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9, 엄마에게도 엄마만의 방이 필요하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
모르겠다.
피곤한 몸을 꾸역꾸역 의자에 앉혀 혼미한 정신을 겨우 붙들어 적어내리는 이 조각 글 따위 다 무슨 소용일까.
짧건 길건 매일 하루의 단상을 써나가면서 생각한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하루를 기록하고 있을까.
한 권으로 엮어 딸에게 준다지만 과연 어른이 된 아이는 기억에 없는 기록에 기뻐할까.
역시 모를 일이다.
어떤 사물의 이유처럼 그저 있어야 하기에 있는 것뿐일까.
1) 그냥 새 생명이 자라는 한 가족의 역사록이라고 치자.
너무 사적이고 주관적인 글이지만 괜찮다. 세상 모든 역사 기록은 주관적인 데다 개인(예를 들자면 왕) 혹은 개인의 모둠의 것들이다. 그리고 왠지 아가의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가 많은 것 같지만(사실이다) 어차피 내가 쓰는 글이니 내 사담이 많을 뿐이다. 주관을 넘어 사담을 넣는 사관.
그렇다. 난 이렇게 우길 수밖에 없다.
2) 0과 1, 이진법의 세상에 나만의 작은방을 마련했다고 치자.
엄마란 존재는 항시 아기와 1+1 같은 존재다. 누가 메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묶음이라는 게 중요하다. 나에겐 그런 상황에서 나만이 허락되는 장소, 나만의 방이 필요하다. 점점 옅어지는 나의 것과 내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곳. 작은 벽돌을 하나 올리는 듯한 성취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육아와 달리 또렷이 마주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엄마는 글을 쓰던 아니던 오로지 자신을 위한 방이 있어야 한다고. 대신 그 방의 개념과 물성은 무궁무진할 것이겠지만.
적다 보니 알겠다.
두드려온 모든 글자의 조합은 전부 날 위한 거였다.
하루 종일 알지도 못하는 옹알이에 '그랬어?'하고 대답하다 늦은 밤 나지막이 나의 옹알이를 적어온 것이다.
자판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없는 형태의 옹알이를.
이유가 시시하다.
내가 하던 행동이 결국 날 위한 거였다니 참 뻔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날 위한 행동을 하기 위해, 날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이 '나만의 방'이라고. 그곳에 정작 내 실체를 뉘거나 초콜릿 하나 숨기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의미 따위 없어도 괜찮다.
난 이곳에서 충분히 자유롭고 편안하니까.
무엇보다 온전히 날 위한 방이니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