바빴다. 물을 좋아하는 게 가문 정통인지 물을 보자마자 통통한 다리를 바동거리고 동동 구르는 통에 두 아빠는 허겁지겁 환복하고 두 엄마는 두 아기에게 수영복을 입혔다. 초록과 빨강이 섞인 비키니를 입은 윤이를 보며 볼록 나온 배 때문인지 여름인 탓인지 수박을 떠올렸다.
1인 1 튜브를 쥐고 물에 들어간 아이들은 그야말로 제 세상이다. 아빠들의 희생에 가까운 보조가 없었다면 1초도 즐길 수 없었겠지만 어쨌든 뒤서거니 앞서거니 아빠를 꼬리처럼 단 아이들은 물을 먹든 퐁당 빠지든 그저 꺄르르 웃었다. 그리고 바로 이때가 엄마의 휴식시간이다. 피싯, 소리와 함께 목구멍으로 밀려드는 맥주의 탄산을 넘기며 청춘 즉 푸른 봄의 시기가 따로 있나 생각했다. 산에선 매미가 울고 강에선 모터보트가 수제비처럼 튀고 그늘 아래 바람은 시원했다. 건너 테이블엔 젊은 남녀가 연신 셀카를 찍고 나 역시 수영장 속 작은 오리 같은 나의 딸을 연신 찍어댔다. 청춘이 별건가. 순간을 즐기면 청춘이지 뭐.
차가운 맥주를 꿀꺽 들이켜고 이내 바비큐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때까지였다.
캠핑이라 불리며 힐링의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는 핫한 문화에 잠시 여유를 부렸던 것 말이다.
그 이후의 기억이라곤 정신없이 고기를 씹어먹으며 윤이 뒤치다꺼리를 하고 조카를 잡으러 다니다 하늘의 짹짹이 수를 헤아리고(조카가 빠진 놀이) 다시 질투에 눈뜬 윤이를 어르는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힐링이라기보다 동네 놀이터 같은 일상 아닌가. 게다가 강이 바로 앞에 있고 나무가 우거진 탓에 아이들의 위험을 방지하는 보초의 역까지 해야 하니 눈과 마음이 더 바쁘다. '신록에 관록이 뱄구나'하던 푸른 잔상은 사라지고 아이들 뒤꽁무니만 보였다. 물론 윤이는 걷지 못하니 캥거루처럼 배에 대롱대롱 매달고 있긴 했지만.
조카와 몇 번 술래잡기를 하던 찹쌀떡 군은 빈백에 쓰러지듯 누웠고 나 역시 그 옆에 털썩 누웠다. 마주한 하늘은 수영장처럼 푸른색을 띠었다,라고 쓰고 싶지만 하늘은 잠시 보지도 못했다. 바로 곁의 아기를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챙긴다고 해도 특정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손에 쥐고 있는 셀러리 먹다 목에 걸리는지 살펴보고 가끔 빨대 꽂은 보리차도 주고 땀이 맺힌 이마를 쓸어 넘기는 정도다. 사사롭지만 온 신경을 쏟아야 하는 일, 매일 집에서 인이 박히도록 하는 생활이다. 앉으나 서나 안이나 밖이나 우리에게 육아는 떼놓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세상 모든 양육자가 그런 것처럼.
해가 길어져 여덟 시가 넘었는데도 푸른빛은 넓게 펴져 있다. 땅거미가 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일렬로 늘어진 야외용 전구의 노란빛이 달처럼 별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배들도 정박하고 조용한 가운데 너른 공터 속 캠프파이어 나무에 불이 붙었다. 아이들은 졸린지 눈을 비비고 어른들의 얼굴은 맛문하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그들과 인사하고 돌아오는 길 우린 녹초가 되어 흘러내리기 직전이다. 하지만 온 만큼 돌아가야 하는 법. 한 시간 반으로 찍히던 네비는 십분, 이십 분 늘어 열한 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오는 길 우리 둘은 얼마나 많은 하품을 했던가. 명치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하품이었다. 아마도 다섯 번째인가의 하품을 하던 중 문득 생각했다.
이제 청춘은 아닐지도 몰라.
쓸쓸한 고백은 아니다. 어깨를 으쓱, 했을 뿐이다. 그리곤 동시에 '오늘 수영장에서 물에 뜬 오리처럼 열심히 발장구 치던 아윤이 참 귀여웠지. 수박 수영복을 입고 수박을 먹던 아윤이도 귀여웠어.' 생각하고 만다.
그 순간, "수박 요정 오늘 너무 귀여웠지." 그가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부모가 되었다. 더 이상 청춘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우린 제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보다 아이의 아기새 같은 입으로 들어가는 맘마를 찾고, 나만의 여유보다 아이의 즐거움을 우선시하던 엄마와 아빠가 되어버렸다. 청춘이 뭐가 중요한가. 윤이가 오늘 첫 수박과 체리와 셀러리 먹었는데.
온전히 제시간을 아이에게 바치는 게 부모라더니 오락시간에도 별 수 없다. 아니 일상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점에서 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이가 신나 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그 어느 때보다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는 게 이렇게도 행복한데.
역시 육아도 체력이고 노는 것도 체력이라지만 아이들과 노는 건 그를 곱한 수십 배의 체력을 요한다.
모든 엄마 아빠의 이번 여름휴가가 아이들의 웃음과 함께 무탈히 지나기를 두 손 모아 바란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