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하나든 둘이든 셋이든

육아는 평생 달리기

by 윤신



요즘 아기가 너무 예뻐 보여.


친구가 말한다. 말하는 눈빛과 자세에 황홀한 진심이 담겨있다. 지나가는 아기만 봐도 예뻐 어쩔 줄 모르겠다는 그녀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첫째와 종알종알 제 생각을 얘기하는 둘째가 있는 두 딸내미의 엄마다.

삼십 분 동안 미간을 찌푸리며 부동산을 얘기하다 난데없이 아기 이야기라니.

부동산의 '부'자는커녕 비읍의 한 획도 모르는 탓에 멍하니 그저 듣고만 있다 꼬막 같은 아기 손으로 찰싹 볼때기를 맞은 기분이다. 상상 속의 작은 손과 그 뜬금없는 주제 이탈에 왠지 웃음이 난다. 그 찬연하고 아른한 눈빛에 은근슬쩍 운을 뗀다.

"그럼, 때가 된 건가?"



다들 얘기한다.

임신과 출산, 갓난아기를 키우는 이삼 년 동안 더 이상의 아기는 없을 거라 확신하지만 아이가 서너 살이 되면 이내 작은 아기가 눈에 어른거려 또 임신을 하고 만다고 말이다. 나로선 아윤이만으로도 하루치 귀여움의 할당량이 채워지는 데다 체력이 진작에 고갈상태라 (아직 이삼 년이 지나지 않아서 모르지만 그 사이에 체력이 올라올 것 같지도 않다) '임신'이라는 말은 이제 내 인생의 금기어가 되어버렸지만 사실 그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달큼한 젖내와 꼬물거리는 작은 손가락 발가락, 팔딱거리는 머리의 숨구멍, 오르락내리락하는 자그만 가슴, 한숨처럼 새어 나오는 재채기, 통통히 오른 발바닥의 말랑한 살, 내 하얀 피로 연결된 충만한 감각.

알아서 그렇다.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감정과 단상이지만 이젠 너무 잘 알고 있다.

작은 생명과 연결된 모든 것이 얼마나 내 안과 밖을 간질이며 터질 듯 만드는지.

아기를 안고 달래는 오후의 정경만으로 얼마나 완벽한 듯 충만할 수 있는지.

아는 맛이 무섭다더니 아는 감정 역시 무섭다. 지나온 감정과 그 순간을 되돌이기 위해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산 같은 일들을 다시 쌓으려 하다니 말이다.



출산과 육아는 백 미터 달리기가 아니다. 지쳐도 쉬지 않고(못하고)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평생 달리기다. 귀여움이나 그리움만으로 쉬이 맘먹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나보다도 진작 두 번이나 경험해본 그녀가 이리도 아련한 눈을 하고 꿈꾸듯 이야기하는 거겠지. 신이 인간에게 준 망각의 선물을 반쯤 풀어놓은 채.

문득 아빠와 집에 있을 아윤이를 생각하며 녹차 우유를 마시고 있자니 난데없고 엉뚱한 화살이 나에게 향한다. 자기랑 똑 닮은 둘째를 쓰다듬으며 둘째는 첫째보다 더 이쁘다고 넌지시 얘기하는 것이다. 내 대답은 비슷한 질문에 늘 그렇듯 한숨으로 시작한다.

어휴.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아니면 로또 1등 돼서 종일 누가 같이 돌봐주던가.



하긴 그래. 아기의 사랑스러움을 알듯 육아의 고단함 또한 절실히 아는 탓에 그녀는 아윤이가 딱 만지지 않았으면 하는 물건을 건드리는 속도만큼 빠르게 납득한다. 하긴 삼 년 전만 해도 캔맥주를 들고 날 찾아와 육아는 '나 없는 내 인생'이라며 고충을 토로하던 그녀다. 자신 인생에 더 이상의 아이는 없다고 단언하던 그녀다. 아무리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도 자신이 겪은 무력함과 놓아야만 했던 모든 것을 잊지 않겠다며 차가운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던 그녀다. 그날의 더운 바람이 몇 해를 지나 다시 불어오고 있다.



시구절처럼 한 사람이 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나와 함께 할,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할 그 한 사람의 오늘과 내일, 일생이 찾아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가 하나든 둘이든 셋이든 중요할까. 그들을 향한 마음과 함께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나에겐 아윤이의 작은 변화를 지켜보고 함께 성장하는 우리의 하루를 어떻게 채우는 가가 소중하다.



둘째의 손을 꼭 잡고 첫째의 하교를 맞이하러 가는 친구의 뒷모습이 미쁘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삼 년 전 자신의 우울을 나직이 고백하면서도 드문 말갛고 환한 얼굴을 띠곤 했다.

하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큰 축복이긴 해, 라며 희붐하게 웃었다.

꽃과 열매를 닮은 두 모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아, 어쩌면 곧 그녀의 셋째 소식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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