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8, 하지만 우린 함께 변하고 있어
이제 제법 감정 표현이란 것도 적극적으로 할 줄 알고 11센티 정도의 발로 네 걸음 정도 걸을 수도 있는 작은 인간과 하루를 온전히 보내다 보면 바빠도 너무 바쁘다. 생활 반경은 고작 거실에서 안방, 혹은 화장실 정도인데 마음은 태양 주위를 1초에 30킬로미터씩 달리는 지구와도 같다.
매일 같아 보이는 자리를 돈다는 의미에서도 역시나.
하지만 같아 '보일' 뿐이지 지구도 나도 매번 같은 곳을 돌지는 않는다. 태양과 아윤이 역시 마찬가지다. 오르락내리락거리는 오차 속에 우린 닮은 시간을 보내고 그 사이 있던 것은 없어지고 없던 게 생기기도 한다. 안에서는 태양의 화염 같은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만 겉으론 그저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한 달 전 만난 친구가 내일 찾아온다고 하며 묻는다.
아윤이는 많이 컸어?
뭐라고 답해야 좋을까.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물음에 조심히 말을 고르다 동그만 딸의 얼굴을 떠올린다.
내일 보면 알아.
어른에게는 고작 한 달이 아이에게는 무려 한 달이다.
지난달에는 하지 못하던 일 투성이가 지금은 거뜬히 해내는 일 투성이가 되었다(그렇다. 엄마가 보기에는 아기의 일상이 성취에 가까운 것이다). 예를 들어 '뽀뽀'의 개념을 알게 되었는지 아가도 뽀뽀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입술을 모아 쪽 하는 소리를 내는 건 아니고 입을 작게 벌린 채로 침을 도록 흘리며 갖다 대는 것에 불과하지만 하나의 감정표현이 늘었다. 특히 고양이들에게 어찌나 자주 뽀뽀하는지 그 조심스럽고 앙증맞은 입술을 막을 때도 있다. 이제 그만. 고양이가 아니라 네가 헤어볼 토하겠어.
또 이젠 먹을 것을 제 입에만 넣지 않고 내가 '아-' 했을 때 옜다, 인심이다 싶은 얼굴로 먹다 남은 무언가를 쓱 넣어준다. 여기서 아주 사소한 문제는 입에 넣던 걸 빼서 준다는 데 있다. 아무리 엄마라도 산뜻하고 신선한 게 좋다. 하지만 활짝 웃으며 척척하니 침범벅이 된 과자나 과일을 손가락으로 집어주는 아기의 그 친절을 무시할 수도 없다. 자, 그럴 때 당신의 선택은? (떠넘기기)
고양이들과 지내다 가끔 얘들은 키워도 키워도 그 자리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루의 작은 부분을 제외하면 고요하고 조심스러운 소동물들. 물론 거의 정해진 패턴대로 움직이는 그들과 생활하기는 편한 편이다. 너도 익숙하고 나도 익숙한 같은 공간에서 그들을 인정하고 살아가면 되니까. 하지만 아기는 그렇지 않다. 거의 정반대에 가깝다. 이제 익숙해질 만하면 금방 발달 시기가 찾아와 색다른 모습을 보이고 어제 좋아하던 것을 오늘은 싫어하기도 한다. 좋아하던 보행기도 이젠 태우기만 하면 오열하고 혼자 놀 줄도 알던 애가 이젠 곁에 달라붙어 같이 놀자고만 한다. 엄마의 마음과 생활이 이제 좀 잔잔해지려 하면 작은 변화의 돌멩이가 날아와 둥근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다.
문득 어릴 적 좋아하던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란 TV 프로그램의 제목과 주제를 바꿔 다시 방영해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육아 탐험 변화의 세계'.
약육강식의 육아판으로 돌풍 같은 육아와 그에 따른 양육자의 혼란이 주된 내용이겠지만 왠지 방송의 맨 마지막은 보통의 엄마 마음이 그렇듯 머물던 자리를 벗어나 새 세계를 탐험해서 생긴 좋은 점으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아니, 네 건 저기 있잖아. 남의 거 뺏지 말고 네 거 먹어."
아무리 검지 손가락으로 고양이 간식을 가리키며 말해도 듣는 고양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짧게 뻗은 손가락만 바라볼 뿐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점점 커지는 목소리와 세찬 손가락질에도 그저 휘익 휙 움직이는 손가락만 망망히 바라볼 뿐이다. 놀자는 뜻인가,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예전엔 손가락만 보더니 이젠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본다.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함께 볼 수 있다.
꽃이 떨어진 자리를, 고양이가 은밀하게 다가오는 모습을, 난색으로 물드는 저녁을.
어느새 내가 보내는 신호를 잡고 다시 새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동동동 구르는 발과 까만 눈 가득 웃음을 담아서.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을 한마디 대답으로 하기에는 부족하다(내 역량으로는).
한마디 대답보다 반나절 함께 보내며 감각하는 아가의 몸짓과 눈짓, 한번 안는 포옹이 백번 천 번 나을 것이다.
내일 그 아이가 집으로 돌아갈 때쯤 같은 물음을 돌려주어야지.
어때, 아윤이 많이 큰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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