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바란 마음이 올여름엔 이뤄질까요
2020년 3월 17일, 뉴욕타임스에 B.C와 A.C라는 새로운 시대 정의가 실렸다. 그렇다. 이젠 이미 널리 알려진 비포 코로나(Before Corona)와 애프터 코로나(After Corona)다. 그리스도 이래 역사는 다시 한번 전과 후, 반으로 나누어졌다.
처음 우한 폐렴으로 알려졌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인터넷에 나도는 박쥐 요리 사진을 보고 경악하며 혹시 타민족이 우리가 먹는 번데기를 봤을 때도 이 정도로 혐오스러울까 따위의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또, 자그만 박쥐가 가진 바이러스가 강하면 얼마나 강할까 싶었다. 치사율이 사스와 비슷하고 백신이 없는 호흡기 질환이라는 뉴스를 볼 때도 금세 지나갈 한낱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마도 육 개월이면 다 타버린 불꽃놀이 화약처럼 점멸할 힘도 없이 사그라들 줄 알았다.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 발병 이전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가 사는 집에서 걸어서 오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커다란 그 건물에서 몇천 명의 감염자가 나오기 전에는 말이다. 나와 상관없던 일이 어쩌면 나와 상관있을 일이 되어버렸다. 바늘 도둑 같던 일이 소도둑이 되어 버렸다. 초조한 마음으로 엄마에게 문자로 전화로 신신당부를 했다. 어린 시절 지독히도 싫던 잔소리를 내가 달고 지냈다.
마스크 하고 다녀. 버스 말고 자차 타는 게 좋을 거 같아. 밥을 잘 먹어야 해. 면역력이 좋아야 한대.
하지만 대구가 잠잠해지고는 또 그만 망각했다.
어차피 난 돌도 안된 아기를 키우는 엄마 아닌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가끔 나가는 산책에 노란 먼지를 가리던 것처럼 마스크를 챙길 뿐이었다. 가끔 마스크로 얼굴을 잔뜩 가린 인파에 섞여 장도 보고 커피도 마셨지만 결국 걷지도 못하는 아기와 다닐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이나 집 뒤 한가한 공원에서 보냈다.
연일 방송되는 코로나로 인한 경제, 직업난에 '도대체 언제 끝날까.' 미간을 찌푸리면서.
문득 대부분의 시간을 임신부로 지내던 작년에 가끔씩 하던 고민이 떠오른다.
어미 새가 플라스틱이 먹이인 줄 알고 제 새끼에게 먹이는 세상에서, 봄마다 가을마다 불어오는 노란 모래폭풍 속에서, 반 우스갯소리로 '있는 사람'은 살기 좋다는 나라에서, 뉴스만 틀면 무서운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사회에서, 점점 보여주기 위한 나와 일상에 조급 해지는 이 세상에서 아기를 품고 낳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이 아이에게 난 어떤 것을 물려줄 수 있을까. 이런 세상에서 새 생명을 걱정 없이 순수히 환영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은 '만약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할 것인가'만큼 무계하진 않으나 코로나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느끼고 있다.
찹쌀떡 군 동료 중 누군가는 권고 휴직을 받았고 중국에 있는 친구는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도 보지 못한 채 타국에서 전전긍긍하고만 있다고 한다. 확진자수가 늘어나는 만큼 사람들이 코로나의 영향에 마음과 생활이 잠식되는 사이 아이들은 외출과 마스크를 동일시한다. 동생네 부부가 신발을 신고 있으면 32개월 된 조카 서진이는 제 스스로 마스크를 쓰고 내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짐을 정리하면 11개월 아윤이는 외출을 환호한다. 세계는 국제적 비상사태에 돌입했고 아이들의 작은 생각 바퀴엔 마스크=외출이라는 부등식이 새겨져 버렸다. 언제 끝날지 모를 신종 왕관 무단 증여에 점점 끝은 없는 게 아닐까 목이 바싹 마른다.
며칠 전, 예약해 둔 책을 찾으러 유모차를 밀고 도서관을 찾았을 때였다. 요즘 어딜 가나 체온 체크와 방문 일지를 쓰기에 신변과 몸 온도를 노출하는 것엔 익숙했지만 관리자가 던진 말에는 내심 당황했다.
"아기도 마스크 해야 합니다."
"저기.. 돌도 안되었는데요."
"네. 그래도 착용해야 합니다."
아직 세상에 숨을 틘 지 일 년도 안 되는 아가에게도 마스크는 의무라니.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난 그의 말에 화난 게 아니었다. 그저 이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그제야 주위 어린아이들 입에 덧씌워진 하얀 천이 눈에 보였다. 그들을 그렇게 내보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을 그렸다. 그뿐이겠는가. 아기를 낳고도 품에 제대로 못 안는 엄마들이 있을 테고 세상을 떠나는 부모의 곁을 지키지 못하는 자식도 있을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해도 맘껏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의 답답함과 그들을 보살피는 부모의 무거운 책임은 또 어떡할 것인가. 이게 뭐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언제까지 이래야만 하는 거지. 싫다고 뿌리치는 아윤이의 입에 억지로 마스크를 갖다 대고 꾸역꾸역 책을 받아오긴 했으나 마음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마스크는 타인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아윤이를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엄마'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세상의 질병의 무서움을 먼저 알려주는 건 아닐까 속상했다. 무기력하게 슬펐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인파로부터 몸을 사리고 얇은 막으로 작은 호흡을 가리는 것뿐이구나.
그렇다. 달리 내가 무얼 해줄 수 있겠는가.
어서 이 사태가 잦아들길 바라고 바랄 뿐이다.
언제나 무력한 이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조심과 믿음을 무기로 변형된 왕관이 부서질 날을 기다리고 모두의 안전을 지키려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이들을 응원할 뿐이다.
달에게 세계 평화를 기도하듯 막연한 바람을 되뇔 뿐이다.
하이얀 마스크를 방패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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