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사진과 배터리

20200805, 결국 이 모든 건 아기 사진과 엄마 배터리 이야기

by 윤신


보통은 일기를 쓰고 제목을 다는 편인데 이번엔 제목부터 정했다. '나는 오늘 사진과 배터리에 대해서 적고야 말겠다'라는 다짐부터 한 셈이다. 하지만 늘 문맥과 상관없는 문장으로 빠지는 사람으로서 이 제목이 끝까지 붙어있을지는 의문이다. 하긴 뭐, 괜찮다. 글이 가는 방향이 달라진다면 한낮의 새벽처럼 이 세 줄을 조용히 지우면 되니까.



그러나 다짐을 했다면 노력부터 해야지. 일단 제목에서도 앞에 위치한 사진에 대해서 적어 본다.

한동안 아윤이의 사진 정리를 하느라 눈알이 뻑뻑하게 굳어버렸다. 만장도 넘는 사진을 요일별로 테마별로 구분하느라 며칠 동안 눈을 혹사시킨 탓이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성향에 분류나 정리하는 능력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정말이지 진절머리 나는 상황이 발생한다. 거기에 사진을 '굳이' 정리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정말 최악이다. 역시나 사진 정리에 눈 한번 안 깜박이고 열중하던 이른 오후(아윤이 낮잠 시간), 사진이라는 기록을 만들어낸 작자는 누구냐며 혼자 성질을 냈다. 내가 먼저 좋아서 무턱대고 사진을 후루룩 찍은 주제에 도대체 왜 이따위 걸 만들어서 사람을 지리멸렬하게 만드냐, 내 다시는 네놈의 업적(사진) 같은 건 찍지도 않을 거라며 으름장을 놨다. 물론 그러는 중에도 책을 보다 몇 줄의 문장을 찰칵, 우는 아윤이의 콧물을 찰칵, 그러다 또 샐쭉 웃는 모습을 찰칵, 과학시간 개구리 자세로 뻗어 자는 아가를 찰칵, 그 후로도 수십 번의 찰칵은 이어졌다. 한번 자긋자긋했다 한들 어디 사람이 쉽게 변할 일인가.


이렇게 신세한탄을 하려던 건 아닌데 이왕 나오는 걸 막을 이유도 없다. 하던 한탄, 마저 하겠다. 사실 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한 이유는 아윤이의 성장앨범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루가 다르게 훌쩍 크는 모습이 아쉽기도 하고 아무래도 디지털의 데이터보다는 아날로그 종이의 기록이 좋을 것 같아서다. 첫 숨을 토해내며 아가가 태어났던 그날부터 오늘까지의 일만 수천 장의 사진 속 아윤이를 보고 또 봤다. 뒷머리가 빳빳해지고 뇌가 부풀은것마냥 둔한 느낌이 들 때까지 작고 큰 화면 속 내 딸의 얼굴을 찾았다. 어린 시절 방학 때 밀린 일기를 울면서 몰아 쓰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오늘까지 완료한 사진 정리가 200일 치다. 아윤이는 태어난 지 341일 차니 이제 반은 넘었지만 하루씩 또 점점 늘어나는 보너스도 있다. 생각만 해도 눈알이 빡빡하다.


사진 얘기는 할 만큼 했으니 이번엔 배터리 얘기다. 사진과 배터리, 둘을 함께 적어 내린다고 그 둘이 연관되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이것도 얘기하고 싶고 저것도 얘기하고 싶은 취객의 마음일 뿐이다.


이 주 만에 단골 책방을 찾았다. 지난주엔 이래저래 바쁘기도 했고 눈에 실핏줄이 터지도록 피곤해 들릴 엄두도 내지 못한 탓이다. 그런 얘길 하자니 사장님은 지난주 화요일 밤 쏟아진 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점의 바닥에 빗물이 가득 차 하늘의 뜻으로 여겨 시원하게 바닥 대청소를 했다는 것이다. 빗물로 가득 찬, 그것도 책이 가득한 곳에서 출렁이는 바닥을 보며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시원하게 대청소'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는 사이, 그녀는 그렇게 말끔해진 바닥을 보니 아윤이가 맘껏 기어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매번 서점을 빨빨거리고 돌아다닌 후 새카매진 아윤이 양말(신발을 신지 않는다)과 옷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 마음이 참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누군가 나의 딸에게 마음을 쓰는 것이 내가 배려받는 것보다 더 기쁘고 감사하기도 하구나.
자, 여기서 배터리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준비, 땅.


"근데 말이죠. 충전은 배터리가 조금은 남아 있을 때 하는 거예요."
무슨 얘긴가 싶었다. 서로의 지난 수요일을 이야기한 뒤 그녀가 꺼낸 말이었다.
"완전히 나간 상태가 아니라 약간은 배터리가 남아 있을 때 채우기 시작해야 해요."


1초 정도의 사고 정지에 이어 격한 공감이 이어졌다. 그죠. 난 원래 방전되고 나서야 쉬는 타입이에요, 에너지를 있는 대로 다 끌어 쓰다가 결국 지쳐 나가떨어지고서야 휴식을 찾는 스타일이죠. 하긴 그래선가 힘이 잘 차오르지 않는 거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자니 문득 핸드폰 배터리 관리법 조언이 떠올랐다. 두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는 한번 충전할 때 완충시키는 것이었고 둘은 절대 핸드폰이 꺼질 때까지 배터리를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주 핸드폰이 꺼질 때까지 쓰게 되면 배터리 수명에 좋지 않다는 말이었다. 어느 서비스센터 직원에게 들은 그 말은 뇌 주름 어딘가에 저장되어 지금까지 한 번도 핸드폰 배터리를 그대로 꺼트린 것은 없다. 그래 놓고 정작 제 몸은 늘 방전되고 나서야 겨우 충전을 시작하다니.
모든 게 아귀가 맞다. 쉽사리 나가떨어지고 골골대는 체력의 근원은 제대로 되지 않은 충전에 있었던 거다. 충전해야 할 때는 번아웃 상태가 아닌 아웃되기 전이다. 전자기기나 사람이나 결국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를 더 덧붙였다.
"아기가 잠자는 시간은 무슨 시간인 줄 알아요?"


육퇴 시간 혹은 자유 시간 일까도 싶지만 대화의 흐름상 그게 아니다. 아기가 잠자는 시간은 엄마가 잠자는 시간이다. 하지만 늘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나는 또 아기가 잠자는 낮잠과 밤잠 시간에 남은 백사십일일의 사진을 정리하고 배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윤이가 점점 아기 티를 벗는 게 아쉬운 만큼 내 시간을 순순히 잠으로 넘기는 것도 아쉬운 이유다.
하지만 진작부터 다시금 점점 방전되어 감을 느끼고도 있다. 육아는 장거리라지. 이제 그만 아기의 잠동무에 끼어들어야겠다. 내일은 부디 이 텅 빈 창고에 그득 에너지가 가득 충전되길, 곤한 잠으로 바라본다. 그렇기 위해서 아윤이의 단잠이 우선이겠다. 딸과 나의 깊고 오랜 평온한 충전을 바라고 바라본다.


참, 대략의 흐름으로 봤을 때 첫 세 줄은 그냥 둬도 좋을 것 같다.
결국 이 모든 건 아기 사진과 엄마 배터리 이야기니까.



_


keyword